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혀에 관한 우화가 있다. 어느 날 왕이 광대 두 명을 불렀다. 한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고 지시하고, 다른 광대에게는“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세상 곳곳을 돌아다닌 두 광대가 몇 년 후 왕 앞에 나타나 찾은 것을 내놓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제시한 것은 모두 ‘혀’였다고 한다.
광화문 네거리엔 오늘도 수많은 단체가 피켓을 들고 자기들만 옳다고 고함을 질러댄다. 국회의사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격 모독의 막말이나 정제되지 않은 말 폭탄이 예사로 쏟아진다. 지성인들이 모인 신성한 국회에서 명예 훼손과 인신공격으로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상임위원회가 난장판이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만 지른다. 내 편 말은 다 맞고 상대편 말은 다 틀린다. 걸핏하면 특검에 고발장 들고 검찰을 향하는 정치꾼들의 모습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말에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했다. 카톡으로 떠도는 이야기로 사람이 화가 나면 수렵시대엔 돌을 던졌고, 고대 로마 시대엔 칼을 들었으며, 미국 개척 시대엔 총을 뽑았지만 오늘날엔 '말 폭탄'을 던진다고 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글이 종이에 쓰는 언어라면 말은 허공에 쓰는 언어다. 허공에 적은 말은 지울 수도, 찢을 수도 없다. 논어에서도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최고 덕목으로 하여 말이 사람의 품격을 측정하는 잣대라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할 말과 못 할 말이 있다. 기분 좋은 말, 가슴 아픈 말, 칼보다 더 무서운 말도 있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처럼 우리가 쓰는 말로 천재도, 바보도 될 수 있고, 성공, 실패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사랑 또는 이별도 되고, 좋은 인연 또는 악연도 될 수 있다. 이제는 말뿐 아니라 온라인의 공간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댓글이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하지만, 익명이란 가려진 얼굴 뒤에 숨어서 더 쉽게 상처를 주거나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기도 하며 해를 끼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사고의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자신에 유리한 정보만 끌어들인다. 내 생각은 고정시켜 두고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만을 바라면서,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바뀌기를 바라는 한 우리는 ‘꼰대’일 수밖에 없다. 세상과 삶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와 현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기에 실수도, 잘못도, 싫은 말도 할 수 있다. 또 한 생각하는 동물이고 이성이 있기에 언제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을 다스릴 수 있고 참기 힘들어도, 화가 나도, 말하기 전에 상대편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신이 소중한 것처럼 남도 소중함을 명심하자. 어른의 품위는 말에서부터 나온다. 우리말에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이해와 관용이 담긴 참으로 좋은 말이다. 고운말, 아름다운 말을 쓰면서 서로 좋은 인연으로 어른답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