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⑥초록 벨벳 위로 흐르는 소평교향악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⑥초록 벨벳 위로 흐르는 소평교향악
  • 정재용 기자
  • 승인 2019.05.21 16: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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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초록 물결 일렁이고
새소리, 개구리 소리, 벌레 소리 울려 퍼지던 곳

소평마을의 5월은 활기가 돌았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보리는 어느 새 무릎 위로 자라나 있었다. 당시는 영둥할매에게 소지를 올리는 음력 2월 초하루도 명절이었다. 해쑥이 나면 해쑥으로, 없으면 묵은 쑥으로 쑥떡을 해 먹었다. 이때가 되면 영둥할매가 보낸다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애들은 연날리기 좋았고 어른들은 초벌 보리밭매기가 시작됐다. 아직 독새도 촉을 내미는 시기라 별로 맬 것도 없었다. 그냥 호미로 쓱쓱 긁어주면 됐다. 보리밭에 가장 먼저 나는 잡초는 독새였다. 뚝새풀을 우리는 독새라고 불렀다.

이월명절 지나고 나면 양력 5월은 금방이었다. 달래, 냉이, 쑥 캐러 다니다보면 어느 새 큰거랑둑 버들강아지는 움이 트고 있었고, 양동산 가서 나무해오는 아저씨 지게 위에는 진달래가 꽂혀 있었다. 아이들 버들피리 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농부는 쟁기로 논을 갈고 못자리를 만들었다. 쟁기가 나오기 전에는 훌치를 사용했다. 소가 앞에서 끌었다.

필자의 동생 석주가 ‘고래전’ 논둑길을 달려오고 있다. 사진의 왼쪽 끝, 전봇대 서 있는 집이 서동댁이고 그 뒷집이 우리 집이다. 정재용 기자
필자의 동생 석주가 ‘고래전’ 논둑길을 달려오고 있다. 사진의 왼쪽 끝, 전봇대 서 있는 집이 서동댁이고 그 뒷집이 우리 집이다. 정재용 기자

쟁기는 흙에 닿은 날이 우묵하게 휘어진 얇은 철판인데 비해 훌치는 무쇠로 만든 역삼각형 날이었다. 거기다 쟁기는 흙이 이쪽저쪽으로 잘 넘어가게 좌우로 젖히는 방향 전환 쇠막대가 있으나, 훌치는 오로지 사람의 어깨로 비스듬히 트는 수 밖에 없었다. 깊이를 조절하는 것도 쟁기는 쟁깃날에 연결된 긴 나무를 어깨에 대지 않고 한 손으로 젖히거나 숙이는 것으로 가능했으나 훌치는 양손으로 들어 조정했다. 훌치는 쇠날 뒤편에 나무를 끼울 수 있는 홈이 있어 그 곳에 어깨까지 이르는 긴 나무를 끼웠다. 나무 중간에 손잡이가 있었다. 국어사전에는 훌치를 쟁기의 경남 방언이라고 했다.

논을 갈기 전에 먼저 거름을 냈다. ‘거름낸다는 것은 퇴비를 지게 또는 리어카(rear car)로 실어 날라 논에 골고루 뿌리는 작업을 말한다. 마을에 리어카가 들어 온 것은 새마을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다.

논을 갈고 나서는 물꼬를 열어 물을 대고 동시에 논둑을 했다. 묵은 논둑은 땅강아지나 쥐가 구멍을 내서 그냥 두면 물이 줄줄 샜다. 그러기에 삽으로 논둑 전체를 폭의 반 정도 깎아낸 후 물에 버무린 진흙으로 도로 채웠다. 이 작업을 논둑한다라고 했다. 논둑은 항상 각자가 아래 둑만 하면 됐다. 위 둑은 논 위의 사람이 하기 마련이다. 안 할 수는 없다. 안 하면 귀한 물이 빠져버리거니와 비료를 쳤을 때 아래 논 좋은 일만 시키기 때문이다. 논둑을 하다보면 삽날에 땅강아지 허리가 잘리기도 했다. 살아서 도망가는 놈이 있으면 따라가서 잡았다. 농업도 알고 보면 죽기 살기다.

제비는 이 무렵 날아들었다. 무논에 진흙이 많아 집짓기 좋고 하루살이 등 벌레가 많아 새끼 기르기 좋은 때를 아는 것 같았다. 오자마자 집을 짓느라 바빴다. 집 지으면 알을 낳고, 부화하면 새끼 먹이 구하느라 정신이 없고, 키워서는 다시 돌아갈 준비하고, 제비의 일생은 쉴 틈이 없었다. 제비는 수다쟁이였다. 제트기 마냥 하늘을 종횡무진 날다가 돌아와 빨랫줄에 앉아서는 서로들 무용담을 늘어놓는 듯 조잘거렸다. 그러기를 되풀이하다 해가 저물면 처마 밑 제 집으로 들어갔다.

