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인 듯 덩달아 일어서서는 엉덩이를 실룩거려 덩실덩실 춤사위다
진양조에서 중모리, 자진모리, 중중모리, 휘모리장단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남사당패 시절이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객지 생활은 기본으로 남녀혼숙이 때때로 심심찮은 만큼 상차림도 거지반 함께다. 그날도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끼리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 수저 놀리는 소리가 부산한데 문득 여자들 쪽에서 작은 동요다. 내용인즉 나이 어린 처녀 단원 한 명이 임신을 한 모양이었다. 아비가 누구냐 물어도 묵묵부답, 낳을 거냐고 물어도 유구무언이다. 그럼 어떡할 거냐며 장래 계획을 물어도 고개를 숙여 입만 앙다문다.
“그럼 어떤 놈의 씨인지도 몰라? 칠칠치 못한 년!” 그녀만 화냥년 취급에 아비가 자식을 부정한다. 그러니 어쩌겠나 앞날이 망망한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약을 먹었다. 사타구니에서 발목까지 벌겋게 적시는 피를 본 할미가 그저 애달고 안타까워 눈물 바람이다.
“내 그만치 알아듣도록 일렀건만 기어이! 이 일을 어째!, 이런 이~ 천하에 독한 년!” 기막힌 한마디에 세숫대야 한가득 널브러진 옷가지가 피범벅으로 시뻘겋게 흉물스럽다. 그 모습에 한껏 비위가 상한 덕배는 심한 욕지기가 일어 입부터 틀어막았다. 차마 못 볼 걸 본 듯 외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것이 세상 빛을 못 보고 죽어간 아긴가 싶어 온몸으로 치를 떨었다. 그보다는 훗날의 내 아기도 저 꼴인가 싶고 방탕한 생활의 미래를 미리 보는 거울인가 싶어 현기증 인다. 그 일로 그 여인은 근 일주일간이나 앓아눕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시뻘건 핏물을 하혈로 울기를 이틀 밤낮, 반 실성기를 보였다고 했다. 한데 그 모습이 당장에 복녀와 암암리 겹쳐지고 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로 남았으면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일을 쉬쉬 감추려고만 들까 싶어 눈앞이 흐리다. 주모의 ‘인자부터 네 놈의 핏덩이 새끼는 네놈 하기에 따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이란 말이여’란 말이 비수로 가슴에 깊숙이 꽂힌다.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하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이마를 섬돌에 찧고 꿇어 엎드려 아기만은 안된다고, 제발 목숨만은 붙여 살려달라고, 잘못했노라고 두 손 ‘싹싹’ 빌지 못하는 자신이 한스러워 저주스러울 뿐이다.
애가 달아 속만 까맣게 바라보는데 한참을 아낙들로 둘러싸여 이야기를 주고받던 복녀가 고개를 떨궈 수줍게 일어난다. 희멀겋게 숙맥처럼 입으로 말을 물어 우물거리는 덕배는 그저 고마웠다. 그새 구성원의 일원으로 인정하여 기분을 풀어주려는 심산에서 노래를 청한 모양이다. 게다가 원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구동성으로 부추인 모양이다. 앉은 자리에서 너나없이 손뼉 장단에 흥을 돋운다.
“얼씨구나 좋다” 추임새를 시작으로 선녀가 춤을 추는 듯 치맛자락을 훨훨, 소맷자락 끝동을 하늘하늘 허공으로 내저으며 구성지게 한 곡조다.
“삼산은 반락 청천외요, 이수중분으 백로주로구나/ 저기 뗬는 저 구름은 무슨 비바람을 품었든고” 육자배기의 옥음이 너른 대청이 비좁다며 굴러다닌다. 옥구슬이 되어 알알이 날아다니고 있다. 모두가 입을 헤~ 벌려 경청 중에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복녀가 치마폭을 사려 살포시 자리한다. 노래에 취해 재창을 잊어버려 아쉬운데 후렴처럼 제각각 맞장구다.
“한데 말이야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해! 우리가 언제 어디로 가서 숨이 넘어가는 듯 이리도 곱고 멋진 노랫가락을 들어볼거나! 이것도 덕배 처를 만난 복이라면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여!”
“암만 맞고 말고, 그렇고말고! 우리가 뭔 돈이 많고, 시간이 남아돌아 명치좌(明治座:명동 국립극장) 구경을 일삼아 가고, 가설극장을 가서 사당패의 흥을 마음 놓고 즐겨보겠는가?”
“게다가 농사철이면 또 얼마나 행운이여! 모심기에, 나락 베기로 허리가 끊어질 듯 자지러질 때면 청하지도 않았건만 덕배가 앞소리를 매기는 통에 아픈 허리를 살살 달래가며 살만 하잖는가! 한결 수월 찮는가?!” 한마디씩인데
인정에 감동인 듯 나부죽이 앉았던 복녀가 다시금 살포시 일어선다. 그 모습에 입안으로 은은하게 감도는 음률을 되새김질로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박수다. 옆으로 앉았던 꺽쇠 어미가 이것은 내 공이라며 생색인 듯 덩달아 일어서서는 엉덩이를 실룩거려 덩실덩실 춤사위다.
