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의 '즐거운 소음'
고영민의 '즐거운 소음'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5.23 10:21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05-21 집에서

 

고영민의 ‘즐거운 소음’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

건물 전체가 울린다.

그 거대한 건물에 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건물 모두가 제 자리를 내준다.

그 틈, 못에 거울 하나가 내걸린다면

봐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저 한밤중의 소음을

나는 웃으면서 참는다.

 

시집 『악어』 실천문학 2005-8-30

 

관리실에서 송출하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층간 소음에 대한 주의사항이다. 앵무새처럼 매번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어조로 두 번 반복한다. ‘층간소음에 소리 맞대응, 폭행죄 처벌 받을 수도’ 표제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문득 지나간 사건이 떠오른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의 일이다. 작은방의 보일러 터진 물이 아랫집으로 흘러갔다. 천장과 벽지가 다 젖었다면서 놀란 토끼눈으로 아저씨가 올라왔다. 부랴부랴 관리사무소에 신고하고 설비센터 번호를 받아 공사를 의뢰했다. 그래놓고 아랫집으로 내려가서 다시 한 번 사죄를 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땅이 어찌 알겠어요.” 아랫집 아줌마의 배려있고 재치 있는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아파트 생활자는 저마다의 하늘을 이고 사는 격이다. 공동 주택의 최대 단점이라면 단연코 층간 소음일 게다. 우리는 이웃 복이 있는지 큰 고통은 겪지 않았다. 그러니 피해자의 심정을 제대로 공감하긴 어렵다. 허나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 익히 아는 바다. 살인으로까지 확대되는 걸 보면 이웃사촌이 아니라 전생의 원수 같기도 하다. 안내 방송을 자주한 영향일까. 어느 날 오후, 윗집 새댁이 과일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세 살짜리 꼬마가 요즘 부쩍 뛴다며 양해를 구하고 갔다. 그녀의 걱정이 현관에 서성이는데 남편은 일종의 뇌물인 참외를 깎아 맛나게 먹었다. 젊은 엄마의 인성을 추켜세웠다.

열한 줄짜리의 짧고 간결한 시 ‘즐거운 소음’은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소음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다. 결코 즐거울 수 없는 공해다. 아무리 도학군자일지라도 건물 전체가 울리는 소음 앞에 짜증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다. 그것도 한낮이 아니고 한밤중이라면 묵묵히 참으면서 견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시인은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술한다. 건물 모두가 내어준 틈에 거울이라도 걸린다면, 조금씩 양보하여 사람 하나가 들어간다면, 그 세상은 참 따뜻할 거 같다. 덕행을 얼마나 쌓아야 밤중 소음을 웃으면서 참는 경지에 도달할까. 모르긴 해도 괴롭다는 말의 반어법 표현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