보리가 자라면서 소평마을 주위는 온통 파랬다. 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고 초록 벨벳을 깔아 놓은 것 같기도 했다. 5월이 보리로 파랬다면 모내기부터 벼가 한창 자라는 여름은 벼들로 파랬다. 모내기한 논은 하루하루 벼의 색깔이 달라져 갔다. 연두색이 초록으로 변했다가 다시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모내기한 날짜가 달라서 만들어 낸 직사각형 모양의 연두색과 초록색 어우러진 들판은, 아름다운 소녀가 입은 남방셔츠 무늬 그대로였다.

동요 오월은 소평마을을 보고 지은 것 같았다. 정확한 가사와 작사 작곡자를 알고자 인터넷을 뒤졌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오래돼서 잊혀진 것 같아 외우던 대로 2절까지 적어본다.

하늘이 파랗고 산도 파랗고/ 바다가 파랗고 들도 파랗고/ 그래서 오월은 파랗고 파랗고/ 그래서 오월은 모두 파랗지// 파란 하늘 아래 파란 나뭇잎/ 파란 하늘 위로 파란 새들/ 그래서 오월은 파랗고 파랗고/ 그래서 오월은 모두 파랗지

마을 상공에서 남쪽으로 찍은 안강들, 왼쪽의 구불구불한 선은 큰거랑이고 횡으로 가로지르는 선은 철둑이다. 새마을 책자 캡처. 정재용 기자
마을 상공에서 남쪽으로 찍은 안강들, 왼쪽의 구불구불한 선은 큰거랑이고 횡으로 가로지르는 선은 철둑이다. 새마을 책자 캡처. 정재용 기자

보리밭매기는 뚝새풀과의 씨름이었다. 5월이면 보리 거름을 훔쳐 먹은 뚝새풀의 키가 보리만큼 자랐다. 호미로 감당할 수 없어서 쪼그려 앉아 양손으로 잡아당겨야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지 않고 앉는 자세를 우리는 조잔는다라고 했다. 국어사전에 조잕다는 없고, ‘주잕다주저앉다의 옛말이라고 했다. 그러니 ‘자리 잡고 앉다을 뜻하는 주잕다쪼그려 앉다조잕다는 다르다.

보리밭 여기저기서 종달새가 하늘로 솟아올라 봄노래를 경쾌하게 불러댔다. 제비가 제트기라면 종달새는 헬리콥터였다. 종달새가 유난히 머리 위에서 우짖는 곳 부근에는 종달새 둥지가 있었다. 사람이 둥지 가까이 다가가니 애가 타서 부르짖는 것이다. 둥지 안에는 갈색과 회색으로 알록달록한 알이 서너 개 들어 있었다.  보리는 골을 타고 그 골에 줄지어 뿌리는데, 종달새는 그 보릿대와 보릿대 사이, 흙과 맞닿은 부분에 검불로 둥지를 튼다. 새끼를 길러 6월 초 보리 벨 무렵 이소(離巢)한다.

보리밭둑에 나와서 낫으로 뚝새풀 뿌리를 잘라냈다. 쇠꼴도 하고 밭도 매고 일석이조였다. 종달새는 절대 둥지로 바로 날아드는 법이 없다.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본 종달새는 소리 없이 날아와서 둥지 멀찍이 내려앉았다. 좀 전에 밭 맬 때 발견한 그 둥지로 가는 게 뻔했다.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종달새를 생각하면 우습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종달새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종다리로 나타내고 있다. ‘노고지리는 종다리의 옛말이다.

가끔 양동산 쪽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비둘기 우는 소리도 들렸다. 비둘기는 구구우 구구구슬프게 울었다. 한번은 그 소리에 어디서 주워들은 어미 죽고 자식 죽고 나 혼자서 어찌 살꼬가사를 붙였다가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소평마을은 논으로 둘러싸인 섬이었기에 밤이면 개구리소리로 요란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처럼 개구리 와() 자의 사면와가(四面蛙歌)’였다.  

거기다가 초여름과 더불어 시작되는 뜸부기 소리, 개구리와 우렁이 잡아먹으러 날아다니는 왜가리 소리와 미루나무에서는 들려오는 매미 소리, 풀벌레 소리까지 합하면 가히 소평교향악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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