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신 포도를 먹고 사는 사람들
(11) 신 포도를 먹고 사는 사람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19.05.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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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높은 가지의 포도를 따먹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 !” 못 따먹는 걸 안 따먹는다고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였다. 독일의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가 이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재구성하여 천신만고 끝에 한 마리 여우가 포도를 따 먹게 된다. 그런데 그 포도는 정말 신 포도였다. 나무 밑에서 쳐다보고 있는 여우들이 부러워하는 바람에 애쓴 일이 아깝기도 하여 시고 떫은 포도를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먹다가 결국 위궤양에 걸리고 만다.

우리는 아직도 신 포도 밑에서 목을 빼고 서있지 않나? 내가 살기 좋은 집이 아니라 투자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나를 생각하기 전에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심을 두는 대중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현실사회의 내 모습이 아닐까 ?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그래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다가보니 이젠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손님이 오면 화장부터 해서 남에게 보이는 자기모습에 정성을 쏟는가하면 자기 특성은 버리고 남을 닮으려 애를 쓴다.

법정 스님은 수필 '버리고 떠나기'에서 '나는 누구도 닮지 않은 나다운 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겐 버려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진짜 내가 아닌 위장된 나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노년 세대는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해 개인보다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와 조화를 중시함이 몸에 익숙한 세대이다. 인간의 본성 보다는 대의명분을 중히 여기며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배척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 물론 경로효친(敬老孝親), 장유유서(長幼有序) 등 오늘날 너무 남을 모르고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의 삭막한 세상에서 인성교육의 필요성으로 꼭 새겨야할 덕목도 있다.

그러나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는 타인 지향의 위신과 체면, 내면보다 외형의 겉치레 중시와 허례허식의 폐해등 문제점도 많다. 감각적 쾌락주의, 특히 자기중심적인 현대사회의 젊은이들과 노년 세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노년 세대가 이성과 자기 소유를 중히 여기는 세대라면 젊은 세대는 옳고 그름보다 좋다 싫다가 먼저인 감성과 공유의 세대이다. 다양한 가치들이 상충하면서 옳고 그르거나 맞고 틀림이 아닌, 좋다 싫다의 감성이 먼저인 가치관의 혼란시대이다.

현대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엔 노년 세대의 몸이 너무 굳어있다. 젊은이들과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노년 세대에겐 젊은 세대를 알려고 하는 새로운 정신자세와 노력이 요구되며, 젊은 세대 역시 지금의 노년 세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