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내 삶의 무게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내 삶의 무게
  • 장명희 기자
  • 승인 2019.06.07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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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삶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다.

 

 

 

아픔을 뒤로하고 접시꽃 처럼 내 마음도 웃고 있다. 장명희 기자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도 붉게 물들다. 장명희 기자

도종환 시인의 대표 시이면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접시꽃 당신’. 이 시집엔 도종환 시인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의 아내의 아픔으로 떠나보내면서 생명이 깃든 모든 것들을 사랑의 시선으로 보면서 작품이 훨씬 눈부신다. 수록한 작품 대부분의 사별한 아내와 그에 대한 그리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아내에 대한 그의 그리움은 깊고도 진실한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겸손함과 주위의 작은 생명까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깊은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무심한 시인 남편을 만난 영혼이 천사 같은 아내를 기리며 쓴 이 시는 가슴을 울리게 했다. 아내의 아픔의 골이 깊어지면서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으랴. 그 마음이 책갈피마다 담겨 있어서 내내 나의 마음은 지난날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눈물 감추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시집이었고 ‘접시꽃 당신’을 출판한 후 도종환 시인이 재혼을 하자,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사랑은 어떠하고, 그리움을 그렇게 절절히 표현하고 어떻게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시선이 따가웠다. 현실적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남자가 혼자 살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거웠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50대의 내리막길을 향해 달리면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외로움이라는 벅찬 현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인의 입장에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한 여인이 될 수 있었다.

도종환 시인의 아내를 간호하는 모습에서 나에게는 대역을 바꾸어서 어머니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으매 시인의 아픈 마음을 간접적으로 헤아려 본다. 수 십 년 동안 걸을 수 없어서 천장에 기워 올라가는 개미를 바라보는 것이 하루 중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앞선 대장개미가 뒷따라 오는 졸병개미를 인도하는 모습에서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삶은 이렇게 작은 미물에게서도 아픔 속에서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가족회의로 집에서 혼잡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어서 조용한 절로 요양하기로 결정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머나먼 꿈이었다. 일종의 사치였다. 바람 한 점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절은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절간 그 자체였다. 몸은 점점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이제는 영영 속세와 영원히 이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이 저를 이렇게 냉정하게 버릴까봐 두려웠다. 생명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목숨은 정말로 모질기도 모질었다.

한 송이 접시꽃이 외롭지 않게 느껴진다. 장명희 기자

어머니께서는 단단한 무기로 무장해 계셨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인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부축해서 운동을 시키는 것이 하루일과였다. 길을 비틀거리면서 초점 없는 시야로 젊은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이 조금은 거추장스런 시야로 사람들이 바라보았다. 어떤 길가는 나그네가 측은했는지 목적지가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승용차를 타면 참 편안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대문명의 그 편리함으로 몸을 싣고 싶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 채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했다. 아픈 딸을 강인하게 가르치고 계셨다. 되돌아보니 나그네는 두 모녀가 사라질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 것 같았다.

거동도 불편해서 이대로 누우면 영원히 세상에 안녕이라고 인사할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 어쩌면 그렇게도 저의 건강 상태를 잘 아시는지 기도 덕분에 영감이 빨랐던 것을 느꼈다. 절에서 먹지 말아야 하는 고기도 살기 위해 먹었다. 제가 거절하자 어머니께서는 야단을 치면서 벌어지지 않는 저의 입을 벌리고 고기를 밀어 넣었다. 토하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저의 마음에서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생명을 주시는 힘은 부처님께서도 큰 스님께서도 허락하신다고 말씀 하셨다. 저는 마음속으로 용서를 청하고 큰마음으로 모든 것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바라면서 눈물을 머금고, 몇 번이나 꿀꺽거리면서 삼켰다. 당신의 부축으로 골방에 조용히 누웠다. 다음날 하루를 밝히는 햇살이 창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의 생명력도 영육의 죄를 용서받았는지 일어날 수 있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으매 감사하고, 고기를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었던 것에 기도로 용서를 빌었다.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했다.

강인한 정신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말 열심히 삶에 대한 의욕에 내 스스로 놀랐다. 걸을 수 있고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축복받은 기분이다. 이제는 희망이 눈앞에 보인다.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 속에서 알게 해주었다. 험난한 파도가 지난간 후 잔잔한 물결의 바다였다. 사랑은 모든 것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그 아픔을 기회로 삼고 싶다. 이렇게 일어날 수 있기까지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많은 사랑에 감사드리고 싶다. 50대 후반의 ‘노처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부 반응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시장에 가면 어쩌면 “아줌마”라는 표현이 편안하게 들린다. 이렇게 환경은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이 피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여인으로 남고 싶다. 도종환 시인을 보면서 나의 자화상이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 역할 같은 것을 한 것이 아닐까. 시인은 나의 어머니의 마음의 모진 풍파를 모두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 같은 아픔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동정심이 간다.

살아있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어떨 때는 너무 흥분해서 좋아서 잠이 오질 않을 정도이다. 사돈댁까지 총동원을 해서 나의 병구완을 해주셨으니 저는 복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많이 받은 사랑을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다. 도종환 시인의 아름다운 시처럼 누군가를 영혼을 맑게 풍성하게 물들이는 삶을 살아야겠다. 시인의 우여 곡절한 삶을 보면서 나의 삶 또한 우여곡절 삶 속에서 진정한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어울어져 피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듯 삶도 그러하다. 장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