대전 한국 족보 박물관.
대전 한국 족보 박물관.
  • 김외남 기자
  • 승인 2019.07.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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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족보 박물관.

 

姓 과 氏

성(姓)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는 집단의 호칭이고 , 성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평생 바뀌는 일이 없다. 씨(氏)란 동일 혈통의 사람들이 각지에 분산될 때에  지역에 분산된 일파를 표시하기 위한 표지다. 씨는 핏줄이 아니라 땅과 연계되어 있는 개념으로, 본(本)과 유사하다. 우리나라 성(姓)은 본(本)을 필수요소로 하여 각 성마다 한 개 이상의 본관(本貫)이 있고, 성이 같더라도 본이 다르면 동족(同族)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과 씨는엄연히 다르다.

[출처] 한국의 성씨

지난달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을 관광했다. 우리나라에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성씨가 있는지 처음 듣고 보는성씨에 놀랐다. 흔히 우리 일상에서 대하는 김, 박, 이, 최, 배, 서, 권 ,정, 문, 은, 정, 곽, 손, 성, 장, 구, 전, 진, 씨 등등 헤아리지도 못할만큼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안동김씨, 경주김씨, 김녕김씨, 경주 최씨, 달성서씨, 각지방에 분산되어 사는 일파마다 핏줄이나 지역과 연계되어 있어서 많기 마련이다. 그중에 우리나라에서 5명중에 한명은 김씨로 전체인구의 45%를 차지한다. 신라말 고려시대에가서 성시의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그 전에는 없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종이나 노비는 성을 갖지 못했다. 공원 건물 안에는 보관중인 족보도 많았다. 옛날에는 족보를 보물같이 여겼지만 요즘은 족보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냥 벽면 한쪽 책장 한 곳에 꽃혀 있을 따름이다. 어던이는 컴퓨터로 작성해서 형제 자매 외종이며 이종형제들까지 자세하게 직접도표를 만들어 놓고 보는 분들도 있다. 시대가 바뀌어 엄마성을 따르기도하는 세상이다. 그 옛날 부계중심이었던 시대에 여자들은 족보에 감히 실어주지도 않았다. 남존여비가 대세였던 그 옛날 서러웠던 여자들의 사연이 돌에 새겨져 전시되어 있었다. 숙연해지는 마음을 안고 비석 번호를 외우며 찾아가는 길가에 크다란 돌확이 즐비하게 늘어졌는데 마침 만개한 붉은 수련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커다란 산전체가 뿌리공원이었다. 각자의 성씨마다 번호가 매겨져  그 번호 위치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관리하는 사람을 만나 안내받은 덕분에 시가쪽 여산송씨와 내자신의 조상 김녕김씨의 조각탑을 찾아 참배했다. 탑 모형의 해설과 조상들의 이력  제작한 분의 약력, 등이적혀 있었다. 그분들의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렸다.

 

 

누가 말했다. 후손 자녀들이 방문해'서보고 '자기네 성시 비석이 없다면서 '왜 우리 비석은 없느냐고 반문하더란가. 그래서 하나세우려고 문의하니 돈이 엄청 비싸다고 했다. 불과 15평내외 됨직한 터ㅋ를 분양받고 조각 비석을 세우는데 처음에는 5000만원에서 시작했는데 올라서 6천만원 하다가 8천만원, 지금은 1억 5000만원이상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