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예천 구두병원 운영' 이상청 씨
'100년 역사 예천 구두병원 운영' 이상청 씨
  • 장광현 기자
  • 승인 2019.06.26 08:3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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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수선업 30여 년 힘들게 번돈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으로 베풀어 ... 헤진 헌 구두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를 깁는 수선공이 되고 싶어
예천구두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청씨. 장광현 기자.
예천구두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청 씨. 장광현 기자.

“국민은행 앞을 지나칠 때마다 25년 전 빌린 돈 1만원을 갚지 못해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지난 6월 8일 서울에 사는 김모(38세, 대심리 출신)씨가 25년전 초등학교 시절에 배가 고파 국민은행 예천지점 앞에서 구두병원을 운영하는 이상청(59세)씨에게 빌린 돈 1만원을 25년만에 이자와 함께 10만원으로 되갚아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은행 예천지점 앞의 2평 남짓한 구두병원. 장광현 기자.
국민은행 예천지점 앞의 2평 남짓한 구두병원. 장광현 기자.

김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초등학교 6학년시절에 너무 배가 고팠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구두병원 이씨에게 1만원을 빌렸다. (사)한국BBS예천군지회 회원인 이씨는 평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전달을 비롯해 불우이웃돕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에 선뜻 빌려주었다.

그당시 초등학생에게 1만원은 큰 돈으로 김씨는 빌린 돈으로 빵을 사먹었고 갚아야지 하다가 어느새 세월이 25년이 훌쩍 지났다. 그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김씨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꿈을 이루며 자수성가했다.

가끔 고향에 들러 국민은행 예천지점 앞을 지날때면 늘 어릴 적 기억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김씨는 결혼식 참석하는 길에 25년전의 빚(?)을 되갚으며 기분이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2평 남짓한 가게에서 30년 넘게 구두수선업을 하는 이씨는 처음에는 맞춤형 양복점을 운영했으나 저가의 기성 양복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경쟁력을 잃어 양복점을 접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국민은행 앞 구두병원은 그동안 주인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첫 아기 백일 때 시작한 구두 수선업은 3남매를 대학까지 졸업시킬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으나 이제는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구두병원은 국민은행과 버스승강장을 끼고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장날마다 찾아오는 시골 노인부터 직장인, 학생, 택시기사, 자영업자 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살아온 인생을 말하다보니 어느덧 ‘인생복덕방’이 되었다.

이씨는 분실 지갑도 많이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었는데 사례금으로 받은 것은 예천노인복지회관 또는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하곤 했다. 세상을 향한 그의 선행은 그동안 지역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됐다.

자신도 청각장애인이면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나눌 줄 알았던 이씨는 어린시절 가난 때문에 고생을 겪으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늘 간직하며 살아왔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독거노인, 환경미화원, 장기투병자, 경로당, 모교 등에 매월 수입액의 일부를 전달하며 선행을 펼쳐왔다.

BBS예천군지부 지도위원, 예천군 번영회, 바르게살기운동예천군협의회, 예천읍 체육회 이사, 예천읍 서본1리 반장인 이씨는 다방면에 걸친 헌신적인 사회봉사 활동으로 그동안 예천경찰서장, 국민은행장, 대구지방검찰청상주지청장, BBS예천군지부, 예천군수, 교보장학회, 경상북도지사 등 수차례 표창을 받았다.

 구두수선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어쩌면 자신이 마직막 구두병원 주인이 될 것 같다는 ‘기부천사’ 이씨는 구두수선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국민은행 예천지점 앞 200여 년 팽나무 아래에서 30년 외길 인생 터줏대감이 되어 가고 있다.

헤진 헌 구두가 그의 손을 가치면서 새 구두가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를 깁는 수선공이 되고 싶다며 남은 인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 한 조각이라도 더 나누며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는 이씨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