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의 봄
황매산의 봄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4.22 16: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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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대신 진달래가 반기는 황매산
철쭉은 다음 주에나...!
황매산에 뜬 하현달. 이원선 기자
황매산에 뜬 하현달. 이원선 기자

어슴푸레한 새벽산길을 오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늘 힘이 드는 여정이다. 그것은 높든 낮든 상관이 없다. 처음부터 차근하게 한발 한발 태산을 오르듯 올라야 한다. 무엇을 갈구하기보다는 늘 자신과의 싸움이다. 진정 위대한 사람은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훤하게 드러난 길을 오르는 눈앞으로 남에서 북으로 길게 누운 산등성이 위로 하현달이 그림같이 떠 있다. 미세먼지가 등쌀을 부려 새벽운동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폐부를 채우는 시원함에 까맣게 잊는다. 산을 오르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행복이다. 이것은 디스트레스(나쁜 스트레스)가 유스트레스(좋은 스트레스)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려운 공부를 마친 뒤 좋은 성적표를 받는 뭐 그런 기분이랄까?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진달래. 이원선 기자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진달래. 이원선 기자

427부터 512일까지 철쭉제가 있다는 소식에 황매산을 오르는 것이다. 황매산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있는 해발 1,108m의 산이다. 수년 전만해도 약 2시간 이상의 고된 산행 길이었지만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제는 20~30여 분이면 넉넉하게 오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남녀노소가 공히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열정의 여진사. 이원선 기자
열정의 여진사. 이원선 기자

부지런한 관광객 몇 명은 벌써 올라와 이곳저곳을 살피고 돌아보니 뒤를 이은 관광객들이 꼬리를 물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늘 빠른 것도 늦은 것도 없는가 보다. 12시에 온들 빠르다고 할 수 있을까? 태양이 중천에 오른 정오에 온다고 늦다 할까? 내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장소에 있는 것이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늦은 것일 것이다. 아예 텐트를 친 모습도 보인다. 2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목적지에 다다른다. 의외로 사람들이 적어 보인다.

다소곳하게 핀 진달래. 이원선 기자
다소곳하게 핀 진달래. 이원선 기자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보고자 했던 철쭉은 꽃봉오리를 굳게 다물어 아직 준비 중이다. 오늘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봉오리 안은 처녀총각들의 풋풋한 사랑처럼 부산한 요란을 떨 것이다. 그 요란함이 지쳐 미구에는 後園黃栗不蜂坼(후원황율불봉탁)처럼 부풀어 올라 굳이 벌이 날아다니지 않아도 절로 터질 것이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섭섭함이 있지만 진달래 무리들이 군락을 이루어 반겨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 화려한 모습을 직접 보려면 철쭉이 제 모습을 갖추어 홍수를 내듯 산비탈에 흐드러져 장관을 이루는 427일 이후라야 가능할 것 같다.

2017년 5월 7일 촬영한 황매산 철쭉. 이원선 기자
2017년 5월 7일 촬영한 황매산 철쭉. 이원선 기자

구름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보이자 진달래 이파리가 수정처럼 눈이 부시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철쭉을 잊는다. 꿩 대신 닭이라지만 마음이 가는대로 만족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관광인 것이다. 철쭉은 다음날에도 불이 난 듯 산봉우리마다 붉게 물들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