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문화를 창조하는 복제자 밈(MEME)
(12) 문화를 창조하는 복제자 밈(MEME)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5.06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밈은 모방으로 전달되는 사회문화적인 유전인자이다.
pixabay
pixabay

 

60년대 초반 중학교 때, 우리학교에 '마리아' 선생이 있었다. "불국사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데, (말이야) 석가탑은 무영탑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백제에서 온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 이렇게 ‘말이야’를 연발하는 언어 습관 때문에 그에게 ‘마리아’라는 별명이 생겼다. 역사 시간만 되면 공부는 하지 않고 '마리아' 회수만 세는 녀석들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이번 시간에는 82회였다.’ ‘아니다, 85회였다.’ 하며 떠들썩하곤 했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재미로 '말이야'를 반복하다가 습관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반복 효과는 모방에 의해서 대뇌 속 ‘언어습득장치(LAD : laguage acquisition device)’에 언어가 각인되는 언어습득 원리이고, 습관은 특정 어휘에 집착하는 심리적 의존성이다. 말더듬이나 ‘마리아 증후군’은 일단 습관이 되어버리면 벗어나가 어려운 묘한 현상인데 그 이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5-60년대에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애...' 또는 '어...' 하며 머뭇거리는 어른들이 더러 있었다. ‘애...’를 연발하는 사람이 연단에 오르면, 관중석에서 누군가 “애...는 내가 할 터이니, 연설이나 잘 하시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듣기에 거북하다는 뜻이었다. 이 무렵에는 말을 더듬는 사람들도 있어서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말더듬, 마리아, 애-어 증후군들이 점차 종적을 감추었다. 추측컨대 라디오는 물론 특히 텔레비전이 생활화된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아나운서들의 멋진 목소리를 날마다 들으면서 무의식적인 반복 강화, 그 모방 훈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90년 들어와서 TV에 나오는 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부분’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분 증후군’이 빠르게 전염되었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 의도적으로 따라하면서 습관화 된 것이다. ‘부분’ 중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세먼지 부분은(문제는) 호흡기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부분(것)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야할 부분(과제)입니다.” 이 문장에서 세 번 반복된 '부분'이라는 명사는 비문법적인 오용(誤用)이다. ‘부분’이라는 명사가 대용어(代用語)처럼 중복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괄호 속의 명사와 대명사로 바꾸어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이런 현상이 비록 개별적인 언어습관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대체로 (유식한 척하면서) '사실'을 '펙트(fact)' 라고 영어로 말하는 이들이 주로 '부분 증후군'에 속한다. 문제는 ‘부분’이 남용되면서 국민 정서에 무의식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 있다.

왜냐하면, 이념 대립이 첨예한 오늘의 한국사회에 숲(전체)을 보지 못하고, 나무(부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가꾸는 목적은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데 있다. 나무와 숲은 동시에 가꾸어지지만, 나무는 숲을 이루어야 진정한 나무가 된다. 숲에는 함께 더불어 사는 평화공존의 지혜가 들어있다. 식물학자들은 숲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화롭게 형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전 세계의 지질학자들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제주도 〈거문오름〉 거대한 분화구의 숲이 다양한 수종으로 울창하기를 바라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부분’이라는 말을 오용(誤用)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이런 글을 쓰느냐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언어의 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 소개되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용어”를 밈(meme)이라고 했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펴져 나갈 때 정자가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밈은 모방의 사회문화적인 유전인자를 말한다. ‘부분’이라는 단어도 이념 대립이 가속화되는 한국인들의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며 모방, 확산되고 있다. 도킨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수잔 블랙모어는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MEME』에서 밈은 “모방 같은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되며, 인간 두뇌의 발달뿐 아니라, 문화 진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했다. 밈의 중추적인 에너지는 바로 언어이다. 2002년 월드컵경기 때 전 세계로 퍼져나간 '대한민국 따단따 딴딴!' 함성이 그러했고, 촛불 집회도 그러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기중심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집착하는 나무가 아니라, 널리 인간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의 큰 숲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름다운 숲이 되어 온갖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드는 낙원, 대한민국이 되도록 모두가 전심전력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