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5)
녹슨 철모 (5)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04.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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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예상한 대로 잘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우 중위는 아무리 군대라도 의무실 주변 환경은 환자를 위한 분위기로 바꾸어야 된다며 삭막한 의무대 막사 주변부터 꾸미기 시작했다. 가진 돈이 없으니 농가에 가서 사정사정하여 개나리 묘목을 얻어다가 빼곡히 심었다. 개나리가 꽃피자 막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부대 뒷산에 가서 한참 피어나는 산벚꽃나무 두 그루를 캐다가 의무대 문 양쪽에 심었다. 약간만 손을 대었는데도 의무실 주위가 환해졌다. 하지만 칭찬보다는 빈정대는 사람이 더 많았다. ‘꽃 핀 나무는 옮겨 심어서 사는 법이 없다’고 이죽대는 사람도 있었고, 참모장 박 준장은 한술 더 떠서 그대로 두면 될 의무대를 왜 저렇게 어지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인 짜증을 내었다. 다행인 것은 집어치우라는 억지는 부리지 않았다.

보통 준장이라면 고참은 사단장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급이다. 하지만 군단 안에서는 별이 하나라도 부대 안 살림살이를 챙기는 일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군단장은 보통 세 개의 사단을 지휘단다. 우 중위 군단은 수도방어를 하는 부대라 예하에 네 개의 사단이 있는 특급 군단이다. 참모장은 군단장을 보좌한다지만 작전이나 훈련 등의 업무에는 끼이지 못하고 주로 하는 일이란 부대 내 청소 상태, 장교식당 메뉴 선정, 장교들의 근무태도나 두발 상태 점검, 조경 등의 보병답지 않는 일을 기획하고 감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부대 내의 그런 잔일은 중령인 본부 대장이 실무자이다. 참모장은 도장만 찍으면 된다. 그러나 성격에 따라 시시콜콜 자신이 직접 챙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태원 중위는 군단 내에서 본부대 소속이므로 매일 그 본부대 회의에 들어가 보고하고 지시 듣는 게 일과의 하나였다. 회의하다 보면 일반 부대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아 실소가 나올 때가 자주 있었다. 가령 장군식당에 곰탕을 내놓을 때 깍두기의 맛이 항상 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얘기도 진지하게 의논하고 또 파를 자를 때 그 길이는 몇 센티가 적합한가를 또 한참 토론도 한다. 한 번은 삼선자장면의 ‘삼선’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몰라 취사병을 불러 삼선에 대한 브리핑을 받기도 하였다. 보통 군인들은 부대 내에서는 이런 별 군인답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항상 북괴들과 총칼을 맞대고 최전선을 지키는 용맹한 용사 행세를 한다.

어느 날 참모장 박 준장이 본부대 장교들을 전부 집합시켰다. 참모장은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참모장을 뭘로 보는 거야?”

'이 사람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우 중위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화가 잔뜩 난 그는 식식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주먹으로 줄 서 있던 장교들의 뺨을 차례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넘어지기도 했다. 뭔가 잘못되어 이렇게들 두들겨 맞는 모양인데 우 중위는 자신의 죄도 모르고 함께 두들겨 맞았다. 그로서는 자신이 왜 이렇게 맞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맞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장교들이 장군에게 이렇게 집단으로 구타당하는 예는 그 후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여태껏 이렇게 누구에게 손찌검당해본 적이 없이 살아온 우 중위라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전방의 보병들과 야전에서 1년 동안 함께 뛰어다니며 온갖 모욕을 당해도 이런 식의 기분 나쁜 구타를 당해본 적은 없었다. 박 준장의 광란은 자신이 살고 있는 C-관사의 방에 도배를 한 뒤 새로 칠한 니스가 빨리 마르지 않아서 화가 나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장군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면 고귀한 후배 장교들을 그렇게 개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잘못한 개라도 그렇게 갈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쟁이 난다면 이런 지휘관에게 내 목숨을 걸고 충성할 군인이 있을까? 충성은 커녕 총구가 어느 쪽으로 향해질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군단의무실에 오는 환자 중에는 군단사령부 안의 자대 병력 외에도 딴 부대에서 파견 나온 병력도 있고 부대 밖에 독립해 있는 예하 부대에서 온 장,사병도 있었다. 사령부 밖의 독립부대로는 헌병대, 포병사령부, 보안대 등이 있다. 이들이 입실(군에서는 병원이 아닌 규모가 작은 곳의 입원을 입실이라고 함)하면 말로는 한 부대이지만 근무처가 따로 떨어져 근무했던 관계로 무척 서먹서먹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우 중위는 사령부 소속 고참병들이 예하 부대 신병이 입실하였을 때 호된 신고식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군대의 신고식이란 신상파악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텃세하느라 골탕을 먹이는 원시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우 중위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아침 회진 때 전날 새로 온 환자가 있으면 자신이 신고식을 치르게 하였다. 자기의 소속부대를 소개하고 관등성명을 복창하게 한 다음 노래를 시키거나 장기자랑을 시켰다. 군대의 병실 아침 회진시간에 이런 일을 하니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이런 통과의례를 만들고 나서는 환자들 간의 다툼이나 본부 병력들의 텃세가 없어져 갔다. 신병이 오래 입실하였다가 자대로 돌아가면 적응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총기손질, 분해 결합도 서툴게 되고 총검술이나 태권도를 까먹어 애를 먹기도 하고 사격도 잘하지 못한다. 더구나 군인으로서의 생사관이나 전투의 목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고생들을 했다. 이런 결과 몸이 한 번 아파 입실하게 되면 그 길로 간혹 군대 생활에서 낙오자가 되어 고달픈 인생이 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