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중', 촌 학교 출신들의 나들이
'화령중', 촌 학교 출신들의 나들이
  • 노정희
  • 승인 2019.06.1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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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리고 우리, 우리는 고향 친구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중학생 마음
화령중학교 28회 ‘대경회’ 나들이
대경회 회원들의 기념사진
대경회 회원들의 기념사진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우리’라는 말, 소속감을 느낀다. ‘우리’의 만남은 손익계산하는 게 아니다. 냉철함이 아니라 따듯함으로 다가오는 것, 그게 바로 고향 친구의 정 나눔이다.

경북 상주시 화령중학교 28회 졸업생들의 대구・경북 지역 모임의 이름은 ‘대경회’이다. 이번 격월 모임은 6월 16일(일)을 지정해 귀촌한 친구 집으로 나들이를 정했다.

제주도에서 건축업을 하던 이용찬 씨가 고향 가까운 동네에 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동기 모임의 카톡방에는 연신 빨간 불이 깜박인다. 집행부는 “모여라, 모여라” 모임을 독려하고, 산행 팀은 친구네 가는 길에 건강도 챙기자며 “여기 여기 붙어라” 구호가 우렁차다. 허리 다리 불편한 환자들은 자동 탈락이다. 아직은 청춘이라며 목소리 높이는 친구들만 산을 오른다.

나각산 출렁다리
나각산 출렁다리, 건강한 산행 팀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나각산(螺角山)은 산 전체가 둥근 소라 모양을 닮아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 산행한 친구들은 건강을 챙기고, 산의 좋은 기운을 친구네 집들이로 옮겨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았다.

두 식구가 단출하게 사는데 집 평수가 넓다. “종손이라 명절 때나 제사 때 친지들이 많이 오십니다”며 용찬 씨 부인이 담담하게 말을 한다. 남편 친구들이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힘 쓰이지 않으냐고 의중을 떠보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손님이 옵니다. 제주도에서는 이웃을 모르고 지냈는데 시골에 오니 이웃들과 어울려 사람 냄새 맡으며 삽니다”며 웃는다. 종손 집 며느리는 확실히 품새가 다르다. 남자는 부인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자존감이 올라간다. 용찬 씨가 참한 각시와 사는 게 흐뭇하다.

나누고 또 나누어도 더 나눠주고 싶은 게 친구의 마음이다. 송병선 씨는 ‘노봉방주’를 껴안고 왔다. 한 모금 마셨더니 '죽은 벌'이 목구멍을 탁 쏜다. “알알한 것을 보니 알코올 40%는 되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30%라고 한다. 참외 한 상자 들고 온 장정근 씨 마음은 노르스름 달곰하다. 군위에서 미용실 운영하는 조숙희 씨는 “친구들한테 선물 주려고 여러 날 파마 한 돈으로 거울을 준비했다”라며 연신 방글방글 웃는다. 대경회 여자 친구들이 꼭 예뻐져야 할 명분이 생겼다. 박승란 씨는 곽 티슈, 차현자 씨는 물티슈를 선물로 나눠준다. 전형자 씨는 시골 동네 얼음과자를 싹쓸이해왔다.

노봉방주를
노봉방주를 사수하는 권선환 씨

동서고금에 그 누구도 자연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흉내만 내었을 뿐 다 담아낸 사람은 없다. ‘자연의 음악과 자연의 문장을 보고 듣고 느낄 줄 아는 마음의 눈과 귀를 가져야만 인생의 참멋’을 알게 된다.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준 친구들의 소중한 우정을 잊지 않겠다”라는 용찬 씨가 바로 자연 속에서 참멋과 참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집 주인, 이용찬 씨
집 주인, 이용찬 씨

상주시 외서면 개곡리 주민까지 찾아와 일을 거들어 주는 시골인심이 논배미 개망초꽃같이 맑다.

마실 온 이웃이 고기를 구워주고 있다.
마실 온 이웃이 고기를 구워주고 있다.

차현자(56. 대경회 회장) 씨는 “쓰레기 치우는 것도 만만찮을 것”이라며 내심 미안한 마음을 어필했다. 또한 “대경회 친구들을 초대해 준 친구와 부인께 고맙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촌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중년이 지났다. 이제는 할배ㆍ할매 호칭을 달고 다니는 친구도 제법 된다. 그러나 너와 나, 우리는 만날 때마다 여전히 중학생이다. 마음은 아직도 시골 학교 학생으로 머문다.

골목길 분홍 하양 접시꽃의 환한 미소가 친구들 얼굴에 마구마구 전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