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5.08 15:38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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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어버이날에
2019-05-08 어버이날에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샘터 2006-5-30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예전에는 ‘어머니날’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날의 유래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았다. 1914년 미국의회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하면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여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전쟁으로 미망인이 된 어머니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위로하기 위함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력을 알고 나니까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와 닿는다. 어머니에 한정되었던 기념일을 1973년 효와 경로사상을 드높이기 위해 아버지에게까지 확대하여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꾼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릴 적에 나는 어머니날이 싫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듬해 처음 맞이한 어머니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에서 어머니들을 초청해서 학예회도 열고, 축제처럼 행사가 컸다. 일손을 놓은 어머니들은 모처럼 하루가 휴가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부재를 재확인하는 슬픈 날이었다. 친구들은 빨간색 종이꽃을 만들어 자기네 엄마 가슴에 달아드리는데 나는 흰 꽃을 만들어서 할머니 가슴에 달아드렸다. 친구들 엄마 가슴에 핀 빨간 꽃이 훈장처럼 빛났다. 할머니의 가슴에 꽂힌 흰 꽃은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느리기만 하던 그 하루가 어느새 자식들의 효도를 받는 나이까지 나를 데려다 놓았으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 동시엔 엄마를 일찍 여읜 정채봉 시인 자신의 간절한 마음이 오롯이 스며있다. 엄마를 그리는 마음에 나이가 따로 있겠는가. 살면서 아프거나 무섭거나 할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낱말이 엄마다. 엄마라는 호칭은 엄마가 살아계실 때에만 유효한 이름일까? 나에겐 지칭어로만 남아있는 잃어버린 호칭어다. 동일시란 게 바로 이런 것이리라. 반나절, 반시간, 아니 단 5분만이라도 왔으면 원이 없겠다는 화자의 정서적 파동이 고스란히 내 몫으로 전이된다. 잔잔한 가슴에 격랑을 일으킨다.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결미에서 시적 공감이 극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