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 초등학교 30회 동기회
내남 초등학교 30회 동기회
  • 방종현 기자
  • 승인 2019.05.0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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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반갑다! 보고싶었다!

경주시 내남면 부지 1리에 자리잡은 내남초등학교는 동으로 남산과 서편으로 성부산의 기세가 몰아치는 상서로운 풍수를 지니고 있는 오리만에 있는 학교다.

내남 초등학교 전경(동창회 제공)
내남 초등학교 전경(동창회 제공)

 

1926년 내남 공립 보통학교로 첫 문을 열어 1938년 내남 심상소학교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1941년에는 다시 내남 공립 국민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지난 1990년대 농촌지역 인구감소 여파로 인근 박달국민학교와 노월국민학교를 병합시켜 현재의 내남 초등학교로 되었다.

 2019년 2월까지 90회 졸업식(개교 이래 5,900명을 배출했다)을 가졌으며 내남 초등학교 출신으로 법조계 대구고등법원장을 지낸 황영목 원장과 이종준 부산 고검 사무국장, 정계에 국회의원을 지낸 심봉섭 의원, 재계에 이봉관 서희 건설 대표가 있으며 학계에는 경운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낸 최진근 원장 등이 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한 진앙지가 내남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계속되는 여진으로 내남 주민들은 지진 공포로 시달려 왔다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동문인 ()서희 건설의 이봉관 회장이 지진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주민을 위로하고자 내남 초등학교 교정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인구 감소로 폐교된 5개 초등학교(광석, 박달, 명계, 노월, 율동) 졸업생들도 이 자리에 모두 초청됐다. 5개 학교 출신을 졸업 연도에 맞춰 내남초등학교 해당년도 기수로 인정하는 통합 총동창회를 발족시키며 이 날 동창회 잔치는 화합의 기틀을 마련하는 의미있는 행사였다는 후문이다. 이날 큰 소 두 마리를 잡아 주민과 동창회원 등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700여 명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봉관 회장은 31회 졸업생으로서 현재 총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지진 피해를 입은 경주시로 재난 복구지원을 위한 성금 2억원을 쾌척한 바도 있다.

올해 429일 열린 총동창회 체육대회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30기 동기회 (회장 김재완)30여 명이  참석했다.

20년전 동기회기념 (동창회 제공)
10년전 동기회 기념 (동창회 제공)

1970년부터 결성한 동기회는 30여 명이 참석해 40년째 우정을 다지고 있다.

10년전 동기회 기념(동창회 제공)
20년전 동기회 기념(동창회 제공)
총 동창회 체육대회에서 30기 동기들의 축하무대(동창회 제공)
총동창회 체육대회에서 30기 동기들의 축하무대(동창회 제공)

졸업생인 황인동 시인의 회고담을 옮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 덧 60년이 지났다. 지난달 29일 개교 90년을 맞아 치러진 총동창회 정기 총회에 우리 30회 동기 30여 명이 참석했다. 600여 동문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색소폰과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행사 중 김진화 교장 선생님의 학교 근황 소식을 듣고 참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재학생이 많았을 때 1,300여 명까지 있었다는데 지금은 면내 다섯 개 학교를 모두 합해 내남 초등학교 하나만 유지하고 있으며 전교생이 겨우78명에 불과하다고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우리 30회는 1학년부터 2개 반으로 공부했으나 6학년 때 담임 선생님 한 분이 유고가 생겨 93명이 한 반에 모여 공부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도 이 많은 인원이 한 학급에서 어떻게 지냈나 싶었지만 그 때는 그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두 개 교실 중간 칸막이를 없애고 큰 교실 하나로 만들어 류영태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다. 나는 드물게 초등학교 6년 동안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두 분 뿐이다. 1 학년부터 3 학년까지 박용택 선생님이고 4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류영태 선생님이다. 추억도 가장 많았고 존경하는 분이기도 했다. 결혼할 때는 당시 경주 계림초등학교 교감으로 계시던 선생님께 주례를 부탁드렸다. 한 번도 주례를 해보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완고하게 거절했지만 결국 류 선생님은 주례를 맡았고 오래전 고인이 됐지만 지금도 선생님이 생각나면 결혼사진 속 선생님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추억의 시간을 떠올린다.  93명이 한 반으로 졸업한 뒤 수적으로 많은 동기생들의 모임이 오히려 모범적인 동기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동기생 중 2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지만 지금도 동기회 때마다 30명 이상이 참석한다. 지난해에도 버스를 빌려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갔는데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많이 생겨 금년부턴 가까운 식당에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어릴 적 모습 대신 깊게 파인 주름을 마주 보고 있어도 동기회는 참 아름답고 설레는 모임이다. 앞으로 몇 년 더 이어질지 모르지만 친구들아 ! 건강하여라 그리고 행복하여라!"

좌로부터 최상태(고교 교장).한정윤(축산업).오성조(고교 교사).이종식(경주동문).김재완(동기회장).이종준(대구.부산.지방검찰청 사무국장).최병조(서울동문).최호규(총동창회 사무국장).황인동(청도 부군수).
좌로부터 최상태(고교 교장), 한정윤(축산업), 오성조(고교 교사), 이종식(경주동문), 김재완(동기회장), 이종준(부산고검 사무국장), 최병조(서울동문), 최호규(총동창회 사무국장), 황인동(청도 부군수). 동창회 제공

 

 

아름다운 길             - 황인동 (시인.대구 문인협회 수석부회장)

 

숯가마골에서

학교가 있는 *냄비까지

 

책 보자기 허리에 매고

양철 필통에서 나는

딸각딸각 몽당연필 구르는 소리 들으며 학교 가는 길

길섶에 돋아난 쑥부쟁이의 웃음이

햇살처럼 고왔었다

 

비오는 날

비료포대 덮어쓴 물고기같은 아이가

교문을 들어 설 때

비늘 털어내며 서있던 나뭇가지

지금도 뻗어 있을까

 

월사금 내지 못해

타박타박 되돌아 오는길

엄마의 한숨 소리가

마을앞까지 마중나와 서성이는데

돌려 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은

또 어떠 했을까

 

우리면에서 제일 큰 학교

운동장이 바다처럼 넓어 보이던 학교

운동장 모퉁이에 작은 연못이 있던 학교

아름다운 우리의 모교

내남 국민학교

 

지금 나는,

그때의 교장 선생님 보다

나이가 더 들었지만

 

콧물에 저려 반짝이던 소맷자락 펄럭이며

검정 고무신으로 돌맹이를 걷어차며

솜털구름 데불고 학교가던 그 길을

 

"성부산 높이 솟아 병풍이 되고"

목청 높이 교가를 부르며

다시 한번 걷고 싶다

아름다운 그길을....

 

*냄비: 내남면 부지리의 옛 地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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