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랑합니다! 그리고
(13) 사랑합니다! 그리고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5.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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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 (이 쪽은)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쪽은) 미워한다! 로 가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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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TV에 방영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큰 가방을 든 남자가 현관으로 걸어 나가는데, 소파에 앉은 여자가 “Jone, I love you!” 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 남자의 뒷모습에 〈the end〉가 떠올랐다. 부부가 헤어지면서 하는 'I love you!' 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막 번역이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없으나, 아마도 '잘 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외출하려는 딸에게 ‘비가 올 것 같구나’ 라고 하면, '우산 가지고 가거라.' 는 당부의 뜻이다. 둘 다 전자는 표층의미이고, 후자는 심층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①I love you! ②I love you! ③I love you! 세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구별해서 사용한다. ①주어, ②동사, ③목적어에 부여하는 강세에 따라 전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언어학자들은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I love you.'에는 8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대화의 배경에 따라서 ①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②말을 경청해 주고, ③마음을 열어 주고, ④가치 있게 평가 주고, ⑤신뢰감을 표현해 주고, ⑥좋은 말로 충고해 주고, ⑦실수를 덮어 주고, ⑧서로 다른 점을 이해해 줄 때 사용된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을 때도 “Alright, I love you!” 라고 한다. 이때 ‘I love you!’는 (신뢰감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I love you!’ 라고 말할 때는 매우 신중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사랑한다! 는 말을 쉽게 표현하지 않았으나, 요즘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두 팔을 높이 들어 하트표시까지 쉽게 잘 하고 있다. 게다가 손가락 하트까지 만들어 보인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러한 동작을 재미있게 반복할 정도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목)부터 5일간 한국을 방문한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고 추측된다. 가톨릭 시설 곳곳에 “We love you, Pope Francis!” 또는 “I love you, Papa!” 라는 문구가 게시되었고, 각종 매스컴에도 연일 보도 되었다. 그리고 행사장 연도를 메운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그렇게 환호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사랑한다는 말과 두 팔을 머리 위에 올려서 하트를 그리는 신체어(body language)가 일상생활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매스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외친 후에 오는 만족감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그 여운이 귓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계기와 함께 교황 방문 기념우표와 기념주화가 발행되었고, 〈행복한 삶을 위한 10가지 지침〉도 전해졌다. 1.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 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 로마에는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두라는 속담이 있다. 2.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자신만 생각하고 살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3. 고요히 전진하라. 친절과 겸손은 우리 삶을 고요하게 이끈다. 4. 건강하게 쉬어라. 우리는 예술과 문학을 향유하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잃어버렸다. 소비주의는 우리에게 늘 걱정과 스트레스를 주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가 버렸다. 식사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 얘기를 나누라. 5.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가족을 위한 날이기 때문이다. 6. 젊은 세대에 품위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라.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쉽게 마약에 빠지거나 자살을 선택하기 쉽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함께 창의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7.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라. 환경 파괴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스스로 묻지 않는 질문은 인간의 이 같은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환경 파괴가 인간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8.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다는 뜻이다. 이는 ‘나 자신이 너무 비천하므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9. 타인을 개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라.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모든 일 가운데 최악은 개종이다. 교회는 개종이 아니라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통해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10. 평화를 위해 일하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가 결코 아니다. 평화는 늘 앞서서 주도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치침은 ‘사랑, 존중, 평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종교가 있든 없든, 어떤 종교이든 선한 시민들이 날마다 이웃을 서로 사랑하며, ‘머리 위해 큰 하트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아름다운 ‘사랑합니다!’ 무지개 넘어 비난과 저주로 담을 쌓는 ‘미워한다!’가 공존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아쉬운 분단이다. 이념 투쟁의 함성이 드높은 한국 사회는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 (이 쪽은)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쪽은) 미워한다! 로 가고 있다. 부디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