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온달과 평강공주’, 홍현호・ 천영자 부부
‘新 온달과 평강공주’, 홍현호・ 천영자 부부
  • 노정희
  • 승인 2019.07.05 15: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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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보아도 꿀이 흐르는 잉꼬부부
덕호 농원에 ‘덕호 노래방’이 있다구요?
‘콩’이도 식구입니다.
홍현호, 천영자 부부
홍현호, 천영자 부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부근에 ‘덕호 농원’이 있다.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울타리가 쳐진 곳도 아니다. 덕호 농원 주인장의 처제(천영애 씨)가 임의대로 붙인 것이다. 이제는 입소문으로 퍼진 공식적인 이름이 되었다.

“‘덕호(德浩)’는 장인께서 결혼하자마자 지어주셨습니다. 나이 들면 아호(雅號)를 사용해야지 않겠냐며, 맏사위인 저에게 주신 이름이지요.”

홍현호(61. 경산시 사동) 씨와 천영자(58) 씨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 덕호 농원에 들렀더니 ‘新 온달과 평강공주’ 실화 극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그리고 ‘콩이’의 재롱이 한창이다. 온달장군 홍현호 씨는 씨익 웃고 있으나 평강공주 천영자 씨의 웃음소리는 농원을 뒤덮는다. 하얀 털옷에 눈동자가 말똥거리는 콩이는 덕호 농원의 ‘야시’ 역할을 맡은 여우개이다.

야시 짓하는 '콩이'
야시 짓하는 '콩이'

콩이는 아는 사람이 들르면 어쩔 줄을 모른다. 난리도 그런 난리는 없다. 몹시 반갑다는 인사가 과해서 오줌까지 질금거린다. 그럴 때는 쳐다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콩이가 가장 바쁠 때는 주인장이 고기 먹을 때이다. 고기 한 점 얻어먹으려고 온갖 아부를 다 떤다. 라면을 끓이면 종이컵을 물고 와서 얌전히 기다리고, 감자를 삶으면 가스레인지 앞에서 지키고 앉았다. 얻어먹겠다고 하는 행동이 어찌나 밉살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평강공주는 그런 콩이를 끔찍이 아낀다.

홍 씨의 사업장은 경북 청도에 있다. 청도시장 부근의 공주다방, 대지다방, 불꽃다방을 지나 목화다방 부근에 자리한다. 그 부근에서 ‘아세아농기계대리점’을 한다. 대리점 대표이니만큼 근처 요식업계의 VIP 고객이 아닐는지.

-홍 대표님, 본업을 두고 과수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나이가 들어가니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지칩니다.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가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향에 부모님이 물려준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업장에서 비루한 기분으로 있다가 농장에 들어와 과수를 돌보면 살맛이 나거든요. 농장 마을에 어머니도 계십니다. 수시로 어머니한테 들렀다가 농장으로 옵니다.

10년 전부터 농원에 농작물을 심었습니다. 서서히 과수도 심었지요. 농사를 잘 짓는 게 아니라 그냥 농작물을 돌보고 있습니다. 저희 농원에는 복숭아가 일곱 종류입니다. 왜냐하면 복숭아가 한꺼번에 다 익으면 판매나 일 처리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익는 시기에 따라 종류에 차등을 두었지요. 각기 다른 종류를 심어 가장 먼저 백도를 수확하고 그다음에 황도를 수확하여 일손을 분배시켰습니다.

3년 전에는 샤인머스켓이라는 포도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는 수확물을 주변인과 나눠 먹었습니다. 올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시험 삼아 멜론을 300포기 심어보았습니다. 이것 역시 수확하면 이웃과 나눠 먹을 겁니다.

나는 전업 농부는 아닙니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농사인 것 같아요. 본업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농장에서 풀어내고 있으니 복 받은 인생이지요.

올해 300포기 심은 멜론
올해 300포기 심은 멜론

-사모님, 정말 미인이십니다. 농장 일이 힘들지 않으신지요?

▶복숭아 딸 때는 간혹 농장에서 잠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새벽에 일어난 남편이 복숭아를 다 따서 이미 창고에 가져다 둔 상태입니다. 저는 밥상 차리고 복숭아 선별작업을 거들어주는 정도입니다. 힘든 일은 남편이 다 하고 있어요. 복숭아 농사는 남편이 짓고, 복숭아 판 돈은 제 주머니에 넣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이 남편입니다.

언젠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었어요. 시장에서 지갑을 통째로 잃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쓸 현금도 있었고, 신분증과 카드도 지갑에 다 들어있었거든요. 속이 상해 여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잃어버린 지갑 때문에 방방 뛰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더군요. 해외에는 여권만 가져가면 되니까 마음 가라앉히고 잘 다녀오라구요. 나를 위로해 주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나는 가끔 무언가를 빠트리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온화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줍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지지해 주고, 항상 내 편이 되어줍니다. 시집을 잘 온 거지요. 남편 잘 만나 행복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며칠 전에 지인과 외출을 했습니다. 첫 번째 코스로 백화점에 들렀습니다. 요즘 패션 트랜드를 아이쇼핑하다가 어느 순간 ‘비싸다’는 암묵의 눈치가 오갑니다. 그래도 백화점에 왔는데 점심은 먹고 가자, 식당가에 들러 우아하게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는 도시철도를 이용하여 서문시장으로 갑니다. 시장에는 구경할 게 많습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티셔츠를 장만합니다. 이것저것 둘러본 후에 다리도 쉴 겸 일천 원짜리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십니다. 동행한 지인과 함께 ‘천 원의 행복’ 운운합니다. 옆자리에서 컵에 붙은 밥알을 떼어먹으려고 식혜 컵을 탈탈 털어내는 아주머니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합니다. 우리나 그 아주머니나 참 소박하잖아요. ‘아, 이게 행복이구나’ 싶어요.

-대표님, 덕호 농원에 ‘덕호 노래방’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내가 음악 쪽에 취미가 있습니다. 저기, 노래방이 있습니다. 엄청 아끼는 공간입니다. 노래방키보드를 일괄 갖추어서 꾸몄습니다. 천정에 사이키 조명도 달았습니다. 가끔 처제가 예쁜 아지매들을 데리고 옵니다. 예쁜 아지매들이 다녀가야 복숭아도 예쁘게 익겠지요. 그때 노래방을 제공합니다.

-대표님, 이렇게 차려놓으면 사모님이 잔소리하지 않는지요?

▶우리 부부는 서로의 취미를 인정하고 지지해 줍니다. 아내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아내 역시 나를 배려해 줍니다. 부부싸움의 98%는 남편의 원인 제공으로 싸울 확률이 높습니다. 집사람은 예쁘지요, 음식도 잘하지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농원에 따라와 주는 것만 해도 좋습니다. 일을 거들어주면 더 좋구요. 하여간 여자가 똑똑해야 집안이 잘되는 겁니다.

복숭아 선별작업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홍 씨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잉꼬부부의 첫 번째, 남편의 공식은 무조건 아내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잉꼬부부의 첫 번째, 아내의 공식은 무조건 남편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추가로 ‘예뻐야’ 한다니 이를 어쩌나.

‘新 온달과 평강공주’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행복의 완성은 내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성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