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著)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著)
  • 김수남 기자
  • 승인 2019.05.07 10:2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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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찬바람이 불던 그 어느 해, 제목만 보고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포리스트 카터가 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만났다. 어느 때보다 속도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휴식이 필요했는데 서정성이 듬뿍 담긴 그런 장면에서 잔잔한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따뜻한 봄날은 왔다. 며칠 전 고양 꽃 박람회장에 들렀는데 정문 바로 옆에 예쁘고 컬러풀한 작은 도서관이 보였다. 꽃구경을 뒤로 하고 방앗간을 놓치지 않는 참새처럼 안으로 들어갔는데 20여 년 전 읽었던 그 책이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싱그러운 봄날 그리고 가정의 달 오월, 무릎을 치며 집에 돌아와 다시 줄줄 탐독을 했다.

1976년에 출간되어 작은 고전이라 불리우는 자서전 형식의 동화 같은 소설책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족 전부가 읽기 좋게 잔잔하고 편안하게 구성되어 있다. 작은 나무라 불리는 주인공 꼬마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속에서 살면서 성장해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이는 할머니가 노래 부르는 부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모두가 소리 높여 노래하지, 작은 나무는 외톨이가 아니지, 작은 나무는 우리형제'

이렇게 어린 손자에게 세상과 이웃과 호흡하며 자라라는 뜻으로 인디언식 이름도 붙여준 것이다.

이 책은 다섯 살 가량의 체로키 인디언인 작은 나무가 부모를 잃은 후 조부모의 손에 키워지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산과 하나가 되어 자연과 교감하며 주변의 동식물, 모든 대자연에서 지혜와 영감을 얻으며 살아가는 꼬마의 순수한 말로 묘사한다.

할아버지는 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각 상황마다 자율적으로 작은 나무가 성장하게 도와주는 등 양육방식이 특별하다. '내일 아침에 사냥을 갈 건데 널 깨우진 않을 거야'하고는 새벽에 일부러 부산스런 행동을 한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작은 나무는 스스로 깼다고 뿌듯해하고, 할아버지는 모른 척 칭찬을 하는 등 교육방법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요즘 부모들의 과잉과 극성스런 모습이 겹치며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개척촌으로 나와서 귀여운 송아지를 만나는데 주인은 송아지를 50센트에 팔겠다고 한다. 작은 나무는 심부름을 꾸준히 해서 모은 전 재산 50센트를 주고 싸게 샀다고 좋아했지만 병든 송아지였고 집에 가는 길에 이미 죽어갔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이를 못 알아볼 리 없었지만 직접 사보고 깨닫게 하며 경험으로 깨우치도록 격려해주며 혼자서 해결하는 법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정말 좋은 사람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교훈과 필요한 것 외에는 자연에서 절대로 더 빼앗지 않고 욕심을 버릴 것을 알려 준다.

책 속에서 작은 나무에게 한 마디 한 마디 건네주는 귀절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던 문장들과 할머니의 주옥같은 말들이 새삼 반갑다. '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두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사냥과 나무에도 영혼이 있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가는 소중한 생명체이며 육신을 꾸려가는 몸보다 더 중요한 영혼이 있다는 등과 같은 체로키 인디언들의 생활철학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맘대로 베어서 사용하는 나무에도 영혼이 존재하고 동물들도 감정이 있고 우리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마치 산모가 이불을 쥐어뜯 듯 온 산을 발기발기 찢어놓곤 한다'

봄이 오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각기 상황마다 정확한 조언을 하고 주요 사건들을 통해서 작은 나무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생에도 행복했으니 다음 생엔 더 멋질 것이다'' 라는 얘기를 남긴다. 할머니도 떠나고 스스로 삶을 끌어가야 하는 열 살 나이의 작은 나무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함께 있던 개들도 죽으면서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울림과 훈훈한 얘기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문제, 인종차별문제, 기독교적 문제점까지 작은 나무의 눈을 통해 많은 시각을 던져준다. 작가의 생에 대한 논란도 좀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가 조부모와 보냈던 시간이 내 영혼의 따뜻한 날들로 기억했듯이 따뜻한 기억들과 삶의 지혜를 전하는 꿀팁으로만 갖고 가고 싶다.

이 책은 제목은 '내 영혼이 따뜻한 나날'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목은 '작은 나무의 교육()'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자녀교육서로도 손색이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끝없는 사랑, 산속에서의 삶의 지혜, 자연을 통해 얻은 이치, 사람들과의 관계 등 우리 어른세대가 자손에게 전하고 싶은 지혜의 메시지가 보석처럼 담겨있다.

맑은 항아리가 생각나고 봄날같이 잔잔한데 마음 한편을 뒤흔들기도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며 지금 잠시 내 속도에 쉼표를 찍고 싶은, 그래서 여유와 조용한 자연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름다운 오월이 온통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작은 나무와 똑같은 나이인 열 살짜리 외손녀가 어버이날에 오면 들려줄 기대로 마음도 두둥실 들떠 오른다. 옛날에 우리가 그랬듯이 '달빛, 하늘, 불꽃' 등 인디언식 이름 짓기도 해보고 꼭 이 책을 읽도록 봄 향기를 넣어줘야겠다.

세월이 훌쩍 지나 이 책을 다시 읽는 내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기억과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