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터미널은 작은 갤러리’ 김재도 대표와의 만남
‘시골 버스터미널은 작은 갤러리’ 김재도 대표와의 만남
  • 원석태 기자
  • 승인 2019.06.07 11:4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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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인구 소멸예정지역 의성군.
지역 사랑 노신사의 열정에 터미널이 갤러리로 꽃을 피우다.
사진도서관 준비를 위해 자료 검토 하시는 김재도대표. 원석태기자
사진도서관 준비를 위해 자료 검토 하시는 김재도대표. 원석태기자

 

지역 주민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의성군 금성(탑리)버스터미널, 60여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맞이한 청년은 어느덧 팔순을 훌쩍 넘겼다. 터미널 대표 김재도(83세)씨는 사진 한장 한장에 담긴 지나간 시간들을 불러와 터미널을 채우고 있다.

경제개발로 인한 사회 환경은 이농현상을 빠르게 진행되게 하였고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던 터미널을 급속하게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소득 증대로 자가 승용이 늘면서 더 이상 달려가지를 못 하고 그만 멈추어 서게 되었다.

김대표는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대합실문을 열었고, 난로에 불을 지폈다. 안동으로, 의성으로 통학 학생들에겐 툇마루 같은 곳, 대구행 첫차를 타기 위해 새벽 같이 달려온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리던 곳. 참 많은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김대표의 손에 의해서 차에 오를 수 있었다.

1954년 개장 후 65년째를 맞이한 터미널은 많은 어려움도 기쁨도 있었지만 지역의 관문으로 묵묵히 역할을 다하였기에 경상북도에서 인정하는 오래된 기업의 상징인 ‘노포기업’으로 선정되어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김대표는 터미널을 운영함과 동시에 마을 곳곳을 다니며 농촌 모습을 사진작가의 눈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색 바랜 창호지에 손자국 얼룩이 묻은 것 같은 삶의 향취가 담긴 35mm 흑백 필름들. 그 필름들을 재 현상하여 텅 빈 대합실에 추억 걸기에 바쁜 김재도대표를 만나보았다.

터미널 전경. 대합실은 갤러리. 우측상가는 사진도서관이 준비중에 있다. 원석태기자
터미널 전경. 대합실은 갤러리. 우측상가는 사진도서관이 준비중에 있다. 원석태기자

 

-먼저 버스터미널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부친이 터미널을 운영하셨는데 여신 지 3년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 1954년도였는데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맏이로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미성년자인 제가 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전적인 도움으로 대표역할과 학업을 병행하였으며 대학에서는 토목공학을 전공하여 졸업 후 직장생활을 잠시 하다가 돌아와 오늘까지니 65년이 됩니다.

-조용해 보이는데 규모로 봐서 꽤 커 보입니다. 과거는 어떠하셨습니까?

▶여기요, 시장 같았습니다. 대합실은 늘 붐볐고 활기가 넘쳐났습니다. 많은 승객이 모이다보니 여기에 매점까지 있었습니다. 부근엔 식당도 가게도 많았습니다. 1951년도에 버스가 처음으로 1대 다녔는데 그 당시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내륙인 관계로 타 지역으로 한번 가려면 쉽지 않은 시기에 노선버스 운행은 그 당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가음, 춘산면에서도 왔고 가까이 탑리역도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승객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멀리 울산 부산까지 노선이 개통되었으며 버스도 많이 증차 되었습니다. 하루 승객이 1,000명이 넘었고 1990년대에는 대구행만도 20분 간격으로 23차례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승객과 버스노선이 어떻게 됩니까?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촌인구의 감소와 사회적 환경 변화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승객이 줄어드니 버스회사에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노선을 하나씩 하나씩 줄였고 그나마 있던 안동행도 승객감소로 지난해에 폐지되었습니다. 지금은 대구행만 6편 있는데 하루 이용승객은 20여명 정도 되고 대다수가 노인들입니다. 제 소망은 남아있는 이 노선만큼은 꼭 지키고 싶은데, 텅 빈 정류장을 바라볼 때 마다 대표로서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운영이 어려울 것 같은데 문을 닫지 않는 이유는 무엇 입니까?

▶사실 승객 감소로 운영에 필요한 수입이 턱없이 모자라고 계속되는 적자로 여러 번 폐업도 생각 해봤는데 여긴 제 모든 것이 묻어 있습니다. 그 당시 터미널을 운영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생활의 전부였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지역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서 농협 조합장도 하고 여러 방면의 사회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이 지역사회를 잘 아는데 어렵다고 모든 걸 모른 체 하고 어떻게 폐업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용 승객들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노인들이 대다수입니다. 병원진료와 여기서 할 수 없는 일은 대구로 나가야 하는데 폐업을 하게 되면 도로변에서 승, 하차를 하게 되고 안전의 문제도 걱정이 되고 눈, 비가 내리면 많은 불편이 있지 않겠습니까? 경제 논리로 따진다면 폐업해야지요. 사람이 살면서 다 논리로만 따질 수 없지 않습니까? 지역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리고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편한대로 해야지요. 적자가 나지만 지역민에게 봉사 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고 후회는 없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또 다른 계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은 문화혜택도 적고 접하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여기 비어있는 터미널 상가에 1층엔 작은 사진도서관을 준비 중에 있는데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찍어둔 의성 문화와 삶의 사진들, 전국 유명 사진작가와 동호회에서 보내온 사진집과 각종 공모전도록등 3,000여권과 사진에 관한 자료집을 전시하고, 2층은 사진교육을 위한 세미나실과 사진작가 지망생이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이미 대합실은 작은 갤러리로 꾸며 농촌 생활모습이 담긴 ‘내 고향 義城’ 흑백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구경하시고, 그리고 이 지역엔 조문국사적지, 탑리오층석탑(국보77호) 빙계계곡등 관광자원이 많이 있습니다. 오셨다가 잠시 들러 고향의 추억을 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날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문화전시를 통한 만남의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고장을 찾아 왔으면 합니다.

고향은 항상 넉넉하고 변함이 없다. 우리가 변했을 뿐 이다. 김 대표의 지역 사랑에 숙연함을 느끼며 이 터미널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하여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나아가 지역민의 문화예술 경험의 확대와 함께하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거듭 나길 기대해 본다.

대합실 갤러리. '내 고향 義城'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원석태기자
대합실 갤러리. '내 고향 義城'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원석태기자
작품 1. 노부부의 마늘 파종
작품 1. 노부부의 마늘 파종
작품 2. 다락밭 고추 심기전 비닐 씌우기
작품 2. 다락밭 고추 심기전 비닐 씌우기
작품 3. 손모내기
작품 3. 손 모내기
작품 4. 무논에서 소의 쟁기질 모습
작품 4. 무논에서 소의 쟁기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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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강민) 2019-06-14 16:05:48
살아져 가는 것을 붙잡는것은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뒷받침하기는 경제적 어려움이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게 지역 문화 행정일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갑습니다.
20대 풍운의 꿈을 안고 저도 대구 안동간 시외버스를 타면서 느낀 향수를 다시 느껴 봅니다.

바람 2019-06-11 13:11:30
어르신의 아름다운 마음 존경스럽네요
좋은기사 잘 봤습니다

조석종 2019-06-07 20:52:28
좋은기사 잘읽고 갑니다.
옛날 시골 에서 통학 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좋은 취재 감사 합니다.
언젠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