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기까지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기까지
  • 김항진 기자
  • 승인 2019.07.08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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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등재 추진과정과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 추진 배경

- 목적 :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 9개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한국의 정신적·문화유산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려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서의 국가브랜드 제고

- 대상 : 소수서원(경북 영주), 남계서원(경남 함양),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필암서원(전남 장성), 도동서원(대구 달성), 병산서원(경북 안동),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 선정기준 : 고종대(1871년) 미훼철 서원, 국가 사적(2009년 이전)

- 예산 : 14개 지자체에서 예산을 분담하여 추진

□ 추진 및 운영 체계

-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주비위원회 발족(2011년 4월)

-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재청, 지자체(14곳), 9개 서원과 공동으로 세계유산 추진을 위해 등재추진단 발족(2012년 4월)

- 9개 서원의 통합관리를 위해 추진단에서 통합관리단으로 변경(2015년 8월)

- 관리단 산하에 통합관리위원회를 두어 행정(지방자치단체), 9개 서원(협의회), 학술(서원·세계유산 전문가)를 두어 당해 업무를 내실 있게 추진

□ 추진 경과

- 2011년 12월 :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록

- 2015년 01월 :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1차)

- 2015년 09월 : 이코모스 전문가 현지실사

- 2016년 04월 : 등재신청서 철회

- 2016년 11월 : 이코모스 자문미션 시행

- 2018년 01월 :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2차)

- 2018년 09월 : 이코모스 전문가 현지실사

- 2019년 05월 : 세계유산 등재 권고(이코모스)

- 2019년 07월 :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결정

※ 첨부 : 문화재청 보도자료(2019년 5월 14일)

□ 향후 계획

- 서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 환기 필요

↳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서원에 대한 이해 부족

↳ 서원과 관련된 홍보활동을 통해 이미지 제고

이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수한 점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보급할 계획

- 서원에 대한 통합관리계획 마련

↳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개별서원에 대한 관리는 이루어지나, 9개 서원에 대한 통합관리가 부족한 상황

↳ 현재 문화재청, 각 지방자치단체, 서원(9개), 한국행정학회 등 관련 연구기관과 협조하여 출자법인 설립을 추진. 이는 보다 체계적인 9개 서원의 통합관리를 위한 노력에 하나임

□ “한국의 서원” 등재신청서(국문) 주요 내용

- 탁월한 보편적 가치

신청유산인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이다. 이 유산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1543년 건립)을 포함하여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1552년 건립),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1573년 건립),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1574년 건립),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1590년 건립),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1605년 건립),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1613년 건립),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1615년 건립),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 신청유산의 순서는 건립연도를 따랐다.

한국 서원의 주요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적 지식인을 양성하였다. 둘째, 지역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하였다. 셋째, 지역사회의 공론을 형성하였다.

성리학자들은 강학을 통해 성리학적 가치관을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였고, 정기적인 제향을 통해 학파의 결집을 도모하였으며,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활동을 주도하였다.

신청유산은 성리학이 만개했던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했던 교육기관이자 무형적, 역사적 독특성의 탁월한 증거다. 성리학자들은 교육에 필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과 물리적 시설을 완성하였다. 성리학자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지역의 인물을 제향함으로써 후속 세대에게 롤모델을 제시하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계승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하였다. 또한 그들은 신청유산을 사회 교화와 정치 활동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성리학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데 기여하였다.

신청유산은 성리학적 이상 실현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였으며, 한국적으로 진화한 유학 교육시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서원은 제향인물의 연고가 있는 지역에 입지하였으며, 성리학자의 전인적 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하였다. 제향영역, 강학영역, 회합과 유식영역 등 각각의 영역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뚜렷한 하나의 서원 건축 전형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특출한 가치를 갖는 유산이다.

신청유산의 정형성은 조선사회에 서원이 등장한 초기에 빠른 속도로 정립되었으며, 이후 모든 서원 건축에 공유된 모델이 되었다. 신청유산을 구성하는 9개 서원은 이러한 뚜렷한 정형성을 확립해가는 연속적인 과정을 명확하게 증명한다. 이 건축물의 정형성은 건축물의 배치방식으로 대표된다. 서원은 강학과 제향, 교류와 유식의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각각 강당, 사우, 누마루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영역을 구성하였다. 이들 각 영역은 지형, 외부공간, 기단, 담장, 대문 등을 이용하여 유기적이고 연속적인 위계로 결합되었다.

