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습지와 풍차 그리고 삘기
소래습지와 풍차 그리고 삘기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6.20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래습지의 여명을 만나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맛 본 백짜장
소래습지 여명. 이원선 기자
소래습지 여명. 이원선 기자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로154번길 77(논현동 1-17번지)에 위치한 소래습지는 1930년대 일본에 의해 염전이 세워진 곳이다. 수도권의 유일한 습지공원으로 생태전시관, 자연학습장, 갯벌체험장, 생태조류관찰대, 염전학습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4km정도의 자전거도로가 있다. 이곳이 사진애호가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은 삘기(벼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띠로 불리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온대지방에 분포한다. 꽃은 5월에 피며 어린 것을 뽑아 먹기도 한다.)라는 풀과 어우러진 3대의 풍차다.

대구에서 소래습지까지는 승용차로 약 4시간 거리로 300Km 정도다. 쉽게 마음을 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질 않아 5명이 한조로 토요일 밤 12시를 기해 길을 나섰다. 한참을 달려 선산휴게소에 도착한 일행은 키오스크란 기계를 통해 떡라면을 주문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요즈음 웬만한 휴게소는 저녁 10시가 가까워지면 아예 식사 따위는 폐점이다. 최저임금의 상승과 주52시간 근무가 가져온 새로운 풍경이다.

철이지났지만 여정한 삘기 군락지. 이원선 기자
철이지났지만 여정한 삘기 군락지. 이원선 기자

거기에 일행 중 젊은 사람이 있어서 더욱 다행스럽다. 기계만보면 머뭇거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일사천리다. 손으로 찍어가는 현란한 손놀림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김이 오르는 라면을 받아서 두어 젓가락이나 떴을까? U-20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한 우리나라가 페널티킥으로 선취점을 뽑는 장면이 TV를 통해서 중계된다. 우승의 꿈을 한층 부풀게 하는 순간으로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힘찬 박수와 환호성을 지른다.

다시 출발하는 순간 라디오로 중계를 듣기 시작했다. 헌데 그 축구중계란 것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과거의 축구중계는 캐스터의 입놀림이 운동장을 꿰뚫어 볼 정도로 상세했다면 그날의 축구중계는 공격인지 수비인지 알 수 없는 그저 대담이나 잡답 형식이다. 그나마 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탓에 혼선이 일고 ~거리는 소리가 합세를 한다.

한참을 소음과도 같은 중계를 듣는데 휴대폰을 검색하던 일행이 “11 이네한다. 언제 골을 먹었는지도 알 수 없는 중계다. 결국 미련 없이 꺼버리고 차창 밖을 내다보자 보름을 이틀 앞둔 둥그스레한 달이 중천에서 고고하여 환하게 웃으며 그저 결과만 알면 그만이지 뭘 그리도 극성을 떠나고 비아냥거리며 웃는 듯하다.

결과는 31로 역전패, 하지만 젊은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와 준우승이란 값진 쾌거는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다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신상이 편하다고 했다. 그 첫째가 어머니요 둘째는 마누라 셋째가 네비게이션이라, 오는 졸음을 쫒아가며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또 한 여자의 말을 충실히 들은 덕택에 새벽 4시 경 목적지인 소래습지에 도착했다.

풍차와 듬성등성한 삘기. 이원선 기자
풍차와 듬성등성한 삘기. 이원선 기자

사위는 어둑어둑한데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절은 듯 짙은 소금냄새가 코에서 야릇하다. 거기에 어둠이 짙어 동서남북이 꼬리를 사리는 바람에 갈피를 못 잡는다. 지도라고 커다랗지만 한참을 들여다봐도 알쏭달쏭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풍차와 삘기를 촬영 온 어느 진사님의 도움으로 최종목적에 도착했다. ‘~’하는 안도감도 잠시 좋은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방황 끝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최적의 포인트란 진리에 따라 삼각대를 펼친다. 해가 뜨려면 1시간 정도가 남았다. 시선은 동쪽을 향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모기와의 전쟁이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고 이런 생고생을 즐기는 까닭을 자신에게 묻고 싶은 시간이다. 하루살이만한 모기가 눈앞에서 풀풀 날아다니고 의미 없는 손짓은 허공에서 바람을 가른다.

