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과 '조괄'에게서 배운다
'손빈'과 '조괄'에게서 배운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4.30 16:5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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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빈의 지혜와 조괄의 우둔함
중국의 고전을 통해 배워보는 지식과 지혜!

 

우리는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부모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내 자식인데 내가 모를까? 10달을 배가 아파 낳았는데 속속들이 모른다면 어찌 아들딸이라 할까?” 그렇다면 정말 자식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까? 하나하나 따져 물으면 하긴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속을 모르겠네!”한발 물러선다. 어쩌면 엉터리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도 속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설사 부모와 자식지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사회에 나가는 자식들의 천거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나 나라를 경영하는 자리로 나간다면 그 중책을 따져서 아낌없는 조언과 채찍을 들어야 한다. 이는 본인 한사람의 안위와 영달이 걸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잣대는 더욱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지혜로운 부모가 있어 자식의 자질이나 지식, 지혜 등등을 정확히 파악하여 나라를 경영하는 중책의 자리를 막아섰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은 기어이 나라의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그가 중책을 맡자 어떻게 나라를 망하게 했는지 중국 고전에서 배워본다.

기원전 260년경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했다. 이에 조나라는 노련한 노장 '염파'를 파견하여 방어케 한다. 전장으로 나아간 염파는 진나라 군대와 몇 번의 싸움에서 패하자 역시나 노련한 장군답게 수성으로 전화하여 굳게 지켰다. 지난한 싸움의 시작인 것이다. 이는 진나라에게는 불리하고 조나라에게는 유리한 싸움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나라는 독을 잔뜩 품어 똬리를 뜬 독사의 형세다. 이제 진나라가 철수를 감행하면 대대적인 공격으로 확실한 승기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공격도 철수도 어느 것 하나 결정할 수 없는 진나라는 다급해졌다. 꽉 막혀버린 상황, 이를 타개하고자 진나라는 지혜를 발휘하여 은밀하게 이간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실행으로 많은 뇌물을 준비하여 조나라의 대신들을 회유하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대장군도 작전에 능한 지혜로운 '백기'로 암암리에 바꾸었다. 이는 극비라 진나라 병사들조차도 대장군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 되었다. 전쟁은 병사의 수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상대방이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낚싯대를 흔드는 대로 몸부림을 친다면 병사의 수와 관계없이 그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것과 다름없다.

'손빈'이 전국시대의 최대 명장인 '방연'을 잡을 때의 계책이 이와 다를 바 없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지간이었지만 손빈의 재주를 시기한 방연이 손빈의 두 다리를 자르는 등 몹쓸 짓을 저지르자 손빈은 미치광이로 변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사지로부터 벗어난다. 이후 제나라에 몸을 의탁한 손빈은 절치부심 기회를 노린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위나라가 이웃한 나라의 정벌에 나서자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하는 척 기만하자 원정에 임했던 방연이 불원천리 돌아온다. 그러자 싸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곧바로 퇴각하는 지혜를 보인다. 이는 단순한 퇴각이 아니었다. 퇴각하는 중에 손빈은 적군을 속이기 위한 위장 전술로 자국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솥의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탈영을 한 듯 방연을 속인다. 마침내 방연이 마릉계곡에 접어들자 온전히 포위하여 단칼에 원한을 갚는다. 이는 상대방이 쓴 병법에 걸려들어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기 시작하면 바로 끝장이라는 뜻이다.

진나라의 뇌물, 송나라가 멸망 시 '진회'라는 간신이 적국으로부터 뇌물을 받고는 그 대가로 무묵유서(원제 파금요결로 금나라를 깨는 비결이라는 뜻)의 저자 '악비'를 모함하여 죽인다. 부귀영화를 누리고자한 그의 결말은 더 비참하여 바로 처형됨은 물론 악비의 묘 앞에서 꿇어앉은 석상이 되어 지금도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모름지기 나라에 녹을 먹는 자라면 재물을 한낱 티끌 보듯 해야 한다. 이는 전시라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한다. 그런데 조나라 대신들은 진나라가 주는 뇌물을 덥석 받았다. 그것은 조나라의 대신들에게 있어서 저승길을 재촉하는 사잣밥이었다. 이를 알 리가 없는 대신들이 명장 '염파'를 탄핵하고 나섰다. 이에 효성왕도 동조를 하자 염파는 영문도 모르는 채 짐을 쌌다.

