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이 들려주는 6.25 한국 전쟁, 장순도 씨
어느 노병이 들려주는 6.25 한국 전쟁, 장순도 씨
  • 장명희 기자
  • 승인 2019.06.07 18: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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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화가 영원하기를...

 

가슴에 '호국영웅기장'이 빛나 보인다. 장명희 기자
가슴에 '호국영웅기장'이 빛나 보인다. 장명희 기자

푸르른 6월은 지금 발전된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호국보훈의 달이다. 전쟁속에서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쟁터에서 싸운 한 노병을 찾았다.

한국 전쟁의 산증인 장순도(93)씨.

장씨는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늠름한 기상을 자랑했다. 6월이면 가슴이 아파 먹구름이 드리워진다고 했다. 그때 치열했던 전쟁에서 곁에 있던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지 못할 장면이 너무나 생생했다고 말했다. 지금 이렇게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총소리가 귓전을 울린다고 했다. 그 아픔을 잠재울 수가 없어서 때로는 술로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상처는 아물어도 지나간 흔적은 남아 있는 기분이다.

치열했던 전선에서 밀리고 밀리던 북한군과의 싸움에서 왜 우리는 같은 동족이 피를 흘리면서 싸워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 추운 혹한에서 강원도 전선에서 양말도 변변치 못해 구멍 난 군화를 신으며 눈꽃물이 들어와도 추운 줄도 몰랐다고 했다. 전쟁은 너무나 위급해서 모든 육체적 감각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발은 동상에 걸려 부러 트고 있었다. 피가 나고 멍이 들 때도 있었다. 중공군이 무리를 지어 쳐들어와서 후퇴를 하고 이렇게 조국을 빼앗기지 않나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제일 가슴 아팠던 때는 동료 전우가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지 못하고 너무나 꽃다운 나이에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 함께 ‘살아있더라면’ 이라고 자꾸 되풀이한다. 장씨의 되풀이하는 말에서 전쟁이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아 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뉴월의 그 무더운 날씨에도 이글거리는 태양과 마주하면서 싸워야만 했다. 어떨 때는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인내로 적들과 싸움을 했다.

아내 김상분(88)씨는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정안수를 떠놓고 남편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때는 아이도 없었다. 그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조상님께 감사하고 모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싶었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전쟁터에서 고귀한 생명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작은 생명 하나에도 소중하고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전쟁의 아픔이 밀려 올 때면 책을 보는 습관이 있다. 장명희 기자

아내는 남편이 살아 돌아온것에 대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사했다. 처음에는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내는 밤이 무섭다고 했다. 남편이 밤이 되면 고함을 지르면서 거실로 뛰어 달아났다. 전쟁에서 적군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편을 보면서 정신병이라도 앓게 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아내의 간절한 신앙생활로 극복할 수 있었다. 고요 속에 평정이 찾아 온 기분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서인지 이렇게 장수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너무 행복하다. 자식들도 효자이고 노년의 삶에서 아내와 함께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 진한 아름다운 추억이 힘든 전쟁의 상흔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쓰러져 가는 전우가 눈에 자꾸 밟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국을 위해 젊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랑스런 조국이 있기까지 앞서간 전우의 나라에 대한 사랑을 후세들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다. 젊은이들은 늘 지난날 힘들고 고달팠던 때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은 발전된 대한민국에서 너무 안주하지 말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제일 소중한 것은 서로 사랑하라.’ 가족은 물론 이웃, 조국이 있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머리가 희끗한 노병은 강조하는 모습에서 그때 6.25의 전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많은 연세에서도 총명한 기억력으로 지난날들을 더듬어 보면서 이야기를 해준데 대해서 너무 고마웠다. 오래오래 전쟁의 아픔을 잊고 부부가 노년의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제대증은 무사히 전쟁속에서도 충실히 군복무를 한 증거이다. 집안의 가보(家寶)이다. 장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