자연의 얼굴은 천변만화다. 가끔 인간들이 자연에 도전한다고 나서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탓에 순리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찾고자 동분서주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연은 화장을 지운 듯 쉽게 만날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은 카메라가 없어서, 당시의 상황이 허락지 않아서 등등 핑계도 가지가지지만 결굴 머피의 법칙으로 돌리곤 아쉬움만 가득하여 가슴앓이다. 역으로 이야기한다면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 보면 자연은 그저 자연이 되어 평범함으로 다가선다.

소래습지와 여인. 이원선 기자
소래습지와 여인. 이원선 기자

그렇다고 투덜거려 아쉬움을 쉬 나타낼 수도 없다. 나에게 있어서는 평범할 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풍차의 뒤편으로부터 산등성이 위로 아스라이 태양이 고개를 내밀자 조용하던 주위가 기계음으로 분주하다. 이제는 자연에 맞추어 내가 변해야할 시간이다. 주위를 흉내내듯 카메라에 눈을 박는다.

안개가 없어서, 삘기의 철이 지나서 등등 마음에는 조금 미흡하지만 여전히 좋은 아침이다. 새로운 장소를 알고 소금기가 다분한 아침 공기는 그간의 수고로움을 상쇄하고 남는다. 덤으로 언제든 꺼내보고 즐길 수 있는 추억을 가득 담았다. 요즈음은 가성비 '(cost-effectiveness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제품 성능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낸다.)를 많이 따진다. 이 또한 마음먹기 나름으로 마음에 차면 가성비는 자연히 넘쳐나는 것이다.

모든 촬영이 끝나자 배꼽시계가 알람이 되어 요란하다. 이제 먹는 일만 남았다. 옛날의 여행이 보는 것에 만족했다면 지금은 보고 먹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갔다. 불국사 첨성대 등등을 관람한 후 반월성(지금의 월성)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 도시락이라고 나온 것이 가관이다. 지금에 이런 도시락이라면 매스컴을 타는 등 국민들의 공분을 살 일이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나보다.

종이처럼 얄팍하게 깎은 나무도시락에 날아갈 듯 고슬고슬한 밥, 볶았다지만 여전히 생멸치인 듯 싱싱해 보이는 멸치 몇 마리와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다. 모두 성에 차지 않아 물끄러미 내려보다 시장이 반찬인 양 몇 젓가락 휘젓자 빈 통이다. 혹 남은 것이 없나 주위를 살피지만 전부가 빈손으로 여느 날처럼 주린 배를 물로 채우곤 오후 관광에 나선 기억들이 아련하다.

소래습지를 돌아 나오는 때가 아침 8, 동네 토박이라면 지리가 훤하여 금세 밥집을 찾겠지만 750여리 밖의 객지다. 궁리 끝에 지금 안보면 또 언제 보나 싶어 차이나타운으로 길을 잡았다. 이름난 관광지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점포마다 굳게 닫힌 문이 야속하다. 이제 영락없이 아침을 굶은 판이다.

차이나타운에서 맛 본 백짜장. 이원선 기자
차이나타운에서 맛 본 백짜장. 이원선 기자

그렇게 언덕길을 오르며 얼마나 걸었을까? 문이 활짝 열리고 불이 꺼진 가게 안이 부산하다. 이집이다 싶어 메뉴판은 보니 백짜장이란 단어가 이국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이 매스컴 등에서 유명한 백짜장전문점인 모양이다. 식사여부를 물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가능하단다.

처음 맛본 백짜장은 흰색이란 선입감이 들어선지 본래의 검은자장면보다는 맛이 못해 보인다. 하지만 색다른 음식을 접한 탓에 기분은 한층 고무되어 푸짐하다. 새벽녘의 투덜거리던 마음은 봄눈처럼 녹고 몸이 즐겁다 보니 마음은 절로 즐겁다. 이런 맛에 여행을 계획하고 즐기는 모양이다. 모두가 밤을 샌 탓에 졸음이 올 법도 한데 돌아오는 차안이 화기애애하다.

풍차 삼형제가 우뚝하고 듬성듬성한 삘기가 이리저리 손짓하는 들판에서 풍겨나는 짭조름한 소금냄새가 갓 볶은 원두의 짙은 향기로 코끝에 은은한 하루가 지난다.

자유공원에서 만난 장미. 이원선 기자
자유공원에서 만난 장미.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