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위대한 발자취, 문화유산 답사에서 만나는 소중한 지혜
조상들의 위대한 발자취, 문화유산 답사에서 만나는 소중한 지혜
  • 백남명 기자
  • 승인 2019.07.09 17: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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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있는 석조불상과 마애불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국보 99호 갈항사 3층석탑의 사연은?
808년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가 적힌 도선국사비의 모습은 ?
석조문화재 보물 3점, 808년 김생이 쓴 글씨가 발견된 도선국사비가 있는 수도암에서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백남명기자
석조문화재 보물 3점, 신라 김생의 글씨가 발견된 도선국사비 등을 보유한 수도암에서 가야산 봉우리가 보인다. 백남명기자

문화유산을 배우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문화유산에는 세상살이처럼 다양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입담이 좋은 강사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정감있게 풀어내면 호랑이 담배피우던 이야기만큼 재미있다. 이야기 김천학 강좌가 그렇다. 경북보건대학교에서 평생교육사업으로 운영하는 김천학강좌에는 30명의 정원에  청강생을 포함하여 50여 명이 배우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진행 중이며 수강생 대부분은 실버세대이다. 강사는 '김천의 마을과 전설'의 책을 쓴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이다. 마을지명에 얽힌 사연도 강의 중간에 구수하게  잘 풀어낸다. 남면 연봉의 지명은 뒷산 형태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주민들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봉황을 다시 마을로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닌 한자를 사용하여 연봉(延鳳)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지금까지 이름값을 하고 있다.  지형이  불리하면 이름으로 보완했다는 조상의 지혜로움을  들려준다. 이야기 김천학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슬기를 배우는 강좌이다.

이야기 김천학 수강생들이 금릉광덕리 석조보살입상 전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백남명기자

소풍을 겸한 현장답사는 경치를 즐기면서 눈으로 배우는 신나는 시간이다. 수다도 떨고 웃음도 나누면서 문화유산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이번 현장답사는 산과 들에서 주민과 함께하고 있는 석조문화재를 대상으로 하였다. 보물로 지정된 남면 갈항사지의 석조여래좌상, 감문면 광덕리의 석조보살입상. 경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어모면 은기리의 마애반가보살상 3곳이다. 비슷 비슷한 불상을 보고는 이름을 알 수있는 방법이 있다. 크게 2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건물안에 불상이 있을 경우에는 건물 이름을 통해서 이름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이면 석가모니불, 극락전은 아미타불,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러나 산과 들에 있는 석조불상과 마애불은 어떤 방법으로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금릉은기리 마애반가보살상은 삼산보관, 투박한 법의(法衣) 표현으로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남명기자

들판에 있는 석조불상이나 바위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불은 손모양을 통해서 이름을 알 수 있다. 양쪽 손과 손가락을 통해서 나타나는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왼손의 집게 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쥔 형태(지권인)는 비로자나불이다. 결가부좌한 상태에서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에 얹어 손가락으로 땅을 가르키는 형태(향마촉지인)는 석가모니불이다. 아미타불은 오른손 왼손 모두 엄지와 집게손가락 중지 무명지와 닿아 있는 수인을 보고 알 수 있다. 아미타불의 손모양 손가락의 모양으로 하품하생부터 상품상생까지 9가지의 수인이 있다. 수도암 대적광전에 봉안된  4m에 이르는 큰 불상은 수인으로 살펴보면 석조비로자나불상이다. 건물의 명칭도 대적광전이므로 비로자나불임을 거듭 확인 할 수 있다.

탑의 조성연대와 조성자가 기록되어 있는 국보99호의 갈항사 3층석탑.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석탑을 세운 사람과 조성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국보 제99호의 갈항사 3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신라 원성왕의 생모, 이모, 외삼촌 3명이 3층석탑을 세웠던 갈항사지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다. 사찰은 없고  부지의 일부만 남아  있다. 3층 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사과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과수원  안쪽에는 석탑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이 2개 세워져 있다. 길항사지에는 남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1호인 홍인지문과 같은 날인 1963년 1월 21일에 지정되었다. 갈항사지 한 켠에는 비로자나불상이 놓여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넓고 당당한 어깨, 팔의 근육, 잘룩한 허리 등 인체비례는 8세기 중엽 불상의 특징이며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형태가 유사하다. 동탑의  3층석탑 기단부에는 이두문으로 "경덕왕 17년 원성왕의 생모인 박씨와 원성왕의 이모 외삼촌 언적 3인의 발인으로 탑을 세웠다" 고 기록되어 있다. 탑은 758년에 조성되었으며 27년 후인 785년에 원성왕은 38대 신라왕이 되었다. 1916년에 탑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0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다시 옮겨서 전시되고 있다. 동.서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라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서 보물 1904호로 지정되어 대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갈항사지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면 문화유산에도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화가 담겨있다.

수도암에 있는 도선국사비에서  808년  신라 김생이 쓴 글씨가 발견되었다(추정). 백남명기자  

현장답사를 통해서 익힌 석조문화유산의 흐름을 보완한다면  김천 수도암을 권한다. 수도암은 석조문화재의 보고이다. 암자에는  보물 3점이 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약광전석불좌상 동.서 3층석탑이다. 법당 명칭을 통해서 불상이름의 상관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안쪽에 봉안되어있는 불상의 손모양 즉 수인(手印)으로 불상이름을 배울 수 있다. 수도암에 있는 동.서 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실 안에 조각된 불상을 볼 수 있을 만큼 석탑의 상태는 양호하다. 최근에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가 언론을 타고 있다.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이영호 경북대 교수, 정현숙 원광대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도선국사비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원화 삼년(808년)에 쓴 글씨를 새긴 비석이라고 주장한다. '창주 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씨는 일제강점기에 새긴 것으로 짐작되며, 22자를 판독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천 갈항사지 동탑의 기단기록도 김생 친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유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내용이 보태지기하고  빠지기도 한다.  같은 장소도 자주 가보면 조금씩 새로움이 발견된다. 김천불교대학 학생회 임원진도 새로움을 보태고자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배운다. 배움에는 새로움이 열려 있다.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는 힘이 생긴다. 새로움을 문화유산의 이야기로 채워보자.

김천불교대학 임원진이  수도암 대적광전에서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을  배운 후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남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