연속유산으로서 신청유산을 구성하는 9개의 서원들은 한국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으로서 서원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이들은 한국의 서원이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며, 이들을 통해 한국 서원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소수서원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서원이다. 한국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하여 이후 건립되는 서원에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된 문헌 자료도 풍부하다. 소수서원은 교육기관으로서 서원이 강학, 제향, 회합과 유식 등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함을 제시하였다.

소수서원
소수서원
옥산 서원
옥산서원

남계서원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지역의 사림들만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사례이다. 건축적으로는 한국 서원 건축의 정형적인 배치방식이 처음 등장한 사례이다. 각각의 주요 영역을 구분하여 하나의 축선 상에 배치한 것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 배치방식의 전범이 되었다.

옥산서원은 출판과 장서의 중심기구로서의 서원의 역할을 정립하였다. 건축적으로는 서원 영역의 앞에 누마루를 도입하여 회합 및 유식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옥산서원 이후 서원에 누마루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도산서원은 서원이 학문과 학파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는 한국 서원발전의 과정을 입증한다. 제향인물의 강학처를 기반으로 건립되었으며, 강당이 비대칭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 탁월한 자연 경관으로 인하여 일대의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들이 남아 있다.

필암서원은 한국의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다.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전의 서원들이 경사지형을 이용하던 것과는 달리, 이 서원은 평탄한 지형에 적합한 건축물 배치 방식을 적용하였다.

도동서원은 서원 교육 방식의 구체적인 양상을 입증한다. 경사지를 활용한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하였다. 건축물별로 여러 개의 단을 조성하여 외부의 자연경관을 시각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용한 것은 경사지 서원의 조성 기법을 잘 보여준다.

병산서원은 서원을 교육기관으로서만이 아니라 만인소 등 사림의 공론장으로도 확대된 사림활동 중심지로서의 서원의 기능을 입증한다. 많은 학자들의 수용이 가능한 큰 규모의 만대루는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탁월하다.

병산 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은 한국 서원의 발전과정에서 성리학 이념이 지역단위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는 단계에 속한다.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하고 향촌을 교화하고자 교육과 사회적 근거지에 설립되었다.

돈암서원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한국적으로 완성한 거점으로서, 응도당을 정침이론에 맞추어 만들었다. 응도당은 정침이론을 한국의 건축언어로 재해석하여 완성한 뛰어난 건물로서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이다.

신청유산 9개 서원은 한국서원의 특징과 역사를 통합적이고 연속적으로 증명한다. 일부 서원은 장기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 화재, 자연재해 등을 겪으며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으나 피해 직후 사림들에 의해 즉각 복구되면서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복구된 이래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문화재보호법 아래에서 전문가 집단의 면밀한 검토와 공인된 문화재수리기술자에 의해 엄격한 방식으로 최소한의 보수만을 진행하는 등, 완전성과 진정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신청유산의 보존 관리는 대한민국의 문화재보호법,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재)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을 중심으로 신청유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모니터링이 수행 중에 있다.

종합하면, 9개의 대표적인 서원으로 구성된 신청유산은 16세기 중반 서원 제도의 도입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 사회에서 서원이 정착되어 나가는 역사와 건축의 성취를 증명한다. 신청유산은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며 꽃피운 중요한 사례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 신청유산은 건축적으로 한국 서원의 정형을 뚜렷하게 완성하여 이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전통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추고 있다.

□ 한국 서원의 세계유산적 가치

- 한국의 서원은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교로서, 중국에서 발원한 유학의 확산 속에서 유학문화권의 보편성과 한국의 지역성을 함께 드러내는 교육유산이다. 한국 서원의 중요한 가치는 사림들이 인간 본성의 함양과 도덕적 실천을 목적으로 설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성리학 이상사회를 이끌어 나갔다는 점과 그 속에서 뚜렷한 배치개념과 건축미학을 가진 한국 서원의 건축적 전형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특출한 가치를 갖는다. 한국의 서원은 성리학 전통이 전승되고 있는 한국 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

