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7.08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귀한 새 생명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미련하기가 곰탱이 같은 저놈이 어떻게 눈치라도 챘는가 싶어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애꿎은 술상만 황토물 그득한 마당에 패대기로 횡액을 당해서 개박살나게!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자슥이란 것이 부모를 잡아먹는 애물단지(‘애물’을 얕잡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라더니! 이 일을 우야먼 좋노?” 한숨을 내 쉬는 복녀는 당연히 있어야 할 달거리가 반삭이나 지나쳤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이다.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망연자실 넋을 놓는다. 당연히 축복받아야 할 고귀한 새 생명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참을 방바닥으로 널브리진 옷가지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복녀가 무슨 생각에선지 조용히 방문을 나선다. 곧장 빗속을 뚫고는 뒤란의 장독대를 찾아 쪼그려 앉는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친정엄마가 못내 그리운지

“아~ 울~ 엄~니~” 나직이 부르곤 양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는 통곡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늙은 이모의 꼬드김에 따라 과거를 씻어 팔자를 고쳐 볼 걸 그랬나! 때늦은 후회가 가슴 저미도록 서러워서 운다. 울고 또 울고 한참을 울고 난 끝에 복녀는 마음속으로 처녀성을 잃은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지방 아래로 놓였던 특효약을 떠올리려 독한 마음이다.

“어이구 이 일을 어쩔거여! 흉측한 이놈의 약을 어쩔거여!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일이 있을지 누가 알거여! 향차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사람의 앞일이란 그 누구도 알 수 없잖여! 근께 잘 보관이나 혀나 봐!”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늙은 할미의 기운 없어 하던 말이 오늘을 두고 한 말 같았다.

“그~ 그기 다~ 다 달리 지~ 그렇지 지인가? 여~ 여~ 여자로 태어난 지~ 죄인 기~ 기~ 기제!” 기왕지사 벌어진 일, 앞으로 제 몸뚱이는 스스로 알아 간수 하라는 말과 함께 이 길로 들어선 이상 여기서는 누구나 예사로 겪는다며, 달리 악한 마음을 먹지 말라며, 억울해 말라며 등을 토닥이던 손길이 어제만 같다. 멋모르고 밥 먹듯 먹었다간 다시는 아기를 가지 수 없다며 누누이 경고하던 할미의 유난히 어눌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얼마나 울었을까? 다시 방으로 돌아온 복녀가 조용히 보따리를 풀기 시작이다. 다시 팔자를 고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여전히 망설이는 중이다.

한데 며칠이 지난 어느 때부터 덕배의 행동거지가 이상하다. 부엌일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않던 때와는 달리 물지게를 진다. 끙끙거려 물동이를 가득 채워 놓는다. 불쏘시개로 솔가리는 물론 삭정이는 고만고만하게 부러뜨리고, 장작을 패서는 부엌 한쪽 구석으로 가지런하게 쌓아놓는다. 그도 모자라 복녀의 손길이 닿을 치면 귀신같이 알아 재깍재깍 해결이다. 그뿐만이니라 마을로 품앗이 갈 때는 간다는 말을 우물우물 삼켜도 온다는 말은 꼭꼭 남긴다. 아마도 그 시간에는 집으로 있어 달라는 곡진한 당부만 같다. 전에 없이 떡 쪼가리 등 음식 나부랭이를 싸 들고 온다. 속으로 저 미련하기가 곰탱이 같은 저놈이 어떻게 눈치라도 챘는가 싶어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하는 행동이 내 자식은 내가 책임진다는 행동만 같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을비가 추적이는 어느 오후 나절에 집으로 돌아온 덕배가 방문을 열고는 깜짝 놀랐다. 복녀가 싸다만 보따리를 보는데 턱밑으로 줄기차게 기어오르던 술기운이 발바닥으로 화들짝 놀라 사라지는 느낌이다. 기어이 올 것이 발등의 불로 왔구나 싶어 눈앞이 아찔하다. 마누라 밥 굶기기를 예사로 시도 때도 없이 때려서 주먹질에 매질이다. 그것도 모자라 과거를 버선 몫 뒤집어가듯 뒤집어서 속속들이 후벼 팠다. 그나마 지금껏 서방이라 여겨 버티어 준 복녀가 용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왜 싸다가 말았을까? 한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덕배의 눈에 유난히 눈에 띄는 옷가지가 하나가 있다. 가만히 보니 복녀의 속옷 고쟁이다. 얼마나 오래 입고 또 입었는지 흰색이 바래어 짙은 잿빛으로 걸레 쪼가리만 같다. 게다가 누덕누덕 덧대어 누빈 엉덩이 부근으로 동그랗게 입을 벌렸다. ‘울컥’하는 기분을 가라앉혀서 생각하는데 눈가로 눈물이 처연하다. 지난날을 회한으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도 잠시 무슨 생각에선지 조용히 집을 나선 덕배가 하염없이 빗속을 걷는다. 정처 없이 걷는 발걸음이 어느새 주막집 앞에서 머뭇거린다. 마당 중앙으로 빗물로 하얗게 번들거리는 평상을 보는 덕배는 가슴이 복녀의 싸다가 만 보따리를 보는 듯 차가게 쓰리다. 망설임도 잠시 성큼 발을 들여놓는 데 인기척을 느껴 방문을 열어 내다보던 주모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흉측하여 차마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돌리던 주모가 기어이 한마디다.

