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욕, 뉴욕...I♥NY(1)
뉴욕, 뉴욕, 뉴욕...I♥NY(1)
  • 전용희 기자
  • 승인 2024.09.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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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도시
- 마천루가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콘크리트 정글
-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
- 9.11 테러 역사의 현장 그라운드 제로
-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전망대에서
- 뉴욕 마천루를 내려다 본다

뉴욕 이야기

▶I♥NY

세계 최고 도시인 뉴욕은 ‘I♥NY’으로 잘 알려진 슬로건이 있다. 하트(♥)는 이전까지 사랑(love) 기호로 쓰지 않았지만 1977년 밀턴 글레이저가 뉴욕 슬로건에 사용하면서 사용됐고 뉴욕을 상징하게 됐다고 한다. 1970년대 경기 침체로 파산 지경에 있던 뉴욕이 돌파구로 만들어낸 일종의 지역 마케팅 광고 로고이다. 뉴욕시는 이 로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내려놓고 누구나 원하는 상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티셔츠, 배지, 컵 등 다양한 문화 상품에 로고가 새겨져 판매되었고 뉴욕시에 중요한 수익을 주는 소스가 됐다. 아울러 뉴욕이 패션과 디자인 감각의 도시로 자리매김 하는데 도왔다. 2001년 9.11 테러 후 뉴욕 사랑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했다.

'아리 러브 뉴욕 모어 댄 에버(I♥NY More Than Ever)'

 

▶왜 뉴욕인가

뉴욕은 한때 네덜란드 식민지로, 당시 이름은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다. 당시 뉴암스테르담의 총독 피터 스토이베산트(Peter Stuyvesant)는 부하들로부터 신망을 잃고 있었다. 1664년, 영국은 군함 1척을 보냈다. 네델란드 군대는 영국 함대와의 싸움을 거부하고 총독은 항복을 한다. 그해 9월 영국 함대가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영국 왕의 동생 요크공(Duke of York, 후에 제임스 2세 국왕)의 이름을 따서 뉴욕(New York)이라고 개칭했다. 이렇게 뉴욕이라는 도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됐다. 

뉴욕은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섬 등 5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뉴욕속으로(1)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상징이라는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마천루가 한 눈에 보이는 리버티 섬에 있다. 이 섬은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 강 입구에 있다. 이민 초기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으며, 배를 타고 멀리 떠나온 이민자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안도했다 한다.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전용희기자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전용희기자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이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설계하고,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이 내부 구조를 설계했다. 오른 손에 들고 있는 횃불까지 지면에서 93.5 미터의 높이로 횃불은 자유를 상징한다. 왼 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어 독립을 상징한다. 원래 구리 빛이었으나 바닷 바람에 녹이 슬어 바깥은 녹색으로 변했다. 내부는 여전히 구리 빛 갈색으로 남아 있다. 

불현듯 30여 년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4개 월된 막내를 왼쪽 팔에 앉고 좁고 가파른 여신상 내부 계단을 이용해 머리부분에 있는 왕관까지 올라 갔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된 후, 200여 개의 부품으로 분해되어 미국으로 운송되었다. 무게가 200톤이 넘는 이 부품들은 뉴욕에 도착한 후, 설치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창고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당시 자금 부족으로 인해 받침대 건설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부품들은 한동안 창고에 보관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이 어느 신문 지면을 통해 알려지고, 미국 국민들의 기부로 자금이 모아져 받침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중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완성된 상징적 작품임을 보여준다.

 

▶허드슨 강 페리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맨해튼 선착장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허드슨 강을 따라 리버티 섬으로 향했다.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가니 자유의 여신상이 크게 보였다. 페리를 타고 가는 중간에 뉴욕의 마천루가 위용을 보여주었다. 

허드슨강 페리에서 뉴욕의 마천루를 보고 있다. 전용희기자
허드슨강 페리에서 뉴욕의 마천루를 보고 있다. 전용희기자

왼쪽편에 있는 제일 높은 건물이 9.11 테러 현장 가까이 세워진 104층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이다. 현재 세계에서 6번 째로 높은 건물이다. 

 

▶9.11 테러 역사의 현장,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원래 폭발이 일어난 지점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특히, 핵무기나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 지점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데, 뉴욕에서는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로 인해 붕괴된 세계 무역 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른다. 이곳은 현재 9.11 메모리얼 박물관이 위치해 있으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9.11 테러로 인해 약 3천 명이 사망했다. 이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세계 무역 센터와 그 주변에서, 200여 명은 납치된 항공기에서, 그리고 100여 명은 펜타곤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테러 공격으로 기록됐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두 개의 분수 풀이 있고, 큰 구멍과 폭포가 만들어져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테러로 흘린 유가족과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하며, 폭포의 이름은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고 불린다.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분수 주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방문객들이 그들을 추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희생자의 생일에는 이름 위에 꽃을 꽂는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몇 송이의 꽃을 볼 수 있었다.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부재의 반추' 분수. 전용희기자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부재의 반추' 분수. 전용희기자

