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프로타고라스의 패러독스
(17) 프로타고라스의 패러독스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6.24 1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인간척도론(人間尺度論, Homo mensura satz)을 주장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의 판단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 위키백과
프로타고라스 위키백과

인간척도론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모든 사물의 판단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동물이나 물체가 아닌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새가 소리를 지르는 경우를 보자. 이것은 의사소통일 수도 있고, 울음을 우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프로타고라스 입장에서는 인간이 판단할 때 새가 우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곧 진리라는 것이다. 사실 새의 입장에서는 노래를 불렀는데도 말이다.

둘째는 사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판단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척도론에서의 인간은 개별적 인간을 말한다. 따라서 세상의 진리 또는 사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 개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동일한 인물일지라도 그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있는 경우 이 세상은 천국처럼 느껴지고, 원수와 함께 있는 경우 이 세상은 지옥으로 비쳐진다.

그리고 감각은 대상이 우리의 감각기관에 작용함으로써 생겨난다. 그런데 감각 그 자체도 늘 변하고, 감각의 대상 역시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감각에 의해 성립되는 지식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세상에 보편타당한 지식은 없다. 절대적이고 보편적 진리를 주장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를 비판한 것은 당연하다.

프로타고라스는 최초이자 대표적인 소피스트(Sophist)이다. 원래 소피스트는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형이상학적인 철학이나 지식 대신 얄팍한 기술의 변론술과 웅변술, 대화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궤변론자라고 비판한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의 관심을 피시스(physis ; 자연세계)에서 노모스(nomos ; 인간세계)로 옮겨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세계의 법칙 대신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법칙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그들을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철학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프로타고라스도 소피스트로서 변론술을 가르치고 높은 명성과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상대주의 입장에서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있는지 없는지 분명치 않은 신()이라는 존재를 탐구하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뒤이어 닥친 전염병 등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신을 믿고 신에 의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신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그를 무신론자라는 죄명으로 고발하였다. 결국 말년에 아테네에서 추방당하고, 저서들이 불태워지는 모욕을 당했다. 도피 길에 나서 시칠리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으나 배가 침몰하여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프로타고라스는 당대의 유명한 변론가였다. 하루는 유아틀루스(Euathlus)라는 청년이 웅변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다른 사람에 비해 수강료가 비쌌다. 그래서 청년은 수강료의 반을 미리 내고, 나머지 반은 수강을 다 마치고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다만, 수강 후 실력이 향상되어 재판에 이겼을 경우에만 지불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수강이 끝나자 청년은 나머지 수강료를 낼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가 재판을 걸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강료를 받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만약 재판에서 이긴다면 이겼으니 당연히 받을 수 있고, 만약 자신이 재판에서 지고 청년이 이긴다면 청년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약속대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청년도 자신은 절대로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하였다. 만약 재판에서 이긴다면 이겼으니 낼 필요가 없고, 만약 자신이 재판에서 지고 스승이 이긴다면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단서조항에 따라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약속

(계약)

제자가 재판에서 이길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면 수강료를 지급한다

(“재판에서 질 경우 수강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재판상

계약상

재판

스승이 이기고

제자가 질 경우

지급해야 한다

지급할 필요 없다

제자가 이기고

스승이 질 경우

지급할 필요 없다

지급해야 한다

 

이른바 프로타고라스의 패러독스(paradox)이다. 패러독스는 역설(逆說), 역리(逆理), 배리(背理) 등으로 번역된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순되어 있거나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이나 사고 실험 등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논(Zenon)의 패러독스를 들 수 있다. 제논은 금욕주의 사상인 스토아학파(Stoicism)의 창시자이다. 그리스 신화에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Achilles)가 나온다. 발이 매우 빠른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제논은 아킬레스가 느림보 거북이를 앞세워 놓고 달리기 시합을 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둘이 동시에 출발하는 경우 아킬레스가 거북이 출발점에 도착하는 순간 거북이도 조금 전진한다. 그 상태에서 다시 동시에 출발하면 마찬가지로 거북이가 조금 앞에 전진해있다. 이것을 계속하면 동일한 결과가 나오며, 항상 거북이가 조금 앞에 전진해 있다는 논리이다.

제논  위키백과
제논 위키백과

 

패러독스는 모순(矛盾)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창을 들어 보이며 이 창으로 어떤 방패도 꿰뚫을 수가 있다고 자랑하였다. 그리고 방패를 들어 보이며 이 방패는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다고 자랑하였다. 그러자 구경꾼들 중 한 명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거짓말쟁이 패러독스가 있다.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패러독스라고도 한다. 기원전 약 600년경 크레타 섬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 에피메니데스가 주장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 김기자가 한국인은 모두 거짓말쟁이이다라고 했다 하자.

먼저, 이 문장을 참이라고 가정하면, ① 한국인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고”, 한국인 김기자가 말한 이 문장도 거짓이 된다. 따라서 ② 한국인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아닌 것으로 된다.

다음, 이 문장을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① 한국인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아닌 것으로 되고, 한국인 김기자가 말한 이 문장도 거짓이 아닌 것으로 된다. 따라서 ② 한국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로 된다. 두 가지 가정에서 각각 사이에는 서로 모순이 생긴다.

그리고 악어 패러독스가 있다. 아기를 납치한 악어가 아기의 엄마에게 "내가 아기를 잡아먹을 것인지 놓아줄 것인지 알아맞히면 아기를 놓아 주겠다"라고 했다. 엄마는 현명하게 잡아먹을 거야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악어는 아기를 놓아주고 말았다. 왜냐하면 악어가 아기를 잡아먹으면 엄마의 말이 맞기 때문에 놓아 주어야 하고, 아기를 놓아주게 되면 엄마의 말이 틀리므로 잡아먹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놓아줄 거야"라고 대답했다면 악어는 잡아먹든지 놓아주든지 모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아기를 잡아먹는다면 엄마의 말이 틀린 것이므로 문제 될 것이 없고, 놓아준다면 엄마의 말이 맞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패러독스를 얘기할 때 가장 쉬운 예가 전지전능한 신()이 과연 존재할까?”이다. 신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을까?”이다. 만들 수 없다고 하면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바위를 못 드는 신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므로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패러독스는 모두가 타당하거나 타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타당하고 일부는 타당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 모순적 패러독스에 속에 살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면서 부정과 불법을 자행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남을 비방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남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정치권에서는 연일 막말과 정쟁으로 자기 모순적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공동선(共同善)을 침해하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패러독스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무엇이 진리이고 지혜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