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이프] 파독 간호사 김숙화 씨를 만나다④
[마이라이프] 파독 간호사 김숙화 씨를 만나다④
  • 장기성 · 강효금 기자
  • 승인 2019.06.28 17:05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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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남의 눈치 안 봐도 상관없지만, 한국은 남을 위해 사는 세상으로 보일 때가 많다. 한국의 복지제도와 사회적 기반시설이 독일을 앞질러 긍지 느껴질 때도 많다. 외국인 노동자에 더 많은 배려와 관심 가졌으면
1974년 독일에서 설을 맞이했다. 고국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파독 간호사 친구들과 함께 병원 앞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새배를 대신해야했다. 김숙화씨 제공
1974년 독일에서 설을 맞이했다. 고국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파독 간호사 친구들과 함께 병원 앞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새배를 대신해야했다. 김숙화씨 제공

 

김경희 박사와 에켄스베르거(Eckensberger)가 쓴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어쨌든 그렇게 인기가 좋던 아시아로부터 온 ‘백의의 천사’들은 1975년을 절정으로 새로운 국면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독일정부가 더 이상 한국 간호사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책을 표명하였고, 독일에 주재하는 외국인 간호사도 계약이 만기되는 대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것은 간단치 않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생계를 위하여 독일로 직장을 찾아온 이들이 귀국하는 일 자체가 간단치 않았을 뿐 아니라, 독일이 언제는 자기들이 필요로 하니 오라고 하고 이제는 필요 없으니, 가라고 하는 정책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병원에서 한국 간호사들의 손길을 거친 독일인들은 한국 여성의 부드러운 손길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한사코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로서는 점증하는 독일인 실업자 문제에 이렇게라도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독일 여성들도 이제는 간호사 모집에 상당히 많은 지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파독 한국 간호사들은 이러한 독일의 정책에 순응하며 대부분이 귀국길에 올랐고, 더러는 개인적 사정으로 독일에 남거나 미국, 캐나다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 남성과 결혼하여 독일국민으로 사는 여성들도 없지 않았다. 1975년을 정점으로 한국 간호사의 파독이 가파른 하강곡선을 긋게 되었다.

 

-독일생활이 한국보다 편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남의 눈치 안보고 제 편한 데로 사는 것입니다. 얼굴 화장 열심히 안 해도 되니 참 편하지요.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다녀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습니다. 제 검은 머리카락과 햇볕 받아 그을린 피부색을 독일 사람들은 오히려 부러워하지요. 휴가 가면 일광욕이 기본인 것도 한국과 다른 것 같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내 피부도 네 피부를 따라갈려 한다" 면서 우리를 부러워하고 격려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서 인기가 많고 살기가 참 편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남편이라고 꼰대질 하지 않고요, 시집 눈치 안 봐도 되니 참 좋습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 학비를 안 내서 좋고, 주부들이 아침부터 밥·반찬에다 국 끓이고 볶고 지지고... 하지 않아도 되니 주부 천국이지요. 그러니 주부들 살기가 편합니다. 50세 이상이라도 자신이 일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직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독일은 일상에 쫓기지 않은 정서적 자유라 할까요, 아니면 정신적인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삶 자체를 즐기는 것 말이지요. 여행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여행을 위해 산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어떤 점이 독일보다 한국이 더 부럼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 한국은 음식 천국이라 생각합니다. 종류도 많고 너무 맛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공공 화장실, 잘 닦인 도로, 바닷가 산책로와 산속의 둘레길이 참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독일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한국이 부러울 때가 더 많습니다. 식당에 가면 물이 무료라서 참 좋습니다. 고궁이나 민속촌, 사찰도 65세 이상이면 무료입장이지 않습니까? 의료공단에서 1급 인정받으면 요양보호사가 하루에 4시간씩 와서 환자를 돌봐주지요, 심지어 밥과 반찬 설거지까지 해주고 가더군요. 제 친정어머니(92세)가 지금 국가로부터 이런 혜택을 받고 있답니다. 독일엔 65세 이상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입장할 때, 일반 성인 입장료에서 1유로내지 2유로만 싸게 해줍니다. 복지제도 면에서도 한국이 독일보다 앞선 게 더 많은 것 같아서 참 부럽고 뿌듯합니다.

 

-독일에서 45년 동안 살고 있지만 아직도 독일에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음식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22년 살았고, 독일에서 산지도 벌써 45년 되었는데도 음식은 한국음식이 제일이고, 제 입맛에 맞는 것 같습니다.

 

-파독 간호사 출신 가운데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고, 현지 독일인과 결혼한 사람이 있을 텐데요. 이제 까지 지켜보니 서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까. 예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한 케이스도 봤습니까?

▶저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한국교민 모임이 있는데요, 여자들만 15명입니다. 그 가운데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1명이고, 나머지 14명은 독일인과 결혼했습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하던, 독일 사람과 결혼하던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적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주로 배우자가 다른 이성(異性) 친구를 새로 사귀면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 슈뢰더(Schröder,74) 전 총리는 총리되기 전에 4번 이혼하고 4번 결혼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5번째로 한국 여성(47)과 또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선 사랑과 결혼은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혼이라는 경력이 선출직 공직자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것 어딘들 쉬운 게 있겠습니까.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 계획입니까?

▶지금까지 30개국을 여행했는데, 건강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남편과 같이 카페(Tanzcafe)에서 커피 마시고 춤도 추며 여생을 맘껏 즐기고 싶습니다. 한국 부모님 집에도 매년 한번씩 4주 이상 머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간호사 출신이니 치매 환자들에게 가족 앨범도 같이 봐주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걷지 못하는 환자들에게는 휠체어에 태워서 산책시켜 드리는 봉사활동도 하면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앞에서 얘기했지만 우리나라는 한때 필리핀 보다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저는 독일에서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저가 근무했던 병원에선 곧잘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점심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라든지 혹은 "병원에 어떤 오락시설이 있으면 좋겠습니까?" 같은 질문 말이지요. 우리 한국 간호사의 어려운 처지나 형편을 늘 경청했습니다. 국가나 문화 그리고 종교에 대해 차별 없이 대해준 독일이 고마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어느 날 병원동료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  김숙화씨 제공
정년퇴임을 앞둔 어느 날 병원동료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 김숙화씨 제공

 

-45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면, 독일로 가겠습니까. 간호사로 말이지요.

▶예, 기꺼이 가겠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나서 먼 산을 보니, 여름이 성큼 밀려오고 있었다. 김숙화 간호사는 오늘까지 고향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머물다가, 내일 대구를 거쳐 모레는 다시 독일로 떠난다고 한다. 짧은 고국여행이 아쉬웠던지 작별하는 그의 두 손은 무겁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며칠 후에는 독일에서 조국 대한민국을 가슴속에 그리며, 소소한 일상이 독일에서 쳇바퀴 돌 듯 이어질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딘들 다를 게 있는가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를 다시금 둘러보고 되새김 하는데 좋은 계기가 그리고 기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