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6)
녹슨 철모 (6)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05.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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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중위는 회진 후 치료와 처치가 끝나면 환자들에게 병 기본 훈련을 시켰다. 다리가 아픈 환자는 누워서 역기나 아령 운동을 시키고, 팔이 아픈 환자는 달리기와 앉았다 서기를 시켰다. 총검술도 시켰다. 신체 단련이 끝나면 병실로 들어와 칼빈 총신 위에 바둑돌을 얹은 다음 격발하는 훈련을 하였다. 이 훈련은 태원이 전방에 있을 때 보병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 훈련은 실제 사격을 하지 않고도 사격술을 향상시키는 방법이었다. 옳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총신 위의 바둑돌이 떨어진다. 돌 떨어지지 않게 격발이 되면 실전에서도 실수가 줄어든다. 이런 운동과 훈련이 끝나면 각자 휴식과 자유시간을 갖는다. 취침 전에는 ‘환자수칙’이나 ‘군인의 길' 등의 교재를 읽고 외우게 하였다.

남들이 보면 의무실에서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짓을 하는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 중위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다. 환자들이 상태가 좋지 않아 상급부대나 병원으로 후송이 되면 여기서 고참들이 신고식을 한다는 명분으로 환자의 수칙이나 군인의 길을 외우게 보라고 한다. 자대로 가서도 이런 일을 당하는 데 이 과정을 매끄럽게 넘어가지 못하면 많은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위생병과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을 데리고 부대 뒷산으로 등산 겸 산책도 갔다. 도토리를 주어 죽도 쑤어먹고 칡도 캐어 와 함께 차를 끓여 마시기도 하였다. 우 중위 생각은 이런 행동은 환자들이 원대 복귀했을 때 기술이나 체력이 남들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다음으로 군인은 아파도 군인이라는 기본 개념을 심어주고 또 이런 식의 정신적 긴장감이 모든 질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험시키고자 하는데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환자들은 자신이 잠시 아픈 사람들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군인이지 결코 낙오자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휴가나 외출을 다녀오는 사병들은 반드시 의무실을 거쳐 가게 하였다. 이런 의례는 규정에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실천되지 않고 있었다. 어떤 병사들은 성매매하는 곳에 들렀다가 귀대 후 성병이 생겨 남몰래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병사는 군대서 성병 앓으면 처벌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두렵고 또 병도 부끄럽고 창피한 나머지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병은 성교 후 며칠이 지나야 증상이 나타나지만 미리 약을 넉넉히 써 주거나 혹은 조기에 의무실에서 치료하면 쉽게 나을 수 있기 때문에 귀대 시에는 검사뿐만이 아니라 그런 지식을 미리 알려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형,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하고 어느 날 야전병원에 찾아온 우 중위가 물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제가 온 후로는 위생병은 물론이고 선임하사도 약품에 일절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고요.” 

나는 그런 문제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이렇게 퉁명스레 되묻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 너가 그렇게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는 말했다. “우리 애들이 휴가를 못 가요.” 

아니 약품 삥땅과 위생병 휴가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처음에 선임하사인 이 상사가 약에 손을 대는 것을 제가 못하게 막았지요. 약재병 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요. 분위기가 맑아지니까 아주 기분이 좋더군요. 그리고 위생병들도 무척 좋아했고요. 그런데 그게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이 상사가 그동안 약을 팔아 자기의 주머니도 채웠지만 같은 부대 내에서 타 부처에 약을 주면서 벌이던 로비 줄이 막히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는 거예요. 우선 수송부에서 엠블런스 용 휘발유를 잘 주지 않고요. 또 보안대, 헌병대 애들도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요. 부대 내에서 의무실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기더군요. 저는 이제야 이 상사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위생병들의 휴가가 딴 부처 애들에게 밀린다는 것이죠.”

솔직히 나는 군의관이긴 해도 정신과 전문의로 입대해 계속 병원에 근무하고 있으니 민간인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 중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도 전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우 중위도 제 고통을 하소연하는데 의미가 있지 무슨 해결책을 찾아 달라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태원이 위생병들에게 자신은 모르는 것으로 하고 선임하사에게 특수한 약을 제외하고 일반 약품을 매달 약을 정기적으로 상납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현실과 타협을 한 것이다. 전에 나에게 의논한 것은 이미 자신의 의사는 결정해 두고 한 번 더 자신의 의지를 다지러 온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듣고 그가 현실감이 생긴 것인지 현명해진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 진작 그런 융통성을 보였다면 지금쯤은 학교에 남아 교수의 길을 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학생 때 그의 뜻대로 자퇴하고 본격적인 운동권으로 들어섰더라도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쯤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하고 쫓기듯 입대를 하고서는 이제야 제정신이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