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유교의 생사관
(13) 유교의 생사관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5.27 1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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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신(神)이나 죽음, 내세보다 인간, 현실의 삶, 도덕을 중시한다

유교(儒敎)는 공자에 의해 창시되어 맹자, 순자, 한유, 주자, 왕양명 등으로 이어진 사상 체계이다. 유학(儒學), 유가(儒家)라고도 한다. 시대에 따라 훈고학, 성리학(주자학),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발전되기도 하였으나 그 주류는 공자와 맹자의 공맹사상을 기저로 한다.

공자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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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신()이나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특성이 약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유교사상이 숭상되어 왔으나 조선시대에는 도덕적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성리학이 발달하였다.

유교는 인()을 도덕의 최고이념으로 삼고 현실 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특히 공자는 지천명(知天命)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한다. 천명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뜻이자 명령이다. 지천명은 천명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천명에 따르고, 천명을 실천하자는 의미이다. 천명을 단순한 운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이자 사명으로 본다.

유교는 현실적 삶()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사상이다. 따라서 삶()의 실천과 방식에 관심을 두고 도덕성을 강조한다. 죽음이나 내세에는 관심이 적다. 다만 죽음, 임종과 관련한 상례 및 제례를 중시하고 있다. 이는 귀신이나 영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자의 망자에 대한 도덕적 자세라는 현실적 접근으로 보아야 한다.

제자 계로(季路 ; 子路라고도 함)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未能事人(미능사인) 焉能事鬼(언능사귀)”라고 대답하였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리요"라는 뜻이다.

이에 계로가 다시 죽음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는 未知生(미지생) 焉知死(언지사)"라고 대답하였다.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라는 뜻이다.

공자가 귀신을 부정하거나 죽음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아니다. 귀신 섬기는 일이나 죽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보다 사람을 섬기는 것을 중시하라는 뜻이다. 현실의 삶에 집중하고 충실하다 보면 귀신 섬기는 일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자연히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상례와 제례의 경건함을 강조한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조상의 제사를 지내실 적에는 조상이 살아계신 듯이 하고,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적에는 신이 살아계신 듯이 여기라.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지냄과 같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조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왔다고 생각하고 경건한 자세를 취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는 장례를 치를 때 형식적인 절차보다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통함을 중시하였으며, 그 진정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았다.

유교에서는 사람은 죽음으로 소멸하지만 후손을 통해 영속을 이어간다고 본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형기적(形氣的) 생사관 도의적(道義的) 생사관으로 구분하여 이해한다.

형기적 생사관은 철학이나 종교적 관점을 떠나 자연법칙을 근거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이해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음양(陰陽)이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만물의 생성 요소를 기()로 보고, 기가 모여서 만물이 생기고, 기가 흩어지면 소멸한다.

유교의 음양론에서 하늘()은 양이고, ()은 음이다. 정신(精神)의 정()은 음이고, ()은 양이다. 혼백(魂魄)의 혼()은 양이고, ()은 음이다. 사람의 기()인 정신혼백(精神魂魄)이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鬼神)이 된다. 서양에서는 고스트(Ghost)라는 귀신의 실체를 인정한다. 그러나 유교에서 귀신이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귀신(鬼神)의 귀()는 돌아갈 귀(), ()은 펼 신()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백()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이 되어 하늘로 펼쳐지는 것을 말한다.

도의적 생사관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덕적 관점, 가치론적 측면에서 삶과 죽음을 이해한다. 구차하게 생명을 유지하기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도리 즉 천명을 다하고 정의롭게 죽는 것이 올바른 죽음(正命)이다.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고종명(考終命)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이를 오복(五福) 중의 하나로 본다.

<유교의 五福> -상서(尙書) 홍범(洪範)-

()

오래 수명을 누림 즉 장수하는 것

()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넉넉하게 사는 것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

유호덕(攸好德)

덕을 닦고 베풀며 사는 것

고종명(考終命)

천명을 다하고 무고하게 살다가 죽는 것

 

유교에서는 군자의 죽음을 종(), 서민이나 소인의 죽음을 사()로 구분한다. 소인은 도를 깨닫지 못하여 죽으면 육체가 썩어 사라진다 하여 죽을 사()를 쓴다. 군자는 사()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삶을 마치고 진정한 도에 들어간다는 뜻에서 마칠 종()을 쓴다. 군자는 죽고 난 뒤에 도와 하나가 되며, 죽음을 맞음으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도의적 생사관에 의하여 선비정신이 탄생하였다. 의리를 지키고 절개를 중히 여기며, 대의와 정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이다. 대표적 인물로 성삼문(成三門)을 들 수 있다.

그는 조선 제일의 충의를 지킨 인물이다. 목숨을 바쳐 신하의 의리를 지킨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영월군 영모전에 모셔진 단군 어진    위키백과
영월군 영모전에 모셔진 단군 어진 위키백과

 

그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원칙으로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세조가 준 녹봉을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창고에 보관하였다. 쇠를 달구어 다리를 뚫게 하고 팔을 자르게 하는 등의 극심한 고문에도 성삼문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달구어 오게 하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으로 독하다고 태연히 말할 뿐이었다.

그는 형장으로 가면서 황천로(黃泉路)라는 일종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목숨을 재촉하는 북이 울리는 구나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돌아보니 해도 지고 있네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저승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今夜宿諛家(금야숙유가) 오늘은 누구 집에서 잘거나

 

그리고 그는 죽기 전 절의가(絶義歌) 한편을 남겼는데,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와 비견되기도 한다.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峯)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청구영언>

 

죽음에 이르러서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충절과 사명을 다하는 선비정신을 볼 수 있다.

유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정신적 지주이다. 죽음을 천명으로 생각하고, 천명에 따르는 것을 순리로 보았다. 천명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문제보다 현재의 삶에 있어서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를 중시한다.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때 죽음은 슬퍼하거나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유교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집단주의나 서열을 중시하는 권위주의, 현실을 도외시한 사명의식의 강요, 명분에 따른 파벌과 족벌 문화, 상례·제례와 관련한 형식적이고 교조주의적 사고 등은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현실에 맞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인간성이 상실되고, 부정과 부패, 범죄의 만연으로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하다. 따라서 인간을 근본으로 하고, 현재의 삶을 중시하고,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의 근본정신은 더욱 보호되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