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전설, 용정골 주모 김명자 씨
예천의 전설, 용정골 주모 김명자 씨
  • 장광현 기자
  • 승인 2019.07.15 08:2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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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주모 김명자 씨가 35여 년째 주막집 운영
35여년째 주막집을 운영하고 있는 3대주모 김명자씨. 장광현 기자.
35여 년째 주막집을 운영하고 있는 3대주모 김명자 씨. 장광현 기자.

길을 가던 나그네가 잠시 목을 축이고 쉬어가는 곳이 주막이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되어가지만 살아있는 전설 속의 주막집이 예천에 있다.

주막은 옛날부터 나그네들의 배고픔을 달래고 하룻밤 몸을 맡길 유일한 안식처였다. 주막에 앉아 막걸리 한 잔으로 세상을 잊고 풍류(風流)하는 것은 멋스럽고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예천 용정골 주막집 모습. 장광현 기자.
예천 용정골 주막집 모습. 장광현 기자.

이 시대에 살아있는 마지막 주막집을 찾아서 길을 나서본다. 예천 용정골 주막집은 예천읍 양궁로 292(고평리 748-3)에 있다. 주막집이 있는 곳은 행정구역상 고평2리이나 실생활권은 청복2리에 속한다. 이는 마을 앞에 국도 34호선 4차선 도로가 개설되면서 주막골은 자연스레 고평리와 멀어지게 됐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 주변이 주막골이다. 장광현 기자.
예천진호국제양궁장 주변이 주막골이다. 장광현 기자.

용정골은 예천읍 청복2리 마을을 일컬으며, 마을 안의 우물인 용골샘이 마치 용의 입에서 토하듯 물량이 많이 나온다 하여 마을 이름이 용정(龍井)으로 불리어졌다. 또 용이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 시대에 살아있는 전설 속의 마지막 주막집 3대 주모 김명자(65세)씨를 어렵게 설득해 만남이 이뤄졌다.

- 주막골의 지명 유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요?

▶ 주막골은 예천읍 청복2리 양궁정비공장에서 예천진호국제양궁장 입구까지 도로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입니다. 예전에는 읍내로 가는 길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성시를 이루는 주막집이 여러곳 있어 자연스레 주막골로 불리게 되었지만 교통의 발달로 지금은 주막집이 한 곳만 남아 있습니다.

- 주막집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 35년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3대 주모를 하고 있습니다. 이 주막집의 역사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약 110여 년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이사올 때 흙집으로 가마니 문을 사용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술한 것을 미장을 하고 방문을 달고 방도 넓혀 나그네들이 둘러앉아 막걸리를 먹고 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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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집을 하게 된 것은 결혼 후 예천 읍내에서 남편과 양복점을 하며 살았는데 기성복이 나오면서 양복점이 잘 안되자 시어른께서 이곳으로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좋지 않겠나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평역 앞에서 혼자 구멍가게를 4년 정도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되자 주인이 나가라고 하여 주막골로 이사를 왔는데, 처음에 농사일이 서툴러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주막집의 전성기 시절을 말씀해 주세요.

▶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까지는 장사가 제법 잘 되었지요. 이곳은 고평 들판 입구에 있어 농사일을 하는 주민들이 고단할 때면 이곳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 다시 일하러 가는 쉼터 역할을 했습니다.

또 농지거래와 벼 가을걷이 흥정을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한잔하면서 하다보면 성사가 잘 이루어지기도 했었죠. 지금도 그때가 많이 생각나 그립기도 합니다.

- 주막집은 언제까지 하실 계획인지요?

▶ 가게를 그만 둘려고 13년 전에 용정골에 새집을 지었는데 나이 많은 주민들이 편의쉼터로 이용하면서 가게가 없어지면 안된다면서 한사코 반대를 하여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차도 없고 막걸리 한 잔 할려고 읍내까지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 주막집은 어떤 물건을 팔고 있는지요?

▶ 현재는 하루 30여 명 정도 찾고 있는데 담배가 주 수입원이고 막걸리. 소주, 맥주, 라면, 과자류, 음료수, 국수 등 규모는 작지만 기본적인 것을 팔고 있어 급할 때는 시골 편의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 죄송한 질문이지만 하루 평균 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지요?

▶ 농사철에는 술, 담배가 많이 팔리는데 농촌 여자 일당(7만원)보다 많은 10여만원 정도 되어 소일거리 삼아서 하기는 괜찮다고 봅니다.

주막집 방안 모습. 장광현 기자

- 주막집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30여 년 전 고평들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 가게 방안까지 물이 차올라 아이 둘을 업고 안으며 뒷산으로 피신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제 물난리 같은 것은 겪지 않게 되었죠. 

-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주막집 앞은 인근 레미콘 공장의 차량이 쉴새없이 다니는 길목으로 공사차량과 인근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담배와 술들을 사가는데 가게문이 열려 있으면 읍내까지 가야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호명면 월포리, 직산리 등 인근 마을에는 구멍가게가 모두 없어져 이곳가지 물건을 사러 오고 있으며, 길을 지나던 외지인들은 아직도 이런 가게가 있나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고 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식들도 오래된 주막집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철거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놔두고 있는데 이제는 저도 정이 들어 이곳이 새집보다 더 편하고 좋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들일을 하다가 주막집에 들러 잠시 쉬고 있다. 장광현 기자.

무엇보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한사코 반대하고 잠시라도 가게를 비우면 왜 문을 닫았나 하는 성화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주막집 문을 닫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근 주민들의 쉼터가 되는 이 가게를 누구에게도 팔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 시대에 살아있는 마지막 주막집을 찾아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마을 주민 권기철(77세)씨가 가게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들일을 하다 목이 말라 주막집에 왔는데 외출로 문이 닫혀있으면 그리 섭섭할 수 없어요. 자가용이 없는 노인들에겐 이 주막집이 쉼터로 꼭 있어야 합니다.” 라며 주모가 들으라는 듯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남은 예천 용정골 주막집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누구나 쉬어가는 정거장이다. 용정들, 고평들에서 하루의 들일을 마치고 3평 남짓한 방안에서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며 고단한 삶을 잠시 쉬게 해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영원한 사랑방이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배웅인사를 하는 주모의 수줍은 미소 때문일까, 빛바랜 낡은 스레이트 지붕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정겨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