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
(11)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4.29 09: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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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은 인식을 흐리게 하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11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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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기차역에서 77번 시내버스를 타야 할 때, 진행 방향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반대 쪽으로 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이를 언어학적으로 설명하면, '77번 버스'라는 기표(記標)는 하나이지만, 두 가지 기의(記意)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쪽으로 가는 77번과 서쪽으로 가는 77번을 통합해서 그냥 77번 버스라고 칭하는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에 기인한다.

기표(記標)와 기의(記意)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 1857-1913)가 정의한 기호의 근본을 이루는 두 성분이다. 기표는 지각할 수 있는 언어의 기호인데 소리(음성)일 수도 있고, 표기(문자)일 수도 있다. 기의는 음성 또는 문자의 내면에 형성되는 개념, 즉 의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와 다르게 속에 숨어있는 기의, 즉 의미는 자의적이고 관습적이다. 다시 말해서 같은 단어의 의미를 사용자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77번 버스’라는 기표는 구체화 되어있으나, 보통 ‘진행 방향’을 생략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나무’라는 문자 자체는 기표는 동일하지만, 그 문자나 음성을 통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개념인 기의, 의미는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의 관습에 따라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이 바로 언어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 언어의 자의성이 미묘하게 드러난다. 직역과 의역의 차이는 물론이고, 직역이든 의역이든 번역자의 어휘 해석에 따라서 번역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77번 버스의 방향에 대한 오류처럼)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면 오역(誤譯)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자면, 『논어』의 첫 문장,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해석이다.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나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이 문장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풀이되어있다.

이 번역문에는 ①미흡한 점과 ②잘못된 점이 들어있다. ①미흡한 점은 동사 학(學) 다음에 생략된 목적어를 누락한 것이다. 국내에 출간된 6권의 『논어』 번역서를 검토한 결과, 5권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있고, 1권에 ‘무언가 배우고’라고 하여, 생략된 목적어를 ‘무언가(something)’라고 풀이했다. 목적어를 밝히지 못한 번역자들은 그 목적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고, 목적어가 ‘무언가’라고 한 분은 의미 해석에 오류를 범한 것이다. 학(學) 다음에 생략된 목적어를 ‘예(禮)’라고 주석(註釋)을 단 책이 있으나, 잘못 이해한 것이다. ‘도(道)’라고 해야 한다.

학(學)의 목적어는 『대학』의 「經一章」 ‘큰 학문의 길은 밝았던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과 하나 되는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상태에 머무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라고 설명되어있다. 공자가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추구했던 유학의 핵심은 ‘道’를 가르치는 것이고, 이 도(道)는 『중용』 「제일장」,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이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라고 명시되어있다. 공자 학당(學堂)에서 ‘도를 몸에 익히는 것(修道)이 바로 교육(敎) 목적’이었다. 그러니 동사 배우다(學)의 목적어는 ‘도(道)’이다.

②해석이 잘못 된 점은 ‘시습지(時習之)’의 ‘시(時)’를 ‘때때로’라고 풀이한 것이다. 유학 경전 연구의 필독서인 『설문해자』에 ‘時’의 뜻을 찾아보면, 『논어』에서 ‘常時’, 즉 ‘항상’으로 사용되었다고 정의해 두었다. 그리고 『중용』 「제일장」에 ‘도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난다면 도가 아니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는 명백한 오류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대화록이자 교육학 원론인 『논어』 첫 문장은 이 책 전체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고 그것을 항상 익히니(修身)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해석해야 한다. 오역은 언어의 그릇된 자의성이고, 오역에 젖어있는 것은 일종의 관습성이다. 언어의 자의성과 관습성은 인식을 흐리게 하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