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면 앞에서 사진을 위해 서 있는 긴 줄 보고 다시 놀라.
비극적인 장소가 예술의 장이 되었다가 이젠 패러디의 장으로.
부지런한 새가 먹이 찾듯 새벽 일찍 일어나 숙소 가까이에 있는 ‘티어 가르텐’으로 향한다. 지난밤 ‘포르쉐 심포지엄’을 하느라 밤늦도록 로비홀에서 목청껏 소란 떨던 독일 아저씨들도 아직 달콤한 아침잠을 즐기는지 로비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숙소 앞 작은 도로 옆의 쪽문을 향해 들어가니 놀랍게도 도심 한가운데 아침 안개 속에 푸르고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도심 속의 거대한 정원 ‘티어 가르텐’이다. 베를린은 도시 면적의 약 18%가 녹지라고 한다. ‘티어 가르텐’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사냥터였다가 1839년에 시민들을 위해 광대한 공원이 되었다. 녹지대는 물론 동물원, 분수, 연못, 호수, 운하, 카페 등이 있다. 새벽 공기는 달고, 일찍 잠에서 깨어난 토끼들이 그들 앞에 나타난 침입자들을 빤히 쳐다보며 재빠르게 지나간다. 목청 높은 새들도 인기척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천국에서 아침 루틴을 즐긴다. 이따금 조깅하는 사람이 지나가고 작은 연못에 비친 새벽 숲의 풍광은 몽환적이다. 구글 지도를 들고 방향을 잡아 동물원역 앞에서 200번 버스를 탄다.
시내 웬만한 관광지는 동물원역 앞에서 100번과 200번 버스 1회권으로 한 바퀴 돌아보면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주말 아침, 텅빈 거리에 내리니 벼락을 맞은 듯 검게 그을리고 부서져 내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가 서 있다. 1895년 독일의 첫 번째 황제인 ‘빌헬름 1세’를 위해 그의 아들 ‘빌헬름 2세’가 지었던 교회다. 2차대전 당시 공습으로 부서진 교회 옆에 푸른색 유리 수만 개를 이용해 현대적인 새 교회를 지었다. 시민들은 철거나 재건축 대신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파괴된 신전 옆에 새 건물을 지은 것이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건물은,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향한 그들의 소망처럼 보인다.
길 건너 개성 넘친다는 쇼핑몰 ‘비키니 베를린’도 보이고 베를린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도 지척이다. 아직 오픈 시간 전이라 다행이다. 때론 갈등보다 포기가 훨씬 심플한 법이니까
프로이센 승리의 상징 ‘승전기념탑’은 ‘티어 가르텐’을 가로지르면서 뻗은, 대로 한복판에 세워진 탑으로 높이가 67m다. 프로이센 제국이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웠다.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독일 통일전쟁 승전을 기념하는 탑이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 자주 보게 되는 꼭대기의 황금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이며, 지나간 시절에 대한 독일인들 자긍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분단 독일의 검문소였던 ‘체크 포인트 찰리’.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이나 동독 지역으로 넘어가는 검문소는 여러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외국인이 도보로 통과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검문소였다. 냉전 당시 유럽 최전방이었던 두 독일의 유일한 공공 소통망이었으며, 이곳에서 군사적 대치나 사건이 3차대전까지도 갈 수 있는 첨예한 지역이었다. 1961년에는 미국 외교관의 월경을 문제 삼아 소련 육군과 미군이 전차를 몰고 와서 대치하던 곳이기도 하다. 다행히 막후 협상을 통해 사태가 해결되었지만, 베를린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 검문소로 유명하다. 길 옆으로는 박물관이 있어, 분단 시절 동독 주민들의 탈출과 관련된 애환과 전시를 볼 수 있다.