사실 전선은 염파의 지구전으로 인해 조나라가 유리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중이었다. 전혀 다급할 것이 없었지만, 선조가 이순신장군에게 전쟁을 독촉하듯, 독촉하다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명을 씌워 파직했던 것과 일맥상통한 '염파의 파직'이었다. 이어 대신들은 진나라 조정의 앞잡이가 되어 조괄을 대장군에 봉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조나라가 말한 염파 장군은 늙어서 겁이 많아졌고 진군에 투항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진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는, 조나라가 최근 작고한 조사 장군의 아들 조괄을 새 대장으로 임명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젊고 유능하며 용기가 탁월합니다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효성왕은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모친이 극구 반대를 하고 나선다. 이유는 조괄이 비록 자식이지만 그는 지혜롭지 못하고 알량한 지식만 믿고 거들먹거릴 뿐 대장군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내 자식이 최고라고 우기는 우리나라의 자식사랑에 반하는 행동이다. 어머니가 믿지 못하는 아들, 효성왕은 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야 했다. 대신들이 입을 모으는 상황, 효성왕은 이미 결정이 났다며 돌아가라고 한다. 이에 모친은 후일 일이 잘못되어 낭패를 한다고 해도 절대 죄를 묻지 말라는 다짐을 받고서야 돌아 나온다.

그럼 어머니는 왜 아들의 출세를 반대했을까? 조괄의 아버지인 조사는 공명정대한 인물로 군사들과 술잔을 같이 할 정도로 군사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조정에서 그를 치하기 위한 보답으로 많은 금은보화를 내려 보내면 모든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그런 상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아들의 천거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조사는 전쟁이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니 엄숙하고도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도 조괄은 안이하게 군사를 말하고 있다. 앞으로 조나라가 그를 기용치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나, 만약 등용한다면 그가 조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했다. 이어 조사는 조괄의 병법은 종이 위에서 혼자 놀고 있는 병법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는 혼자서 바둑판 위에 흑백의 돌을 놓아 이기고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감정에 연연하여 죽이고 살림이 자유로워, 그저 기분에 취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조사는 죽고 조나라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상여'마저 병석에 누워 있었다.

인상여와 염파는 관포지교를 연상케 하는 벗이었다. 하지만 그 둘의 처음은 아니었다. 철저한 앙숙이었다. 물과 기름이라 하기에는 둘의 마음은 한결같이 나라의 발전에 있었다. 이미 뜻이 같은 두 사람 곧 바로 의기투합하여 지기가 된 것이다. 여기에 조사까지 합세하자 조나라는 날개를 단 듯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는 후일 초한대전의 장량, 소하 그리고 한신에 비견 될 만한 참모진의 구성이었다. 만약 이들 셋이서 합심한 때에 진나라가 쳐들어 왔다면 능히 막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죽고 또 한 사람은 병석에 누웠다. 홀로 전장에 나간 무장이 구중궁궐의 뜻을 어찌 알까? 그런 상황이 조나라가 처한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조괄이 대장군에 임명되자 지급된 많은 재물을 혼자서 독차지함은 물론 사열에서 거들먹거리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그녀는 남편인 조사가 판단한 아들과 실제 그가 취한 행동거지가 일치하자 적극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괄이 염파를 대신하여 대장군에 봉해 전장에 투입되자 전열을 가다듬은 진군은 조괄을 손바닥에 올린 공깃돌처럼 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동조를 하듯 자신의 병법에 한껏 자신감을 들어낸 조괄조차도 사지인줄 모르고 장평으로 호기롭게 뛰어든다. 일명 '장평전투'가 그것이다. 당시 조괄은 자신을 맹신한 객기에 찬 젊은 장수에 불과했다. 구리산 전투를 맞아 한신의 책략에 말려든 항우요, 사마귀 앞에 놓인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다. 노련함과 치밀함이 없었을 뿐더러 만약을 대비해서 퇴로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강구한 후 전쟁에 임했어야 했었다. 거기에 더하여 그는 군사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혼과 지혜가 삭제된 병법을 믿고 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종이 위의 병법이란 뜻에지상병담'이라 말한다. 예상한 대로 그 결과는 참혹했다. 매복에 걸려 40여일의 악전고투 끝에 조나라 군대는 참패했다. 어린이 240여명만 돌아오고 45만여 명이 넘는 군사가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모조리 생매장, 몰살당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그냥 참살이었다. 항우가 항복한 진나라 군대 20만을 생매장하는 것보다 더 참혹한 지경이다.

