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을 찾았다. 태종무열왕릉(사적)과 서악동 고분군(사적)이 있는 경주 선도산 남쪽 능선 아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앞쪽에 태열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무덤이, 뒷편에 통일신라 후기 대각간을 지낸 김양의 무덤이 있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형태로 봉분의 크기는 왕릉보다 약간 작은 규모이다. 통일신라 귀족의 무덤중에서 주인이 알려져 있는 많지 않은 무덤 중 하나이다. 김인문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웠던 거북받침돌(보물)이 남아 있다.
김인문(629~694)은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이다. 젊은 시절부터 당나라에서 머물렀으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략할 때 참전했다. 삼국통일 후 나당 전쟁시 당나라에 신라왕으로 옹립하려 했던 인물이다. 당나라 장안에서 죽은 후 시신을 운구하여 현재의 위치에 안장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웠던 비석은 거북받침돌만 무덤 앞에 남아 있고, 글자가 새겨진 비석의 일부는 인근 서악서원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세상을 떠난 김인문의 나이는 66세였으며, 부음을 듣고 황제가 매우 슬퍼하며, 수의를 주고 관등을 더하였다.
김양(805~857)은 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잇게 하였으며, 문성왕을 받들었다. 장보고와 함께 신무왕의 정변을 주도한 인물로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무열왕릉 옆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 문성왕릉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김양은 무열왕의 9세손으로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에 공헌하였다. 신무왕이 된 김우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잇게 하였고, 다음 왕인 문성왕도 받들었다. 그 후 헌안왕 때 김양이 세상을 떠나자 대각간을 추증하고 무열왕릉 곁에 장사 지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