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잔치 대신 복지관 500여 명 어르신 점심 대접한 육도영 씨
칠순잔치 대신 복지관 500여 명 어르신 점심 대접한 육도영 씨
  • 오금희 기자
  • 승인 2019.04.23 14: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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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칠순 맞아 복지관 어르신들께 따뜻한 점심대접
"돈 벌어서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쓰나요?”
자신의 칠순을 맞이하여 동구 팔공노인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어르신들께 점심 대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이 육도영(동구 신암5동) 씨
자신의 칠순을 맞이하여 동구 팔공노인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어르신들께 점심 대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이 육도영(동구 신암5동) 씨

 

“돈 벌어서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쓰나요?”

자신의 칠순을 맞이하여 거창한 가족모임대신 동구의 한 복지관에서 500여명 어르신들께 따뜻한 점심대접으로 보다 의미 있는 날을 보낸 사람이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육도영(동구 신암5동 ·남) 씨다. 육씨는 이달 15일(월) 팔공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친구, 지인들에게 점심 대접을 해 점심을 드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부러움을 샀다.

평생 한이 되었던 그 고백을 자신의 칠순에서야 내 부모님께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점심 대접을 하게 된 것이다.

대접한 점심 메뉴들
대접한 점심 메뉴들

슬하에 1남 2녀를 둔 육씨는 자식들이 자신의 칠순을 맞이하여 가까운 친지들을 모시고 특별한 칠순 잔치상을 차려주겠다는 것을 마다했다. 생신상도 마다한 육씨가 복지관에서 점심 대접을 하게 된 것은 다가오는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난에 찌들어 제대로 된 생신상 한 번 차려 드리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못다한 효를 이웃한 어르신들에게 점심 한 끼 대접을 통해 부모님을 향한 마음을 전하고자 이날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응어리를 풀어내듯 그는 이날 복지관 지하식당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아담한 크기의 '육동영 70세 잔치'라는 문구가 적인 현수막을 걸어놓고, 식당 입구서부터 점심시간에 맞추어 밥을 드시러 오시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했다.

영문도 모르고 식당을 찾아 식권을 내미는 어르신들에게 육씨는 '어르신, 오늘 식권은 내일 사용 하세요! 오늘은 제 칠순일이라 제가 오늘 점심을 대접합니다'라고 하자, 어르신들은 '아이고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나. 너무 고맙게 잘 먹겠네' 라고 화답을 하셨다.

이날 점심 메뉴는 곱슬곱슬한 하얀 이밥에 고추장돼지불고기과 맛살과 숙주를 조물조물 무친 숙주냉채, 거기에다 들깨가루에 황태를 듬뿍 찢어 넣어 진하게 끓인 미역국이었다.

육씨는 이날 행사 소감을 통해 '핵가족과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어른을 섬기는 효 사상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부모님의 정성과 바른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날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하찮은 점심 한 끼에 어르신들이 과분한 칭찬을 해 줘서 오히려 부끄럽다'며 웃었다.

점심 대접을 마치고 적십자사 신암5동 적십자 봉사회 회원들이 축하 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육씨는 칠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설 점심은 늘 도둑 점심 도시락을 먹어야했다. 

유년시절 너나할 것 없이 가난했지만 육씨의 가정환경도 비켜갈 수 없었다. 야속하리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옆 짝지가 자신의 도시락을 볼세라 도시락 뚜껑도 열지 못하고 남몰래 숨어서 먹어야했던 시절이었다. 늘 점심은 도둑 점심을 먹어야했던 지난날을 회상할 때 눈가에 촉촉히 이슬이 맺혔다.

도둑밥을 먹듯 점심을 먹고 나면 늘 가슴이 체한 듯 먹먹했다. 새까만 보리밥에 반찬은 무 장아찌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사치라 여길 운명의 폭풍이 몰아쳤다. 맏형이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칠남매와 부모님을 포함한 9명의 목숨줄을 담보하고 있던 몇 마지기 되지 않는 논마저 남의 손에 들어가면서 집안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육씨는 형을 대신해 어려운 가정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0년 공군부사관 48기 입대해 기술학교 특기 교육을 마쳤다. 그 후 1972년 공군사령부 81항공정비창 군무원으로 입사해 2004년도 퇴사했다. 군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육씨는 알뜰하게 돈을 모아 가정을 되살렸다.

촛불회 결성 18년간 맏형, 맏아들 노릇

육씨는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항공정비창 군무시절 야간대학교를 다니며 , 항공기 정비사 자격증과 전자기기 자격증도 취득했다. 군무원 시절 또래 군무원과 현역들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사회를 위해 어두운 곳을 밝히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1986년도 현역과 군무원 1백 명으로 구성된 ‘촛불회’라는 봉사회 단체를 결성했다. 

촛불회 결성 후 18년 동안 소년소녀가장과 홀몸 어르신 각각 네 가정과 결연을 맺고 년 2회 20만원씩 생활비를 지원했다. 당시 군무원들과 현역들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매월 회비 3천원씩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는데, 모두 흔쾌히 동참했다.

육씨는 군무원 퇴사 후에도 이웃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영남대학교병원에서 환우들 목욕봉사, 지역의 한 장애인 시설 목욕 봉사를 7년간 했으며 나이가 들면서 동구 새마을협의회와 대한적십자사 봉사원으로 등록해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육 씨의 지인과 친구들이 점심 대접을 받고 최고 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고 있다.
육 씨의 지인과 친구들이 점심 대접을 받고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고 있다.

이웃사랑 DNA 가족

오랜 시간 육씨의 봉사활동을 지켜본 아내와 자식들도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늦깎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한 아내는 자신의 장학금을 어려운 학우들에게 나누어주라며 학교에 후원하는가 하면, 장남은 대학시절부터 해외 의료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복지관 프로그램을 마치고 마침 점심을 먹으러 나온 육씨의 한 친구는 식당에서 육씨의 점심대접을 받고, 당신이 내 친구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자신도 육씨처럼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육 씨의 이웃 사랑은 무한 리필

한편 수년을 한동네에 살고 각종 봉사회 활동을 함께 하며 육씨의 모습을 지켜본 대한적십자사 신암5동 적십자봉사회 이다은 총무는 “육씨는 생긴 모습 그대로 우직한 황소처럼 사는 사람이다. 우람한 덩치만큼이나 어려운 이웃을 향한 사랑은 무한 리필이다”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의 모습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孝가 아닐까.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육 씨의 훈훈한 나눔을 보고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냈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진다.

이번 어버이날은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를 준비해 꼭 부모님을 찾아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