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6.20 16:4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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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2019-03-13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선집 『수선화에게』 비채, 2015-03-28

 

수선화, 하면 김정희가 연상된다. 수선화를 맨 처음 봤던 곳이 제주의 ‘추사관’ 뒤뜰에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였기 때문이다. 손님에게 목례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인 수선화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초록 잎사귀는 부추 같기도 하고 마늘종 같기도 했다. 배가 고팠던지 여섯 장의 흰 꽃잎 위에 얹힌 연노랑 속꽃이 달걀프라이로 보였다. 추사체로 상징되는 그가 수선화를 유달리 아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위리안치의 형벌을 받아 9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할 때 수선화는 존재 그 자체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한 떨기의 수선화 속에서 아내와 자식들 얼굴이 비춰졌을지 모른다. 임금님이 겹치는 날도 있었으리라.

두모악에서도 수선화를 만났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성산읍에 분교를 임대해 개조한 뒤 본인 이름을 따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을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다가 섬에 살아보지 않고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앵글에 넣을 수 없다 판단하여 제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섬을 누비며 오름과, 나무, 억새 등 자연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루게릭 진단을 받고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 병세가 악화돼 그토록 사랑한 제주 땅 제주의 풍광에 묻혔다. 유골이 두모악 앞마당 감나무 아래에 뿌려져있다. 아무렴 관심 보이는 여자가 없었을까. 수선화의 꽃말처럼 사진만을 향한 자아도취에 젖어 살다 미혼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시의 본질은 은유다. ‘수선화에게’ 이 시제는 모두가 수신자다. 수선화에다 빗대어서 우리에게 전하는 은유적 메시지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다독인다.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말이 있다. 마음보가 고약해서가 아니라 남들도 나처럼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게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에 이르면 다함께 행동하기를 요청하는 청유형으로 들린다. 마라, 가라, 등의 어조는 당당하게 살아보라 세뇌시키는 느낌이다. 하느님도, 새들도, 너도, 산 그림자와 종소리까지 외롭지 않은 대상이 없다. 그러니까 너무 그리 약하게 굴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한번 견뎌보자는 주문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