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4월의 햇볕이 오늘 따라 상쾌하다
[인문의 창] 4월의 햇볕이 오늘 따라 상쾌하다
  • 장기성 기자
  • 승인 2019.04.19 02: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나 명예을 얻고나면 너나없이 정치권 기웃,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
전문지식을 후학양성에 전력할 때 국가도 발전,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부러운 오늘의 세태
"햇볕을 가리지 않게 비켜주시오. 그늘이 지는구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황제에게 이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픽사베이
"햇볕을 가리지 않게 비켜주시오. 그늘이 지는구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황제에게 이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픽사베이

 

4월의 햇볕이 오늘따라 상쾌하다. 창밖은 따사롭다 못해 시끌벅적하다. 국회의원 선거 유세 덕분이다. 국회의원의 특권에는 어떤 것이 있기에 저렇게 목숨을 거는 걸까. 월 평균 급여 941만원이며 여기에 또 수당을 받는다. 전직 의원은 매달 퇴직금조로 120만원을 지원받으며, 기본급에 해당하는 일반수당도 월 520만원, 매월 지급되는 입법 활동비 180만원, 가계지원비 86만원, 관리업무수당 46만원, 상여금 정근수당 명절휴가비 연간 1144만원, 보좌관 6명 채용, KTX 및 국유 철도, 선박, 항공기 무료사용, 회기 중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불체포 특권 등이 있다. 전 세계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우리나라보다 더 누리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이탈리아 2개국에 불과하다. 그러니 국회의원 특권이 세계 3위이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부러워할 직업이다. 3위 될 만큼 일만 잘 하면 누가 말을 하겠는가.

최근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어떤 의원은 요즘 200개가 넘는 국회의원 특권과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12년 동안 이 특권들을 누려왔던 그는 버스를 기다리고 공항에서 줄을 서보고 나서 ‘특권을 포기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금단현상을 솔직히 털어 놓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OECD국가들과 다르게, 평생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놓은 지식과 경험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즈음이면, 그때부터 곁눈질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학문 발전과 후학을 양성하기보다는 권력 쪽으로 기웃거린다는 것이다. 어쩌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게 되면 어제의 본업이었던 자신의 전공분야와는 담을 쌓고, 정치권 초년생으로 정당의 거수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걸 자주 본다. 물론 이러한 처신도 나름 삶의 한 방편이라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식인들이 이런 쪽으로 고개를 내민다면, 자신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부담이요, 손실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명예와 권위를 갈음하던 판, 검사며, 대학교수, 의사는 물론이고, 일정한 부나 명예를 얻고 나면 너나없이 정치권을 기웃거린다. 특히 폴리페서(polifessor)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들은 교수직을 유지한 채 정치에 참여하여 활동하느라 강의와 연구라는 본래의 업무를 저버리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성과가 없으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닦고 버젓이 교수직을 수행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런 교수의 경우 기회만 있으면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으로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다. 물론 모두는 아닐 것이다. 물론 아니어야 한다.

또 작금에는 자신의 전문분야와는 별 상관없는 부처에 장관으로 지명 받았을 때 ‘내 소임과는 거리가 있어 거절하겠소.’ ‘장관은 할 사람이 많지만, 지금하고 있는 이 일은 나 이외 할 사람이 없으니 거절하겠소.’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 같다. 딱 몇 사람이 기억나긴 한다. 어느 한 분이 총리후보로 거명되었을 때, ‘집사람이 아픈데 돌봐줄 사람은 나뿐이 없소. 총리 제의를 받더라도 집사람을 돌봐주는 게 우선이며, 총리야 나 말고도 할 분이 많지 않는가.’라고 말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평생 교수직을 천직으로 알고, 굴절된 정치권을 향해 글로 매섭게 비판하며 올바른 법치와 원칙의 방향성을 제시하곤 하던 그가, 어느 날 국회의원이 되더니 오직 자신의 보신이나 당파의 이익에만 매몰된 모습은 안쓰럽고 서글픈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럼 누가 정치권을 질타하고 올바른 법치와 정의를 지켜내도록 감독할 것인가?

무릇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쌓고 넓혀서, 훌륭한 후학들을 길러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국가적으로도 균형 잡힌 건실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도 짐을 한쪽으로 많이 실으면 급기야 전복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앞의 예들을 조선시대에 빗댈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평생 60개의 벼슬을 제수 받으며, 중종부터 인종 명종 선조까지 네 임금을 섬겼지만 79차례 벼슬을 사양하고 끝내 학문의 길을 걷고자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선비는 첫째도 학문이요 둘째도 학문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그래야 나라님도 선비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1569년(선조 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번번이 환고향(還故鄕)을 간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퇴계가 역책(易簀: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하자, 선조는 3일간 정사를 폐하여 애도하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 겸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영사를 추증하였다.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라고 설파했다. 선비란 요즈음 말로는 학자와 궤를 같이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학자적 지조나 소신이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는 것은 왤까? 기원 전 338년 케로네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 지도자들은 코린트에서 모임을 갖고 알렉산더를 페르시아 출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정치가, 학자, 예술가들이 찾아와 아첨성 인사와 충성을 맹세했다.

코린트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해주는 길목에 있었던 관계로 전술적인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솜씨 좋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한 역사가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세계의 정신적인 중심지’였다. 코린트의 시키온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견유학파(cynics)였던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외물의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최상의 행복으로 여겼으며, 금욕적 생활을 스스로 자처하였다. 따라서 디오게네스는 되는 대로 아무것이나 먹으며 아무데서나 잠을 잤다. 심지어 그는 키벨레 신전에서 통(항아리)을 하나 얻어, 그곳에서 기거했다.

그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 정치인을 포함하여 - 조롱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까지도 그에게는 대수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렇듯 그는 온갖 허식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알렉산더는 이런 디오게네스가 시키온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온갖 권력자, 학자, 예술가들이 앞 다투어 알렉산더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기 때문에, 그도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몸이 단 것은, 오히려 알렉산더였다. 알렉산더가 직접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알렉산더의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본 디오게네스는 단지 통속에서 몸을 약간 비스듬히 일으켰을 뿐이다. 디오게네스가 먼저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이네”

“그런 후에 또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이지”

“그 다음은 또 무엇입니까?”

“아마 온 세상을 정복하고 싶겠지”

“온 세상을 모두 정복한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 다음엔 좀 쉬면서 즐겨야겠지”

“그럼, 참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황제가 이번에는 다시 디오게네스에게 진중하게 물었다. 평소처럼 근엄한 황제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 면모를 보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말이다.

 

“디오게네스, 당신 앞에 서 있는 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시오.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소.무엇이든 말하시오.”

 

“햇볕을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주시오. 당신 때문에 그늘이 지는구려.” 철학자는 이렇

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돌아오는 길에 알렉산더는 수행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나 장관의 권력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자기다움의 내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하지만 얄팍한 권력과 권세에 사다리를 놓아서,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어 주체적 영혼도 없이, 어설프게 권력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지조니 신의를 초개(草芥)같이 버렸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이 만약에 장관직을 수행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끔찍한 상상이다. 4월의 햇볕이 오늘따라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