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백호 터널!
아, 백호 터널!
  • 정신교 기자
  • 승인 2019.06.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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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백두산 부대

 

 

6월에는 한국 전쟁(625)과 제2 연평 해전(629)이 일어났고, 법정기념일인 현충일(66)이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충렬을 기리고 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최전방에서의 병역 근무를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1976년의 여름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필자는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하여 겨우 첫 학기를 마치고 육군에 입대 하였다. 훈련 중에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한미연합군의 충돌(8·18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나서 며칠 동안 완전군장으로 출동 대기하였다. 훈련이 끝나고 청량리를 거쳐 춘천보충대로 가게 되었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을 피해서 다행히 양구(楊口)의 휴전선 경계 업무를 전담하는 사단(백두산 부대)으로 배치 되었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다시 육로로 사단 교육대로 이동하였다. 초가을 날씨에도 아침 서리는 얼음처럼 차고, 바람은 꽤나 매서웠다.

양구는 수복 지역으로서 험준한 산악 지형이 대부분이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남북의 민간인들이 서로 왕래하였다고 하며, 부연대장 가족 피살 사건, 불고기 GP 사건 등, 북한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 사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제 3땅굴이 발견된 지 12 년 후, 1990년도에 양구 북방 해안면에서 제 4 땅굴이 발견되었다.

드디어 4 주 훈련이 끝나고 방산면에 있는 ○○연대로 배치를 받았다. 해발 800 여 미터의 험준한 학령 고개를 넘어 가는데, 집채 같은 바위들이 군데군데 높이 쌓여 있는것이 보였다.  유사시에 적의 전차 진입을 막기 위한 방어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꼭대기 부근에서 하차하여 오리 걸음, 쪼그려 뛰기 등으로 한바탕 군기를 잡히면서 꼭대기 부근의 백호(白虎) 터널을 통과하여 다시 승차를 하였다. 눈과 비가 많이 오면 자연히 터널은 폐쇄되고, 방산 지역은 섬처럼 외부와 단절된다. 우여 곡절을 겪고 연대 보충대에 도착하여 다시 보병 3 대대 본부 중대로 배치됐다.

1. 파월고병(派越古兵)

보병 3대대는 연대 본부와 가까운 송현리에 있어 전령을 따라 도보로 이동했는데, 울긋불긋 위장막 아래 낡은 건물과 막사들이 전선 분위기를 실감하게 했다. 내무반에 들어서는 순간 안쪽에 후줄그레한 노병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월남전 종전과 함께 귀국하여 이곳에서 잔여 군복무를 마무리하고 있는 가히 전설과 같은 참전 용사들이었다. M16 소총의 긁히고 닳은 개머리판이 그들의 경력을 대변하고 있었다. 달포 동안 GOP 지역 근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다시 민통선 안쪽의 백석산(白石山)으로 이동하였다. 노병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2. 백석지변(白石之便)

민통선을 통과해서 비스듬한 산길을 거의 반나절을 걸어서 백석산으로 이동하였다. 백석산은 해발 1,300 미터의 고지로서 연대 철책선 경계 근무 본부가 있다. 동절기에는 거의 영하 20이하로 내려가서 상황병의 식사를 타서 사무실로 올라가는 중에 밥이 푸시시’  알알이 얼어 버리곤 했다화장실의 배설물들도 모두 얼어서, 조금씩 쌓여서 올라오므로 주의해서 볼일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부식을 눈 속에 그냥 꽃아 놓고 간식으로 조리하여 먹기도 하였다. 사람 좋던 선임 P 상병이 피부병과 고열로 후송되었는데, 나중에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겨울을 나고 6 개월 후에 FEBA 지역인 방산면 소재지로 내려왔다.

3. 방산야화(方山夜火)

방산면은 송현리에 비하여 마을도 크고 상가도 많아서 비교적 번화한 지역이다. 그리고 부대 정문에서 가로수가 늘어서서 근무 설 때 경관이 좋았다. 주말에는 멀리서 면회객들이 와서 정문 초소는 늘 붐볐다. 위병 근무는 본부 중대 병사들이 교대로 서는데, 어느 늦가을 밤, 묘령의 아가씨가 하이힐을 양손에 들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 왔다. 첫눈이 와서 백호 터널이 폐쇄되어 밤중에 맨발로 학령을 넘어서 애인 면회를 왔던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계신 곳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냈을텐데,”, 그녀의 울음 섞인 하소연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쾌활하고 농담도 잘하던 애인 병사는 얼마 후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연대가 다시 4 대대로 편제가 바뀌면서 일부 병사들과 헤어져서 우리는 다시 백석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번 더 내려왔다가 결국, 나는 백석산에서 전역 명령을 받았다. 연대 본부에서 개구리복으로 갈아입고, 백호터널을 차를 타고 통과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려나, 생각이나 날까?”.

두산 부대 최강 ○○연대 장병들

랑이 같은 용맹과 사기로

잡아 철통같이 방비하니

뛰듯 잦은 도발 이제는 걱정 없네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하여 학령 아래에 왕복 2차선으로 도고 터널이 개통되면서 위쪽의 백호 터널은 폐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된 곳이지만, 파로호를 끼고, 멀리 금강산이 보이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청정 지역이 아니던가?

오는 여름에는 내자(內子)와 함께 꼭 한 번 다시 찾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