 

▶오큘러스

눈물이 흐르는 검은 폭포 옆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을 형상화하는 하얀 새가 앉아 있다. 2016년에 완공된 새 모양의 건축물은 '오큘러스(Oculus)'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교통 허브이자 쇼핑몰이다.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재건과 희망, 자유를 상징한다.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부지에서 뉴욕 시민들과 세계가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무역센터 교통 허브로서 뉴욕 지하철과 뉴저지로 이어지는 패스 열차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시설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있는 새 형상의 조각. 전용희기자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있는 새 형상의 조각 오큘러스. 전용희기자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전망대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의 '원(One)'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9.11 테러로 파괴된 쌍둥이 빌딩 중 하나의 자리에 세워졌기 때문에 '첫 번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원'은 단결과 회복의 상징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테러의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한 희망과 단결을 상징한다.

이 근처에는 애플 뉴욕 스토어를 비롯해 온갖 럭셔리 매장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상업 공간 중 하나다. 하지만 추모를 위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분리될 수 없듯 애도와 일상도 나누어질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9.11을 겪은 뉴욕은 그 당연한 진리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뉴욕 최고층 전망대가 있는 원월드트레이드 센터. 전용희기자
뉴욕 최고층 전망대가 있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전용희기자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전망대 입장을 위해서는 엄격한 보안 검색을 통과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100층~102층)에 도착하니 뉴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을 잠깐 보여주었다. 커튼이 올라가고 전망대 밖으로 나가 뉴욕 시내에 하늘 높이 펼쳐져 있는 마천루를 내려다 보았다. 그야말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콘코리트 정글이 내 발 아래에 놓여 있었다.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내려다보는 뉴욕의 마천루는 마치 거대한 현대 예술 작품처럼 도시의 힘과 열정을 담고 있었다. 끝없이 뻗어나간 빌딩들은 콘크리트 숲을 이루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들은 햇빛에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의 녹색 공간이 도심 속의 작은 오아시스처럼 평화롭게 자리하고, 수없이 뻗은 도로 위를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들과 사람들의 행렬이 도시의 끊임없는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하늘 아래 펼쳐진 이 거대한 도시 풍경은 뉴욕이 가진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백만의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숫자 102의 의미

뉴욕에 고층 건물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맨해튼의 지반이 매우 튼튼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화강암 지반은 고층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에 적합하여, 안정적인 기초를 제공해준다. 또한, 뉴욕은 경제적, 인구적 중심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제한된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고층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층 건물이 있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브루클린 다리 방향으로 바라보는 모습. 전용희기자
전망대에서 브루클린 다리 방향으로 바라보는 모습. 전용희기자

1620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최초의 이민자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록에 도착한 청교도들로, 그 수가 102명이었다. 이들은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라고 불리며, 플리머스 식민지를 세웠고, 이는 미국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이 숫자는 이후 여러 역사적 사건과 우연히 일치하게 되었는데,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한 첫 한인 이민자들도 102명이었다. 이와 같은 숫자 일치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흔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102층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초기 이민자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둘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두 숫자가 우연히 일치할 뿐, 역사적으로나 설계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에 완공된 초고층 빌딩으로, 뉴욕의 상징 중 하나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지어졌으며, 102층은 그 건물의 관측대(전망대)가 위치한 층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층수는 주로 건축적, 상업적 목적에 따라 결정된 것이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해서 설계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층수와 이민자 수는 단순한 숫자의 우연한 일치로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뉴욕 북쪽 방향 업타운을 바라본 모습. 전용희기자
전망대에서 뉴욕 북쪽 방향 업타운을 바라본 모습. 전용희기자

▶허드슨 강

허드슨 강은 미국 이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허드슨 강은 뉴욕 항구와 연결되어 있어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미국에 도착하는 주요 경로 중 하나였다. 이민자들은 허드슨 강을 통해 내륙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또한, 허드슨 강 주변의 풍부한 자원과 교통 인프라는 뉴욕의 경제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망대에서 허드슨 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국이 있는 엘리스섬을 바라보는 모습. 전용희기자
전망대에서 허드슨 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국이 있는 엘리스 섬을 바라본 모습. 전용희기자

자유의 여신상 오른 쪽에 보이는 엘리스 섬은 이민국이 있던 장소였다. 1892년 이민국이 설치된 이래로 1,200만 명이 이민 자격증을 얻었으며, 미국인의 40% 정도가 엘리스 섬으로 들어온 이민자의 후손이라 전해진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항해를 거쳐 도착한 1등석과 2등석 승객 대부분은 배 위에서 그저 간단한 검사만으로 입국 심사가 끝났다는 점이다. 대신 까다로운 심사 과정인 건강 진단과 법적인 조사를 받는 것은 주로 3등석 승객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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