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근사체험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16) 근사체험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6.1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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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지식을 배우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궁금한 사항 중의 하나가 과연 사후세계 즉 내세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이다. 그것은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사항이기도 하다. 그 어느 누구도 내세를 본 사람이 없으며, 이를 실험하거나 증명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죽음의 문턱에서 내세를 보았거나 경험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이를 증언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이른바 근사체험(近死體驗, Near Death Experience ; NDE)이다. 임사체험(臨死體驗), 가사체험(假死體驗)이라고도 하며, ‘일시적인 죽음의 체험또는 사실상의 죽음의 체험이라고도 한다.

근사체험은 임종에 가까웠을 때 또는 일시적으로 뇌와 심장기능이 정지하여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상태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현상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Raymond A. Moody, JR)가 그의 저 다시 산다는 것(Life after Lif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근사체험은 완전한 죽음 이전의 죽어가는 단계즉 삶과 죽음의 경계인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진다.

생명

()

죽어

생물

학적 죽음

회색지대

(삶과 죽음의 경계)

완전한

죽음

죽음 이후

(사후세계/

내세)

근사체험

근사체험은 심장박동이 멈추고 10~20초 지나면 뇌로 피가 돌지 않아 뇌파가 정지되는 순간 즉 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뇌의 손상으로 인해 뇌가 정지되는 순간에 하게 된다.

주로 심장마비(심근경색), 출산 출혈로 인한 사망시, 패혈증, 갑작스런 사고사, 뇌손상, 뇌경색, 질식사 등 죽음의 상태에서 경험하게 된다. 특히 심장마비로 인해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중 10~20%가 근사체험을 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벨기에의 신경학 전문의 스티븐 로레이스(Steven Laureys)가 전 세계적으로 근사체험을 한 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근사체험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만이 아니라 비행기 조종과 같은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유발하는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신체가 극한 위험에 노출되어 갑작스럽게 체내 혈류공급에 변화가 생기면서 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달라질 경우 근사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뇌 영역 중 측두엽이 근사체험 시 가장 활성화되는 영역이며,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근사체험과 관련된 보다 명확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사체험은 임종하기 전에 경험하는 꿈이나 환상인 임종몽(臨終夢)이나 임종시(臨終視)와 구별된다.

임종몽이나 임종시는 주제의 연결이 없이 단편적으로 변화해가지만 근사체험에서는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장면이 변화해간다. 또한 꿈은 지극히 사적이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근사체험은 체험자 대부분 비슷한 부분을 공유한다.

그리고 꿈이나 환상 속에 나타나는 사람은 주로 살아 있는 사람이나 가상적인 인물이지만 근사체험에서는 죽은 사람이나 종교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특히 꿈은 꾼 다음에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근사체험은 잊어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그 사람의 삶의 양상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근사체험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는 경험, 어두운 터널 같은 곳을 지나거나 밝은 빛을 마주하는 것과 같이 비현실적인 경험,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종교적 성인(聖人)을 만나는 경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 의사인 핌 반 롬멜(Pim van Lommel) 박사는 근사체험의 공통적 특징을 10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세계 3대 의학 학술지의 하나인 란셋(The Lancet)에 발표하였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10개 병원에서 심장과 호흡이 정지하고 동공반사가 없어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은 직후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환자 34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다

죽었다는 사실 지각(50%) 긍정적인 감정(56%)

체외이탈(유체이탈)(24%) 터널 통과(31%)

밝은 빛과의 교신(23%) 황홀하고 아름다운 색깔 관찰(23%)

천상의 풍경 관찰(29%) 죽은 사람과의 만남(32%)

자신의 생을 회고(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

 

근사체험 중 체외이탈 또는 유체이탈(幽體離脫)(Out of Body Experience ; OBE)이란 사람의 의식(영혼)이 육체를 빠져 나가 자신의 몸이나 주위의 사람들을 보는 체험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근사체험의 실체 여부에 관하여는 부정설과 긍정설의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부정설은 뇌내현상설로서, 근사체험의 실체는 없고 단지 뇌의 환각 작용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즉 사후세계는 심리적 현상이며 무의식적이고 잠재의식적인 두뇌활동으로 본다.

많은 의학자들은 죽어가는 뇌(dying brain)’의 가설을 제시한다. 사망할 때 뇌의 각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 및 혈액 양의 차이로 인하여 부위마다 활동이 정지되기까지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활동이 완전히 정지되지 않은 영역을 통해 근사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신경외과에서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을 할 경우 뇌의 측두엽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환자가 빛 같은 것을 보기도 하고, 저산소증이나 마취제, 환각제를 투여할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근사체험은 뇌 기능이 마비되기 직전에 일어나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마취전문의 제랄드 웨어리(Woerlee)는 마취에 의한 현상으로서 전신마취용 환각제 성분 때문에 근사체험과 비슷한 증상을 가져 온다고 한다. 또한 뇌의 산소부족으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며, 뇌 기능이 마비되기 직전에 일어나는 환각적 근사체험이라고 주장한다.