“허~허란 만수~ 하라 대신이여~ 성주구나! 성주여~ 성주 근본이~” 성주 타령에 이어
“아니~ 아니~ 노지는 못허리라! 서산에 해 기울고 황혼이 짙었는데! ~” 창부타령을 절창으로 복녀가 목소리를 소프라노 톤으로 높일 때다. 감정이 복받쳐 그랬을까? 응어리진 가슴에서 한을 토하느라 그랬을까? 덕배에게 맞고 산 세월에 설움이 복받쳤을까? 믿었던 양아버지에 대한 인륜을 배신한 원한이 가슴 가득 솟구쳤을까? 문득 옥음이 흐트러진다는 느낌이다. 울분과 설움이 뒤죽박죽으로 박자를 뛰어넘고선 꺼이꺼이 목이 잠겨간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흠을 잡아 따져가며 나서는 이가 없어 상관이 없단다. 인정사정없는 남사당패 시절이라면 회초리 바람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날 일이다. 어두컴컴한 창고에 갇혀 삼일은 족히 굶어야 할 대죄다. 스스로 감정을 다독여 바로잡는데 오히려 즐겁단다. 틀에 박힌 리듬과 멜로디보다는 인간미가 있어 정겨워서 좋단다. 덩실덩실 어깨춤에 ‘얼씨구 좋다’란 추임새가 아낌없다.
그때까지 주야장천 밥상머리만 지키고 앉았던 덕배가 무슨 생각에선지 산송장이 일어나는 듯 자리를 박찬다. 대청이 비좁다며 맹렬하게 춤사위다. 온몸으로 깃든 울화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구경꾼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의 눈이 어지럽다. 곁눈으로 힐끔거려 덕배를 바라보는 복녀도 절로 흥이 올라 목소리를 한층 드높인다.
덕배는 남사당패 시절인 지난날 벗꾸춤[농악에서, 버꾸재비들이 버꾸(주로 농악에 쓰는, 자루가 달린 작은 북)를 치면서 추는 춤]의 대가였다. 꽹과리도 치고, 징도 울렸지만 아무래도 버꾸가 체질에 맞는다며 절로 신명이 일 때면 사방을 돌아서 눈이 어지러웠다. 상모가 정수리에서 빙글빙글, 버꾸재비로 공중제비를 넘어 자반을 뒤집을 때면 우레와 같은 박수는 필수다. 한데 그간의 몸에 익은 재주를 숨기고 체질에도 맞지 않은 농사일에 매달렸으니 온몸으로 살이 낀 듯 근질거려 어찌 살았나 싶다. 넓은 대청마루가 비좁다고 흥에 겨운 덕배의 팽이 같은 몸짓을 보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나! 복녀도 덩달아 우울했던 기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기분이다. 어쩌면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복녀다. 10곡은 내쳐 부르고 싶은데 분위기상 냉정하게 끊어야 하는 아쉬움에 앉기를 주저다. 하여튼 부부의 짧은 공연이 끝나자 엄지를 세우는 중에도 대청마루 가득 아리랑 가락이 어물쩍 고개 고개를 넘어가듯 제풀에 겨워 흥건하다. 한창 흥이 오른 노래방에서 제수씨가 아주버니를 재촉하는 듯 정신없다.
“아주버님! 아주버님은 무슨 대가리든 우야든지 대가리만 꺼내이소 조지기는 저가 알아서 확실하게 조저불랑께요!” 처럼 노래 대가리가 줄줄이 사탕이다. ‘목포의 눈물에’ 이어,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 내리는 고모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울고 넘는 박달재’ 다. 한 번이 두 번이고 두 번이 세 번이 된다고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이가 없다. 그저 목청껏 즐길 따름이다.
산조도 아니건만 진양조에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구렁이가 담을 너머가 듯 박수 장단에, 젓가락 장단에 리듬을 실어서 목이 터지게 언성을 높인다. 멀리서 듣는 사람들조차 어깨춤이 더~덩실 일도록 구성지게 하모니를 이루어 감미롭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서산으로 기우는 저녁해가 어둑-살을 슬금슬금 몰아서 때를 헤아려서 재촉이다. 잔치를 작파하라며 등 떠민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 흥이 넘쳐나던 놀이판이 갑자기 부산하다. 복녀도 가만히 있을 처지가 아닌지라 설거지라도 돕겠다고 나섰건만 그 몸에 힘에 겨운 일은 어림없다며 한사코 만류다.
“아~ 이 사람아! 불한당 같은 자네 서방, 덕배에게 어디 경을 칠 있는가? 자네는 고만 저기로 비켜나서 쉬게!” 손사래에 이어
“나중에 몸 풀고 나면 두 배로 하면 되네!” 만류에도 고집을 피워 마른행주로 그릇을 닦는 일로 낙찰이다. 누구 하나 게으름을 피우는 이가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는 축대를 내려서는데 꺽쇠 어미가 다급하게 손짓으로 부른다. 영문도 모르고 다가서니 묵직하게 보이는 보따리 하나를 손에다 쥐여주며 ‘히’ 웃는다. 오늘 먹고 남은 음식에 합환주 겸 미주도 조금 넣었다며 배불뚝이 되기 전에 깨 쏟아지는 신혼 기분을 내어보란다. 그러면서 행랑어멈을 손으로 가르치어 은근하게 귓속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