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이서초등학교 35회 동기회
청도 이서초등학교 35회 동기회
  • 방종현 기자
  • 승인 2019.04.24 16: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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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야!" "경애야!" 어깨동무하는 동기생들

청도 이서초등학교는 1927 이서 보통 공립학교로 출범했다.

35회 졸업앨범(동창회 제공)
35회 졸업앨범(동창회 제공)
6학년 1반 졸업사진(동창회제공)
6학년 1반 졸업사진(동창회제공)

 

1996년 학명 통일로 이서 초등학교로 개칭되어 2018년까지 8,066명을 배출한 유서깊은 학교이기도 하다. 청도는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으며 인심이 좋아 3청의 고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에 이서는 삼한시대 '이서국' 이란 나라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던 곳으로 이 지역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이서 사람들은 결속력이 좋아 이서초등학교 동문 체육대회가 열리면 1,500여 명이 참가해 청도가 들썩일 정도다.

이서 초등학교 6회 졸업생인 박숙현 씨는 국회의원을 지냈고 15회 변정환 동문은 대구 한의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39회 이현동 동문은 국세청장을 지냈다35회(회장 이찬희)는 해방 20회로 1965200명이 졸업해 120여 명이 생존해 있으며 1967년 이병윤 씨를 주축으로 동기회를 구성해 현재 5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올해는 졸업 55주년을 기념하여 거제도에서 12일 동문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거제에서 갖인 동기회(동기회제공)
거제에서 가진 동기회(동기회제공)
이병윤.박경애.박광희.김순자.남연순(동기회제공)
이병윤.박경애.박광희.김순자.남연순(동기회제공)
이병윤.장정열.반순
이병윤.장정열.반순

 

동기회를 구성해 초대회장을 지낸 이병윤 씨의 회고담을 옮긴다. 이병윤 씨의 초등학생 때 이름은 이병태였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생존경쟁에 돌입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사회집단의 기초가 되는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세대는 동란을 거쳐 보릿고개를 겪었던 세대로 혹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찢어지게 가난해 육성회비도 납부할 형편이 안돼 수업시간에 쫓겨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미국 원조로 나온 옥수수 가루로 시루떡을 쪄서 담임선생님이 지켜 보는 가운데 나누어 먹었고, 분유를 끓여 한 컵씩 먹었는데 모두가 속이 허해 '우유 마시는 날'은 '설사하는 날'로 기억된다. 우리 중 형편이 괜찮은 친구가 오다마(사탕) 두 개를 사면 본인이 한 개를 먹고 나머지 한 개는 동네 친구 모두가 다 녹을 때까지 한 번씩 빨아먹었던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그 시절의 학생들은 '정' 이란 걸 알았는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하교 후 배가 고파 밀서리, 콩서리 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었다.

그 후 중·고, 대학을 거쳐 직장에서 각종 모임에 참석해 봤지만, 모임 자체가 정보교환 및 교류 위주의 경쟁 사회였으며 힘겨운 삶의 여정이었다. 나이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고 그때 그 시절 옥수수 떡, 오다마 사탕을 나누어 먹었던 친구들이 그리워 이서초등학교 제35회 동기 동창회를 구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0여 명의 동기중 140여 명의 연락부를 작성하고, 모교 운동장에서 발기 총회를 하게 됐다.

졸업후 첫 동기회
졸업후 첫 동기회

 

무엇보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동기 친구들이 그렇게 기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년 동창회에서 웃으며 반갑게 손 잡아주는 친구들의 허물 없는 우정이 소중하게 여겨지곤 한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적극적인 자세로 동기모임을 결성한 것이 참 잘한 몇 안되는 일들 중 하나로 손꼽게 된다.

 

수학여행 기념(동기회 제공)
수학여행 기념(동기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