그의 어머니는 효성왕과의 당초 약속대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가 망한 마당에 처벌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괄의 패배와 조나라의 멸망!

따지고 보면 그것은 필연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반대했듯 조괄은 대장군감이 아니었다. 지식은 넘쳐날 지언정 지혜가 없었다. 결국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는 뱀은 더 이상 위협적인 요소를 떠나 그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 시기는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선보인 시기다. 사실 손자병법이나 손빈병법을 익힌다는 것은 지식은 익히는 것이다. 지혜는 이와 다르다. 많은 지식이 지혜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조괄은 그 지식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무릇 군사를 통솔하는 대장군은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지형지물을 판단하고, 기후를 미루어 짐작하고, 세작과 간자를 파견하여 적정을 세밀히 살피는 등등 나아가 적장의 생활습관까지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군대의 편성은 더욱 치밀하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 퇴로를 열수 있는 얼마간의 병력을 예비부대로 후방에 두어야만 한다.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조차 무시하여, 한순간에 적군이 펼친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신세가 되어 전군의 몰살을 맞은 것이다. 만약 조괄이 지혜로운 자라면 염파의 작전을 면밀히 살펴 이로운 점은 득하여 전쟁에 활용해야 했던 것이다. 무조건 선임의 작전을 무시하는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많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혜롭게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흔히들 나아가 들면 고집불통에 꼰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런 시니어들을 대하는 젊은 세대들의 눈초리는 탐탐치가 않다. 아예 상대조차 싫어 피하기만 한다. 그럼 어떤 삶이 지혜로운 삶일까?

조신호(현 시니어매일기자)시인의 하운산방 중 호드기에서 생각해본다.

실건아. 니 우리 호득이 못 봤나?/호드기요, 내 호드기는 여기 있지만/할매내 호드기는 못 봤니더!/ 옛끼 넘아, 그게 무슨 호득이고 초래지/이게 어째 초래이겨, 할매요/호드기지요, 버들피리 말이씨더/우눔아! 그게 어디 버들피리더냐?/버들피리는 물괴기란다, 물괴기/할매요, 그럼 물괴기 소리 한번 들어보이소!/삘릴리, 삘릴리, 삘릴리,/

시인은 안동의 어느 마을 골목길을 지나다가 할머니와 손자뻘로 보이는 아이의 대화를 듣고 시를 지은 모양이다. 할머니와 손자뻘이라면 시간상으로 약 4,50여년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이는 대화 내용에서도 확연하게 들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대화는 구수하고 정겹다.

할머니는 손자인 호득이를 찾지만 아이는 호득이는 모르고 물오른 버들가지로 만든 호드기를 말한다. 이에 할머니는 나뭇가지를 뜻하는 초래를 이야기하자 아이는 다시 버들나무가지로 만든 피리라는 뜻의 버들피리라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버들치(버들피리 또는 버들묵지라고도 하며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의 일종)란 물고기라 우기자 지혜로운 아이는 그럼 물괴기 소리 한번 들어보이소!”소리로써 피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둘의 대화 그 어디를 보아도 고집이나 아집은 없다. 그때그때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넘기고 있다. 이것은 지식과는 무관하다. 할머니가 나이 많은 것을 내세워 아이를 꾸짖었다면 고집불통에 꽉 막힌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반면 아이고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무시했다면 당돌한 아이에 버르장머리 없다고 지청구를 들었을 것이다. 철학이 어려움 속에서 빛을 갈구한다면 지혜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혜가 더 요구되는 때이다. 그것이 젊은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는 많이 듣는 것을 시작으로, 하마평을 맹신한 효성왕이나 자신의 지식에 취해 대세를 그르친 조괄의 삶을 닮아 고집불통의 노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