부정설에서는 근사체험 중에 죽은 가족을 만나는 체험의 경우 체험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소망 투사(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2007년 스위스의 신경학자 올라프 블랑크(Olaf Blanke)는 뇌 우측의 두정엽과 측두엽의 경계 부위를 직접 전극으로 자극하여 인공적으로 유체이탈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단순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시스템을 이용하여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피험자에게 유체이탈 현상을 유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근거로 유체이탈 현상은 더 이상 영혼불멸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단순한 뇌 활동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부정설은 근사체험을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첫째, 뇌의 저산소증(산소결핍증, anoxia)으로 인한 경우로서, 뇌세포 및 뇌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산소 부족으로 환각상태에 빠진다.

둘째,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환각상태에서 일어난다는 설로서, 피가 돌지 않으면서 엔돌핀 내지 엔케팔린(enkephalins)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해 환각 상태에 빠진다. 또한 세로토닌(serotonin)이 근사체험의 특징인 평온함과 안락함의 근거가 된다.

셋째, 뇌의 측두엽이 손상돼서 일어난다는 설로서, 뇌의 측두엽에 의한 몸의 균형, 기억, 회상 기능이 상실되면서 대뇌피질의 자극으로 인해 유체이탈, 환각, 기억혼란 등을 경험하게 된다.

긍정설은 현실체험설(실제체험설) 또는 뇌외현상설로서, 근사체험 자체가 현실에서 일어난 일 즉 영혼이란 존재가 신체외부로 빠져나가 실제로 겪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긍정설에서는 약물에 의해 유발된 환각 등은 근사체험을 통해 보고되는 기억들과는 달리 통합적이지 않고 파편적이며, 삶에 대한 통찰이나 태도의 변화 등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현상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장외과의 마이클 세이봄(Michael Sabom) 박사가 그의 저 빛과 죽음(Life and Death)’에서 소개한 팸 레이놀즈(Pam Reynolds)의 사례가 긍정설의 대표적인 예이다.

팸은 뇌 동맥류로 고생하던 환자로서, 통상적인 수술이 불가능하여 저체온 심정지(hypodermic cardiac arrest)’라는 새로운 수술법을 실시하였다. 환자의 체온을 섭씨 15도 정도로 낮추어 심장박동과 호흡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머리 부분의 혈액을 완전히 뽑아내는 방법 즉 완전히 죽여 놓은 후에 수술을 하는 것이다.

수술 후 팸은 수술하는 동안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수술실의 전경과 수술실의 장치들, 수술하는 모습. 모두 사실과 일치했다. 특히 외과용 톱을 그렸는데 실제의 톱과 똑같았다. 팸은 이 톱을 볼 수도 없었고 본 적도 없었음은 물론 보통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톱이 아니었다. 이 사례는 뇌내현상설로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질 않는다. 환각을 보려고 해도 뇌는 기능하고 있어야 하고, 뇌가 죽은 상태에서 환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이봄은 사후세계를 본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근사체험 경험자들이 많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멈춘 후에도 영혼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뇌의 기능이 사라졌다가 다시 의식을 찾는 것,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의식은 물질과 뇌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존재(영혼)가 있다는 입장이다.

부정설에 대해서는 근사체험의 극히 일부만을 설명하고 있고, 특히 근사체험자가 유체이탈을 통해 본 사실들이 놀라울 만큼 현실과 일치한다는 점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비판이 가해진다. 그리고 약물이나 물리적 자극에 의한 환상의 경우에는 기억이 조각나 일정치 않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 과정이 동반되지도 않는다. 근사체험 후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중대한 변화도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환각제로 인한 체험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경우가 많다.

긍정설에 대해서는 체험과 증언은 많이 있지만 증거가 없거나 확인할 길이 없고, 체험이라는 것도 주관적 체험일 뿐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비판이 가해진다.

임사체험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수많은 인터뷰와 문헌연구를 통해 뇌내현상설과 현실체험설 모두 약점이 있으므로 어느 한 쪽을 옹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근사체험자의 경험이 실제이든 환각이든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근사체험의 중 밝은 빛과의 교신 과정에 두 가지 질문이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했느냐이며, 다른 하나는 지혜와 지식을 쌓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이라고 한다.

근사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며, 왜 사는가에 대한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고,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게 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케네스 링(Kenneth Ring)30년 이상 대학에서 근사체험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실제로 근사체험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