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감자조림=할머니 생각
알감자조림=할머니 생각
  • 노정희
  • 승인 2019.07.06 12: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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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감자조림 해주신 할머니 생각
찬밥에 물 말아 알감자조림만 있으면 그뜬
알감자조림
알감자조림

엄니 생신이라 시골에 갔더니 20kg 감자 박스가 뜨락에 줄 서 있다. 텃밭에서 농사 지은 감자 중에 굵은 것만 골라 담아 자식들 차에 실어 보내려고 준비해 둔 것이다. 박스 옆에는 알감자가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큰언니가 왔으면 봉지를 슬쩍 밀쳤겠건만, 하필 다음 주에 시골 온다며 불참이지 뭔가.

엄니는 항상 그러셨다. “내 자식들은 음식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은 뇌리에 박혀 푸성귀 한 이파리라도 허투루 버리지 못하는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엄니가 애써 지은 농산물이잖은가, 아무렴 알뜰히, 감사히 먹어야제.

요즘은 음식 장만을 해도 예전 같지 않다. 제각각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하니 반찬을 많이 장만하면 외려 난감할 때가 있다. 이리저리 퍼 날라도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서 천덕꾸러기가 된다.

집에 가져온 알감자를 며칠 동안 내버려 뒀다. 알감자조림을 해도 나 혼자만 먹을 텐데, 큰언니한테 갖다 줘버릴까. 아니다, 언니도 이젠 귀찮을 수 있겠다. 알감자를 바득바득 씻어서 큰 냄비에 안쳤다. 고등어자반 대신에 다시마 몇 조각과 청양고추를 넣었다.

감자 농사는 엄니가 지었는데, 감자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농사철이 되면 엄니는 늘 밭에서 지냈고 집안 살림은 할머니가 맡았다. 앞 논에는 올감자를 심었다. 감자를 캐내어야 모내기를 하였다. 캐온 감자는 헛간이며, 마루 아래며 가득하게 채워졌다. 굵은 감자를 고르고 난 후의 알 작은 감자는 전분용으로 물에 담가 우려내기도 했으나 밑반찬용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할머니는 마당 구석에 있는 화덕에 불을 지피고 양은 솥에 알감자를 가득 안쳤다. 간장과 고추장을 넣고 오일장에서 사 온 고등어자반을 넣어 푹덕푹덕 끓였다. 몇 시간 졸인다고 감자에 맛이 배어드는 게 아니다. 다음날도 졸이고, 그다음 날도 졸였다. 아마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데워두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알감자는 양념과 고등어 맛을 빨아들여 진한 맛으로 쪼글쪼글 졸아들었다.

여름철 반찬으로는 알감자조림이 그만이었다. 짭짤하게 졸인 감자는 쉬이 상하지도 않았지만 대식구가 먹다보니 한 톨 남김없이 알뜰하게 먹었다. 마뜩한 반찬이 없을 때는 찬밥에 물 말아서 감자조림 반찬만 있으면 그뜬했다.    

감자 철이 되면 할머니가 해주신 감자조림이 떠오른다. 생각만 앞설 뿐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은 ‘할머니표 감자조림’은 이삼일 동안의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식당에 나오는 알감자조림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식당표 알감자조림은 한 번 익혀낸 후 간장과 물엿에 잠시 조린 듯 버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자 속까지 간이 배어들지도 않았거니와 너무 달아서 거부감을 준다.

알감자조림=할머니이다. 함흥이 고향이신 할머니, 감자 송편 만들어주신 할머니, 여름밤 멍석에 앉아 배 문질러 주신 할머니, 겨울밤 화롯불에 고구마 구워주며 옛날이야기 해주신 할머니, 오일장에 다녀오며 풀빵 사 오신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