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7)
녹슨 철모 (7)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05.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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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중위는 흙으로 토끼 집을 만든다고 바빴다. 토끼 사육의 발상은 엉뚱한 데서 시작되었다. 경비 중대에 옴 환자가 집단 발생한 적이 있었다. 옴은 “하루 밤에도 열두 명을 타넘는다”는 속담이 있다. 환자가 한 명 생기면 급속히 번져 나가는 병이므로 군대같이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 발병하면 문제는 커진다. 특히 군대처럼 내무반에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 며칠 사이에 전 내무반원이 환자가 되기 때문이다. 전 부대가 긴장하였다. 참모장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면서도 고함만 꽥꽥 지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러나 가장 애가 타는 사람은 경비중대장이었다. 우 중위는 환자들만 따로 모아 옴 환자 전용 내무반을 새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위생병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치료하였고 또 환자가 없는 내무반에도 예방을 위해 매일 소독을 하였다. 이 덕택에 옴은 더 크게 번지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게 되었다. 경비중대장은 감지덕지하여 태원에게 고맙다며 자신들이 키우던 토끼 중 한 쌍을 감사의 선물로 주었다. 우 중위는 이참에 아예 의무실에서도 본격적으로 토끼를 한 번 키워보겠다고 선물 외에 새끼 토끼를 스무 마리쯤 더 사 보태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그 토끼들을 갖고 의무실로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영 그게 아니었다. 고참 위생병이나 선임하사는 노골적으로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었다.

"실장님, 토끼는 왜 사오셨어요?" 

고참 문 병장이 일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했는지 볼멘소리로 물었다.

“이건 말이야, 전부 내 돈으로 샀지만 너희에게 다 한 마리씩 주는 거야. 그러니 염려하지 마라.” 

설명을 하는데 또 한 녀석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키워서는요?" 

"나중에 이놈들이 다 크면 토요일마다 한 마리씩 잡아먹으려고 그래.” 

우 중위는 이런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신이 나서 설명하였다.

"근데 말이죠, 실장님, 혹시 토끼 키워보신 적 있으세요?” 

이 상사가 슬며시 끼어들어 물었다.

“토끼는 키워보면 보기보다 굉장히 많이 먹어요. 도중에 많이 죽기도 하지만 나중에 설사 저 토끼들이 다 큰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풀을 다 뜯어 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 문제는 우리 의무실은 나무나 철사 등의 재료가 없어서 경비중대처럼 토끼 집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있어도 키울 수가 없어요.”

선임하사가 여러 가지 문제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 중위는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55사단 시절이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그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 중위가 하는 일은 결국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곳 대대 위생병들은 연대에서 각 보병대대에 작전 배속되어 나가 근무를 하는 탓으로 그들의 사고나 행동은 보병들과 똑같았다. 뭘 하라면 어떤 일도 하였다. 보병들은 군기나 체제상으로도 상명하복하게 되어 있었지만 야전에서 장사병이 함께 동고동락하는 탓에 모두 형제, 전우라는 일체감을 갖고 같은 생각을 하고 함께 행동을 하였다. 하지만 군단은 같은 전투부대이긴 해도 야전 생활을 하지 않고 또 각자 제 주특기대로 막사 안에서만 사니까 분위기가 좋게 말하자면 민주적이요, 나쁘게 보면 이기주의며, 빤질빤질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말대꾸같은 말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기왕에 토끼를 사오셨으니까 키우긴 키워야죠. 대신에 굴토끼로 하시죠.“ 

선임하사가 선심 쓰듯이 방안을 하나 권했다.

"굴토낀 또 뭐요?” 

태원이 처음 듣는 말이라 자세하게 물었다.

"토끼는 습성이 스스로 굴을 파서 거기서 살아요. 그래서 저 토끼들도 울타리를 만들고 흙을 쌓아주면 스스로 집을 만들게 되죠.”

우 중위는 박 하사를 시켜 시장에서 철조망과 벽돌을 사오게 했다. 모두들 입을 삐죽였다. 억지로 실장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삽질도 하고 못질도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윽고 울타리가 완성되고 울타리 한가운데에는 작은 동산이 만들어졌다. 토끼들을 울타리 안에 던져두기만 하면 스스로 굴을 파겠지 하고 퇴근을 하였다. 다음날 우 중위는 출근하자마자 토끼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이게 무슨 꼴인가? 어린 토끼들은 굴도 뚫지 못하고 밤이슬에 젖어 바들바들 떨며 저희끼리 모여 있었다. 위생병들은 거보라는 듯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군대의 매력은 어떤 일도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명령을 내려 강제로 일을 시켜서도 그렇겠지만, 입대 전에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서 그들만 잘 이용하면 대개의 일을 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소문하여 굴토끼를 길러 본 하사관 한 사람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의 지도를 받았다. 그에 의하면 어린 토끼는 제 스스로 굴을 뚫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먼저 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흙은 다 걷어내고 벽돌을 방구들 놓는 식으로 배열한 다음 흙을 덮어주라고 했다. 그런 다음 토끼들을 풀어주니 그제야 좋아라 하며 굴속으로 몰려 들어갔다. 막상 굴을 만들어놓고 나니 이제는 선임하사 말대로 먹이가 문제였다. 토끼들이 보기보다 입맛이 까다로웠다. 아무 풀이나 먹지를 않았다. 부대가 산에 있으므로 풀은 지천이었지만 토끼들과는 별 관계 없는 것들이었다.

“실장님, 거보세요.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지금이라도 다 잡아먹고 말자고요.” 

선임하사가 입맛을 다시며 우 중위를 설득했다.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굴토끼를 포기할 태원이 아니었다. 이날부터 환자들의 낮 일과가 하나 더 생겼다.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고 나면 실장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토끼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칡 잎사귀였고 다음으로는 싸리나무 잎이었다. 이런 식물들이야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산에 가보니 막막했다. 눈에 별로 띄는 게 없었다. 아마 경비중대 병력들이 그들의 토끼 먹이로 먼저 채취해 가서 더 귀한지도 몰랐다. 하여간 실장이 진두지휘하고 또 나중에 그들의 토끼가 회식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런대로 풀을 모을 수가 있었다. 그 덕에 토끼들은 굶지 않고 자랐다. 일단 토끼 사육은 자리를 잡았다. 한편 꽃이 일단 핀 나무는 옮겨 심어봤자 살지 않는다는 속설을 깨고 의무실 출입구의 산벚꽃 두 그루도 죽기는커녕 가지 가득 꽃들을 달고 싱싱하게 서 있었다. 이죽대고 보고 있던 참모장이나 기타 장교들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