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이야말로 모든 문학의 출발점” 혜암 최춘해 시인
“아동문학이야말로 모든 문학의 출발점” 혜암 최춘해 시인
  • 강효금·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7.03 09: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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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최춘해 시인이 말하는 아동문학과 제1회 혜암아동문학상

 

우리 아동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최춘해 시인        이원선 기자
우리 아동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최춘해 시인                 이원선 기자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동시 105편’에 선정된 시인. 1967년 발표된 「시계가 셈을 세면」이라는 동시집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을 아동문학을 위해 헌신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이제 다시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준 혜암 최춘해(87) 시인을 만났다.

 

◆ 흙의 시인

 

- 시를 쓰기 시작하신 것은 언제부터인지요.

▶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막 해방이 되고 난 뒤,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요. 교과서도 없었고 등사를 해서 그걸 가지고 수업을 했습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문득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꽤 이른 스무 살 무렵, 상주 사벌 동부국민학교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자연히 동시, 동화와 가까워졌습니다.

 

- ‘흙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겨울 땅속'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습니다. 같은 해에 '한글문학'에 이원수 선생님이 '이른 봄'이라는 작품을 추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신춘문예와 문예지 추천이라는 두 갈래로 문단에 나오게 된 점은 당시로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첫 동시집으로 「시계가 셈을 세면」을 출간했습니다. 1980년 '세계 아동의 해' 기념 교사부문 작품 모집 동시부문에서 연작시 '흙'으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여러모로 흙은 제게 고향이자 어머니, 자연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흙과 더불어 자랐습니다. 저도 흙의 한 부분입니다. 봄이면 흙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흙에 대한 마음을 담아 연작시로 발표한 것에서 ‘흙의 시인’이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흙은 우리의 뿌리이자 어머니입니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은 순수합니다. 흙을 닮아 거짓이 없습니다. 열성을 다해 순리를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저는 이 흙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 마음을 사랑합니다.

흙은 너무 지쳐서/ 겨운 잠을 잔다./ 북풍이 몰아쳐도/ 곤하게 잠을 잔다.// 살갗은 얼어도/ 품속 개구리 씨앗들을/ 제 체온으로 다독인다./ 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 흙의 버릇이다./ 풀뿌리 하나라도/ 감기 들까 걱정이다.// 입춘 무렵 흙은/ 잠이 깨어도/ 자는 척 누워 있다./ 품속 어린 것들/ 선잠 깰까봐.     <흙 2>

 

- '경북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우리 문장 바로 쓰기'와 '우리글 바로 쓰기' 에 앞장서신 이오덕 선생님과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 이오덕 선생님과는 1984년 ‘경북아동문학회’ 창립회원으로 선생님이 회장을 맡아 이끌어 가며 많은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김녹촌, 김상문 선생님도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해에 '절실한 내용이 감동을 준다'라는 아동문학평론도 발표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활을 표현해내도록 지도하셨지요. “사투리를 고치지 마라”하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아이들의 시집도 여러 권 발행했습니다. 교육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셨는데, 한 예로 ‘글짓기’는 꾸며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글쓰기’로 바꿀 것을 제안해서 모든 교육과정에서 ‘글쓰기’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퇴직 후부터 2003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울에서 '어린이 문학회'를 만들어 계속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선생님이 대학에서 강의할 때면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요. 아동문학은 모든 문학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장르입니다. 순수한 마음 없이 할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공감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동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해가리라 생각합니다.

 

◆ 모든 작품의 바탕은 사랑

 

- 혜암아동문학회에서 10년 동안 직접 지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처음에는 ‘최춘해 아동문학교실’로 출발해서 2003년부터 10년 동안 직접 강의를 하고, 그 후 그 자리를 제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제가 제자들에게 강의할 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情으로 산다. 情은 사랑이지요.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품과 사람 됨됨이는 같아야 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 글은 빛깔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꾸준히 계속해서 쓰다 보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후학들이 사조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 상주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교사로 ‘상주 글짓기회’에서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윤석중 선생님이 상주를 일컬어 ‘동시의 마을’이라 부를 만큼 그 당시 상주의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교단에서 ‘글짓기 지도’를 생활지도의 한 축으로 생각하고 계속 ‘일기 쓰기’를 지도했습니다. 매일 아이들의 글을 읽고 붉은 글씨로 평을 적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적어주는 몇 줄의 평을 읽고 싶어 열심히 일기를 썼습니다. 그때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백일장이 있으면 아이들을 인솔해서 차비를 들여가며 김천이며 대구를 다녔습니다. 그 보상으로 경향신문에서 주는 ‘경향문화상’을 ‘상주 글짓기회’가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시화전도 열고 「동시의 마을」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바쁘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혜암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아 오랜 시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유병길 작가           이원선 기자
혜암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아 오랜 시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유병길 작가     이원선 기자

 

 

◆ 우리 아동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

 

-‘혜암아동문학상’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 혜암아동문학회에서 강의를 하며 문학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문학상은 사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너무 주제넘은 것은 아닌가. 하지만 제자들의 강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을 제정했습니다. 우리 문학상은 신인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신인은 새로운 사람,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이 상은 제가 내놓은 기금을 쓰지 않고 그동안 ‘혜암아동문학회’를 수료한 350여 명이 성금을 모아 만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한결 더 의미 있는 상입니다. 저는 이 상을 통해 우리 아동문학의 미래를 봅니다. 이번 공모전에도 많은 분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응모해 주셨습니다. 이 상을 통해 많은 신인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로 발돋움하고, 탄탄하게 우리 아동문학의 미래를 만들어가길 기대합니다.

혜암아동문학상을 위해 동분서주한 유병길(74, 혜암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작가는 지금도 교육생과 처음 만나는 7월의 첫 주부터 셋째 주까지는, 혜암 선생님이 강의실에서 아동문학 전반에 대해 교육한다고 덧붙였다. 직접 교육생을 지도하는 권영욱(59, 동시발전소 기획위원) 작가와 정순오(56, 논술강사) 작가는 교육생들은 일 년에 걸친 기간을 거쳐야 비로소 수료증을 받게 된다며, 혜암아동문학회 회원들의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이 오늘날 대구를 아동문학의 중심지로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첫 강의 준비물은 ‘국어사전’과 200자 원고지 3매였다는 유병길 운영위원장의 이야기는 변치 않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왼쪽부터 심사를 맡은 박혜선 작가, 동시 부문 당선자 안명숙 씨, 혜암 최춘해 시인, 유병길 작가, 동화 부문 당선자 유하정 씨, 심사를 맡은  이금이 작가       이원선 기자
왼쪽부터 심사를 맡은 박혜선 작가, 동시 부문 당선자 안명숙 씨, 혜암 최춘해 시인, 유병길 작가, 동화 부문 당선자 유하정 씨, 심사를 맡은 이금이 작가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