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구려 역사 탐방 동행 취재기①
중국 고구려 역사 탐방 동행 취재기①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9.06.1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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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역사탐방팀 고구려로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
역사탐방팀 고구려로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

 

중국의 고구려 유산을 만나기 위해 역사탐방 17명의 답사 팀과 3박4일 일정으로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국내성을 찾았다. 인천공항에서 심양행 심야 비행기에 탑승했다.  2시간에 걸쳐 심양에 도착한 뒤 숙소에 들었다.  비 예보가 있었으나 날씨는 쾌청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버스에 올라 통화를 지나서 집안까지 420km를 부지런히 달려 5시간40분에 길림성 통화시 집안에 있는 광개토왕릉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과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과  숲이 이어졌다. 고속도로는 차량이 거의 볼 수 없이 적막하리 만큼 한산했다. 
 
차 안에서 가이드의 중국에 관한 안내가 이어졌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 정식 국가이름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44배(9백6십만평방미터)
인구는 13억명이 넘으며 수도는 베이징이다.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족이 94%이며 조선족은 약 200만 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연변조선족자치구에 살고있다. 행정구역은 4개 직할시, 22개 성, 5개 자치구, 2개 특별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4개 직할시
1)북경 2,100만 명
2)천진 1,560만 명
3)상해 2,420만 명
4)중경 3,070만 명

요령성의 심양은 인구가 약800만 명이다.

5개 자치구
1)내몽고
2)신강위구르
3)서장
4)광서장족
5)영하회족
2개 특별자치구
홍콩
마카오
22개 성
•하북성, 산서성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 산동성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해남성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

유리에 갖힌 광개토대왕비(碑)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유리에 갖힌 광개토대왕비(碑)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활짝 핀 작약꽃밭 황색의 사모지붕 안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활짝 핀 작약꽃밭 황색의 사모지붕 안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광개토대왕릉 입구에는 공개토대왕비가 유리에 갇혀 있다. 유리벽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있으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중국공안이 지키고 있다. 이 비는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석이다. 
비석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광개토대왕룽 묘실로 올라가는 계단
광개토대왕룽 묘실로 올라가는 계단
많이 무녀져내린 호태왕릉 여기서는 북한이 보인다
많이 무녀져내린 호태왕릉 여기서는 북한이 보인다

 

비석 안쪽으로 무덤 같지 않은 야산 둔덕 처럼 보이는 무덤이 광개토대왕무덤이다. 호태왕(好太王)의 무덤 즉 태왕릉이다. 374년부터 412년까지 재위했으며, 이름은 담덕이다.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정안호태왕'이다. 고분 높이는 14m의 돌무지로 만든 무덤이다. 무덤 위에 묘실까지는 돌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무너져 내린 곳이 많이 보인다. 멀리 북한의 산도 보이는 시원한 경관이다. 능 주변 밭에는 때늦은 작약꽃이 만발하여 즐거움을 준다.

'동양의 피라미드' 고구려 석조건축의 백미 장수왕릉
'동양의 피라미드' 고구려 석조건축의 백미 장수왕릉
장수왕릉 옆 무너져 내리는 규모가 적은 무덤,후궁의 무덤으로 추정
장수왕릉 옆 무너져 내리는 규모가 적은 무덤,후궁의 무덤으로 추정

 

장수왕릉 혹은 장군총은 이 무덤에서 가까이 있다.  용산, 우산, 칠성산이 둘러친 곳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하다고 한다. 고구려의 비약을 상징하며 '동양의 피라미드'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 높이는 12.4m, 길이는 31.6m로 사각형에 7단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덤 변두리에는 총11개의 무개가 10여톤 정도의 큰 돌을 무덤쪽으로 붙여 세워놓았다. 정교하게 다듬은 큰 돌을 들어쌓기 공법으로 만들었다. 북쪽 면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수한 고구려 석조건축이며 석공예의 백미이다. 우측에는 후궁의 묘로 추정되는 규모가 작은 비슷한 형태의 무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