참고자료1

서원별 상세 설명자료

소수서원은 주세붕(1499-1554)의 주도하에, 지역 사림이 함께 건립하였다. 소수서원은 서원 교육 및 제향과 관련된 운영 규정을 최초로 세웠다. 교육에 대한 운영 규정은 강의 횟수, 평가 방식, 그리고 입학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제향 관련 규정은 제향의 횟수, 절차, 참여자의 역할 등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소수서원에서 제정한 교육 관련 규정들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교육 규정들에 영향을 끼쳤다. 소수서원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향의례의 전통을 지니고 있고 서원제도의 정착과 발전과정을 상징하는 기록문화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소수서원의 주요 제향인물은 안향(1243-1306)이다. 안향은 13세기말 한국 사회에 최초로 성리학을 원나라(1260-1368)에서 도입한 인물로서 한국 성리학의 기원이 되는 인물이다. 안향은 이 지역 출신으로 현재의 소수서원의 입지는 안향이 생전에 공부했던 장소였다. 이후 안축(1287-1348), 안보(1302-1357), 주세붕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안축과 안보는 안향의 후손이자 지역 출신으로서 성리학 이해가 높은 성리학자였다.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소수서원의 건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제향인물을 공자가 아닌 지역의 선현으로 선정하는 서원의 전통은 소수서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옥산서원은 경주지역 사림의 주도로 건립된 서원으로 경상북도 동부지역 사림의 근거지였다. 옥산서원은 출판 및 장서의 중심기구로서의 서원 기능을 증명한다. 옥산서원에는 제향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관된 다양한 서적들이 출판, 소장되어 있다.

옥산서원은 입학규정, 교육 평가 내용과 관련된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어 서원의 교육 방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옥산서원에는 서원의 교육제도와 관련하여 원생의 선발과 평가에 대한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다. 원생 선발관련 자료는 천거 유생의 명단과 천거자가 기재되어 있는데, 봄․가을과 각종 모임이 있을 때마다 천거하였다. 평가 자료인 강지(講紙)는 원생 시험의 성적 기록부로서 시험과목에 따라 성적을 4등급으로 구분하고 성적 아래에 평가자의 서명이 되어 있다.

제향인물 이언적(1491-1553)은 한국 성리학 발전 단계에서 존재론․우주론 등의 성리학 이론을 탐구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주도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16세기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성리학에 기반을 둔 정치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고, 왕실의 성리학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이언적은 관료․학자로서 활동했던 사림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옥산서원은 경상도 동부의 서원과 사림의 공론을 주도하며 발전해 갔다. 지역의 다양한 이슈에 관해 옥산서원에 모여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였다. 옥산서원의 사림은 19세기 말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성리학 전통을 고수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근대화 정책에 반발하여 지역 사림들의 연명상소인 만인소를 주도하였다. 8,849명의 사림이 서명한 이 자료는 현재 옥산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도산서원의 주향인물은 이황(1501-1570)이다. 이황은 안동 출신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성리학이 한국에서 정착되고 체계화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황은 16세기 중반 한국의 성리학 지성계를 주도하였고, 그의 성리학 연구를 기점으로 한국의 성리학이 이론적․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황의 성리학 연구 및 저술들은 한국의 많은 사림들의 지침서가 되었고, 17세기에는 일본에 전래되어 영양을 끼쳤다. 이황의 주도로 16세기 중후반 서원 건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에 의해 서원의 교육 및 제향의례와 관련된 사항들이 정리되었다. 한국 성리학의 정착과 서원 보급에 있어 이황은 가장 상징되는 인물이다. 1614년에는 이황의 제자였던 조목(1524-1606)도 함께 종향되었다.

병산서원은 류성룡의 제자, 후손, 그리고 안동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원은 교육기관에서 출발했지만, 교육적 기능 뿐만 아니라 점차 사림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모습의 한 측면을 병산서원에서 볼 수 있는데, 병산서원은 만인소를 조선시대에 최초로 작성하는 등 공론장으로서 서원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곳이다. 병산서원 목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병산서원의 주향인물은 류성룡(1542-1607)이다. 류성룡은 16세기 후반 영의정․도체찰사로 임진왜란을 수행한 인물이다. 사림이 중앙 정계에 최고위직에 진출하였다는 사실은 사림이 지역을 넘어서 주요 정책과정의 핵심적인 위치로 발돋움한 관료형 사림의 유형을 나타낸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과정에서『징비록』,『군문등록』등 여러 저술들을 남겼는데, 병산서원에서는 이를 출판 간행하였다. 류성룡의 저술은 일본에까지 보급되어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읽혀졌다. 1662년에는 류성룡의 아들이자 그의 학문을 계승한 류진(1582-1635)을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한국 서원의 발전 과정에서 서원의 기능이 교육에서 공론장으로 확장된 사례에 속한다. 병산서원은 한국 최초로 수천명이 연명한 유소를 올린 서원이며 지역의 공론을 형성하고 종합, 산출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병산서원에 소장된 다양한 고문서들은 병산서원이 지역의 공론을 수합하고 조정해 나간 전반적인 사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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