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악수, 교감(交感)의 방정식
(15) 악수, 교감(交感)의 방정식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5.27 09: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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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는 이념을 초월하여 순수한 마음을 나누는 교감, 그 값이 항상 참이 되는 ‘삶의 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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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결승전 9회 말 동점에서, 홈런 한 방이 포물선을 그리는 순간, 관중들의 함성이 진동한다. 타자가 한 바퀴 돌아 홈 베이스를 밟으면 마중 나온 동료 선수들이 머리, 어깨, 온몸을 마구 두들기며 기쁨을 나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공유하는 함께하기 행동이다. 축구 월드컵 결승전에서 0:0이던 후반 5분전, 극적인 골로 승리를 장식한 선수도 마찬가지다. 5-6명이 함께 껴안으며 짓누르며 잔디구장에 몸부림친다. 이것을 언어의 ‘친교(교감)적 기능’(phatic communion)이라 한다. ‘phatic’은 그리스어의 ‘phatos(함께 말하기)’에서 유래되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언어의 기능은 대체로 5가지로 분류된다. ①내용 설명을 위한 정보적 기능, ②감정을 표현하는 정의적 기능, ③행동을 지시하는 명령적 기능, ④문학 작품의 심미적(예술적) 기능, 그리고 ⑤인간관계 형성에 사용되는 친교적 기능이다. 친교적 기능은 상호 교감의 행동이다. 이는 사실 전달, 감정 표현, 지시와 명령, 문학적 표현과 같은 의사전달이 아니라,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행동인데, 폴란드 출생 영국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 1884-1942)가 1923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친교적 기능은 ①‘안녕하세요?’ ‘날씨 참 좋습니다!’, ‘잘 가세요.’ ‘또 만납시다!’ 와 같은 인사말과 ②악수, 껴안기, 키스, 손 흔들기, 하트 표시와 같은 교감적 행동이다. 문화에 따라 악수 대신에 양쪽 얼굴을 번갈아 접촉하거나, 코끝을 부비는 행동도 있다. 운동선수들의 격렬한 감격 신체어(body language)는 물론, 편지와 연설문의 앞뒤 인사말도 여기에 속한다. 친교적 기능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강화하고, 확인하는데 있다. 또한 대화 참여자들이나 집단 전체에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한다. 말하자면, 친교적 기능은 두려움과 의심을 제거하고 일치감(agreement)을 통해서 친교(friendship)가 형성되므로 집단의 응집력을 강화시켜 준다. 특정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평화와 친선을 두텁게 하는 사회적 윤활(潤滑, social lubrication)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친교적 교감 기능이 인사말과 악수이다. 악수는 인사, 감사, 친애, 화해를 교환하는 세계 공통 신체어로 사용되고 있다. 악수의 기원은 고대 바빌론에서는 신성한 힘이 인간의 손에 전해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통치자가 성상(聖像)의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는 오른손으로 악수하는 인사법을 그의 장군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중세 때 기사들이 칼을 차고 다니곤 했는데 적을 만났을 때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 들어서 적의를 표현했다. 하지만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을 때에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는데 이것이 악수의 유래가 되었다는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이다.

선의 표현하는 손을 잡는 행동은 한국에서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자신이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점 때문에 본래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은 여성은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일반화 되어있다. 친교를 위한 선한 교감이기 때문이다.

악수에는 5대 원칙이 있다. 첫째로, 미소(smile)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아야 예(禮)로써 교감할 수 있다. 둘째로, 눈맞춤(eye-contact)이다.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다. 적당한 거리와 적절한 응시로 신뢰감이 생긴다. 셋째로, 적당한 거리(distance)이다. 한국인들은 왼손을 배에 올린 채 오른팔을 길게 쭉 뻗어서 상대방의 손을 잡는 경향이 있으나, 지나치게 손을 길게 뻗기보다는 손을 팔꿈치 높이만큼 올려서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굽혀지는 정도의 거리에 서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넷째로, 리듬(rhythm)이다. 두세 번 정도 가볍게 흔드는 정중함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로, 적당한 힘(power)이다. 적당하게 상대방의 손을 잡는 부드러움이 중요하다. 이들이 바로 마음을 나누는 악수 방정식의 변수들이다.

악수는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는 친교적 행동, 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주고받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존중, 배려, 신뢰의 징표이다. 방정식은 변수를 포함하는 등식에서, 변수의 값에 따라 참 또는 거짓이 되는 식이다. 악수는 이념을 초월하여 순수한 마음을 나누는 교감, 그 값이 항상 참이 되는 ‘삶의 방정식’ 이다. 사르트르가 언명한 것처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