베를린을 상징하는 그림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운치 있는 붉은색 다리가 있다. ‘오버바움 다리’다. 슈프레강을 가로지르는 2층으로 된 다리에는 두 개의 붉은 탑이 있고 위층으로는 지하철 U반이 다니고 아래층으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다닌다. 1896년 개통된 다리는 2차 대전 때 소련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나치가 폭파했다. 냉전 시대에는 동서독을 가르는 검문소 역할을 하는 분단의 상징이었으나, 통일 후 1994년에 다시 개통했다. 멀리서 다리의 아치 사이로 노란색 지하철이 지나는 모습을 바라보면 레고랜드에 온 듯하다. 그러나 노란 지하철이 아치 사이로 지나가길 기다려 찍은 사진이 엽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서 내가 찍은 ‘오버바움 다리’ 사진의 주인공은 구름이었다.
이제 ‘오버바움 다리’ 위로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슈프레 강 위를 지나가는 유람선이 보이고, 멀리 우주선 기지처럼 보이는 ‘TV 송신탑’도 보인다. 풍경을 뒤로 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면 강변을 두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나타난다. 벽화가 그려진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다. 길이가 약 1.3km에 이르는 이 장벽은 세계 각국 미술가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그려 넣은 각양각색의 개성으로 가득한 미술관이 되었다.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그라피티, 방문자들의 낙서까지 살아 숨 쉬는 문화의 현장이다.
괴테, 실러, 아인슈타인의 초상부터 ‘뤽 배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의 아이콘 ‘장 르노’, 막 피어나는 봄꽃처럼 풋풋한 시절의 ‘줄리엣 비노쉬’,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 세상 곳곳의 기막힌 캐릭터들과 한 끗 장면들.... 각자가 독특하게 그려놓은 작품 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 작품은 역시 ‘형제의 키스’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서기장 ‘호네커’가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이다. “하느님 제가 이 치명적인 사랑 가운데서 살아남도록 도와주세요”라 적힌 문구 앞. 바로 그 장면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긴 줄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 한 번의 기회니까 나도 얼른 줄을 선다. 이런 게 설마 인생 샷은 아니겠지만 기회쟁취 샷 정도는 되려나. 비극적인 장소가 예술의 장이 되었다가, 이제는 패러디의 장소가 되었다. 발랄한 젊은 친구들 뇌의 오염지수는 매우 높음임을 실감한다.
박물관이 많아 박물관 섬이라 부르는 슈프레섬을 감싸고 흐르는 슈프레강 동쪽에는 이동 인구가 가장 많은 ‘알렉산더 광장’이 있다. 베를린 동쪽의 중심 광장이자 수많은 버스와 지하철이 지나가는 교통 요지다. 이 광장에 베를린에서 어딜 가나 보이는 최고층 건물 ‘TV 타워’가 있다. 368m 높이의 방송 송수신용 타워로 베를린은 물론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1969년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에서도 보이도록 높고 멋진 방송 송신탑을 지었다. 사회주의 건물을 과시하기 위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모델로 했다. 탑 아래 둥근 부분 아래층에 전망대가 있어 돌아가며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곳곳에는 도시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서 300m 아래 도심을 내려다보면 앞에 놓인 모형과 비례가 꼭 같다.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된 느낌. 재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어서 입장 전에 반드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TV 타워’에서 내려오면 넓은 광장에 빨간 벽돌에 붉은색 지붕의 ‘성모마리아교회’가 보인다. 오래전 한국에서 자주 보이던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넓은 광장에서 한눈에 들어와 이정표 역할도 하는 베를린의 가장 오래된 개신교회다.
빨간 벽돌로 지어져 ‘붉은 시청’이라 부르는 베를린 시청사도 눈에 띈다. 2차대전 중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어 냉전 시절 동베를린의 시청사로 쓰였다. 지금은 통일 독일의 시청사로 쓰이고 있으며, 평일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늘 개방되어 있다. 이제 지나간 시간은 페이지가 넘어갔다. 시청사 중앙의 시계탑 꼭대기에는 베를린시의 상징인 곰이 그려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포세이돈 분수가 거리에 정취를 더한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배낭이나 가방을 메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아이를 달래고.... 이 순간 스마트폰에 잡히는 ‘알렉산더 광장’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