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래퍼 '베이식'과 경북대 병원 '이택후' 교수
[아버지와 아들] 래퍼 '베이식'과 경북대 병원 '이택후' 교수
  • 강효금 기자
  • 승인 2019.05.28 01:3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래퍼' 아들과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아버지의 길'에서 마주한 아들과 아버지
'다름' 그리고 '같음'
 래퍼의 길을 가는 아들 베이식(왼쪽)과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이택후 교수.     (왼쪽) 베이식 제공    (오른쪽) 이원선 기자

 

아버지와 아들만큼 가깝고도 먼 사이가 있을까? 특히 경상도의 아버지와 아들은 지역 특유의 ‘남자다움’에 갇혀 서로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 ‘연예인의 길’을 가는 아들과 ‘산부인과 의사’로 매일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는 아버지가 있다.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래퍼’ 아들과 ‘의사’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쇼미더머니 출신의 인기 래퍼 베이식(32·본명 이철주)과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이택후(60) 경북대 교수 부자의 이야기이다.

연예인 아들

-‘쇼미더머니 4’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택후 교수: 2015년은 제게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그해에 세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5년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8대 독자인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제 위로 누나 둘을 낳으셨는데,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셨지요. 층층시하에서 마음 졸이며 고생하셨던 그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또 베이식이 아들을 낳아 제게 손자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동안 산부인과 의사로 수많은 생명을 제 품에 안았지만, 손자는 아주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손자가 태어나고 한 달 뒤, 아들이 ‘쇼미더머니 4’에 나간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베이식: 스포츠회사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방학이면 홍대에서 함께 공연도 하고 작업도 하던 친구들이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회사원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래퍼’로 음악을 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특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처지에 그 선택은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 꿈을 늦출 수 없었기에 제 모든 것을 던져 도전했습니다.

 

-아들이 연예인을 지망한다고 했을 때 어떠셨는지.

▶이택후: 1999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베이식이 중학교 일학년이었습니다. 2년 동안 있다 다시 돌아올 시간이 되었을 때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미국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돌아올 것인지. 그때 아들은 미국에 있기를 선택했고, 저는 그 의사를 존중했습니다. 대학 시절 방학 때면 홍대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다 ‘쇼미더머니’ 프로그램 본선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얘기가 흘러나왔지요. 그 말을 들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베이식: 힙합음악은 유치원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들었는데,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용돈을 모아 싸구려 마이크를 사서 녹음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때까지 취미라고만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열린 아마추어 랩 경연대회에 온라인으로 입상하면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연락이 닿아 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직업으로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잠깐 휴학기간에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음악이 주는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고, 또 대중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복학과 음악 사이에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결국 저는 복학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졸업 후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쉬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쇼미더머니’에 나가겠다고 얘기했을 때, 아내와 어머니는 걱정스러워했지만 응원해 주었습니다.

 

◆다름 그리고 같음

- 음악의 길로 들어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이택후: 아들이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지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 즐겁게 춤을 추고 노래도 따라 부르는 것은 어느 아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조용한 성격에 감성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연예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나와는 다른 인문학 쪽 길을 가겠구나 하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식: 아버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한 번도 반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산부인과 의사이신데, 한번쯤은 제게 ‘의사의 길’을 강요하실 법도 한데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제 결정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셨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 쇼미더머니 마지막 경연에서 ‘좋은 날’이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곡은 아버님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셨는데.

▶베이식: 경상도 남자이다 보니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서툽니다. 아버지께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그 곡으로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이택후: 사실 그 노래를 들으며 가슴 뭉클했습니다. ‘베이식’이기 이전에 ‘이철주’로 아들은 제게 충분히 넘치도록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랩’이라는 장르는 아직 낯설게 느껴집니다. 노랫말도 알아듣기 힘들고요. 수십 번은 들어야 겨우 몇 마디 귀에 들어옵니다.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발라드라면 좋을 텐데. 직설적이며 때론 상대방을 공격하는 노랫말이 아직 어색하게 들립니다.

▶베이식: 랩은 직접적인 노랫말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고, 대중이 그 음악을 함께 즐기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청중과 래퍼가 그 자리에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어떻게 보면 대중과 가장 가까운 음악이라 하겠지요.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부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가장 모범적인 래퍼’로 알려져 있지요.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나도 우리 아버지만큼만 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의 롤 모델은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 아들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 느끼는 감정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로서 마음은 어떤지.

▶베이식: 결혼하고 아들이 태어나고,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의 아버지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아버지가 제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제 아들 ‘채하’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아낌없이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키는 저보다 조금 더 컸으면 합니다.

▶이택후: 저의 아들이 장손입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광주 이씨 문중에서 손이 귀한 집안이라, 제 아들이 태어났을 때 저의 할머니가 너무나 기뻐하셨지요. 저는 고향이 칠곡이라 문중의 대소사에 자주 찾아갑니다. 제 아들도 아무리 바빠도 ‘묘사’에는 꼭 저와 함께 참석합니다. 그것만 해도 고맙지요.

            이택후 교수 제공

 

 

◆아버지의 길에서 만난 아들과 아버지

- 아버지와 아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이택후: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들을 데리고 새벽이면 검도장을 찾았습니다. 새벽에 함께 검도를 하고, 또 여느 부자지간과 다름없이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등을 밀어주고. 그런 소소한 것들이 기쁨이자 보람이었습니다.

▶베이식: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 기억되는데요. 부모님이 냉전 중일 때 아버지가 제 방에 들어와 주무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끌어안으며 “아버지는 철주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약간의 술 냄새와 더불어 아버지의 그 넓은 품이 참 기분 좋았습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음악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이번에 새로 발표한 곡 중에 ‘ijustwannadance'라는 곡은 부드럽고 귀에 감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의 강렬한 음악에서 빛깔이 변한 건지.

▶베이식: 제가 알려진 곡들이 좀 센 곡들이 많아 그렇지 사실 부드러운 노래도 많이 있답니다. 아들이 태어난 뒤부터 가장 흔한 주제인 ‘남녀의 사랑’ 노래가 적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노랫말도 ‘래퍼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음악은 그냥 ‘음악’으로 충분히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ost 작업도 했고, 앞으로 저의 다양한 음악작업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택후: 아들에게 '초심을 잃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늘 마음에 새기고 겸손하게 음악인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니어매일’ 독자 여러분에게는 우리 베이식을 아끼고, 베이식의 음악을 많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베이식,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베이식: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된 ‘단독 공연’을 할 때 그 자리에 꼭 아버지를 모시고 싶습니다. 더 나은 아들이자 더 나은 래퍼, 더 나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지만 서로를 지지해 주고 염려해 주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길’에서 만난 아들과 아버지는 ‘아버지’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며 걷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또 다른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며 서로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