“이 빗속에 물에 빠진 생쥐 꼴에 일 없네! 어딜 들어오려고!” 새파랗게 손사래다.

“그러지 말고 주모, 옛정을 생각해서 나한테 딱 술 한 잔만 주시오! 그리고 나 자네랑 긴히 상의할 일도 좀 있고!”

“덕배랑 나랑 옛정은 무슨, 말 같잖아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글구 천하에 무식한 이 년이랑 상의는 무슨 상의를 하겠다고 빌어먹을 퉤~ 그리고 나 오늘 술장사 안 해! 술 안 팔아! 아니 술독으로 술이 넘쳐나도 덕배 자네에게는 안 팔아!”

“야박하게 그러지 말고! 저~기 거시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잔만 파소!”

“그럼 이때꺼정 밀린 외상값은 가져 왔고?”

“근데 그것이!” 말끝을 흐리는 덕배가 축대 끝으로 슬며시 엉덩이를 걸쳐 앉는다. 그 모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주모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밖으로 나오며

“그럼 이도 저도 아닌 맹탕이란 말인데 일 없네! 나는 뭐 땡 빚에 생 몸띠(‘몸뚱이’의 방언) 팔아가며 물장사하는 줄 아는감! 그리고 자네 말이야~ 덕배 자네가 보기에 물장사는 그저 돈이 생기는가 싶지, 이런 젠장 할, 그래 그럼 그렇다 치고 이 천한 년이 백번을 양보해서 술값은 그렇다 치고! 그간 덕배 자네가 박살 낸 술상만 해도 그간 몇인 줄이나 아는감! 괜히 차렸다가 애꿎은 술상만 황토물 그득한 마당에 패대기로 횡액을 당해서 개박살나게!”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막상 그렇게 속에 든 말을 하고 보니 가슴으로 뜨끔하여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얼굴이 화끈하여 미안하다. 동네 장사란 그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비록 술 쿠세(くせ:‘버릇’의 일본 말)는 고약해도 제 나름대로는 의리는 지키는 덕배다. 그런 한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전에 없이 풀이 죽어 보인다. 빗물을 빌어서 속으로 울고 있는가? 고개를 숙인 위로 처마물(‘낙숫물’의 북한어)이 고스란히 떨어진다. 한데도 상관없다는 듯 고스란히 머리로 받아가며 처연히 앉았다. 떨어진 처맛물[‘낙숫물(落水-)’의 강원도 방언]이 발등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넋을 놓아 보고 앉은 덕배의 눈길에서 인생의 고단함이 물씬 풍긴다는 느낌이다. 속으로

“이 빌어먹을 이놈이 오늘따라 어디서 못 먹을 것을 날로 처먹었나! 예서 왜일까?” 생각하는 주모가

“아~ 물텀벙이라 방에는 그렇더라도 거시기, 여기 이리로 비라도 덜 맞게 좀 들어앉던가?” 재촉이다. 그제야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던 덕배가 엉덩이를 미적미적 안쪽으로 한 뼘 정도를 밀어 넣고는 품 안을 뒤적이기 시작이다. 한참이나 이리저리 품 안을 뒤적거려 손에든 것은 비로 인해 짓이겨진 담배 동가리다. 이것마저 왜 이럴까? 원망으로 무람없이 바라다보는 눈길이 초점을 잃어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때 어제 차려왔는지 주모가 술상을 내려놓으며 선심이라도 쓰는 듯 담배 한 개비를 내밀어 권하며 태우란다. 전에 없이 양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입으로 가져가는데 주모가 곧장 찾아든 다황(‘성냥’의 방언)에서 꺼내 든 성냥개비를 다황통에다 힘차게 그어 불을 붙인다. 벌써 빗방울에 젖어가는 담배에 불을 붙이자 덕배의 깊은 숨결에 따라 빨갛게 타들어 가는 담배다. 그런데 담배를 빨아들이던 덕배가 웬일인지 사레라도 드린 듯 콜록거린다. 빗 탓일까? 초짜처럼 뽑음 담배로 가슴 깊이 빨아들인 연기가 한(限) 인양 코와 입을 통해 하얗게 흩어진다. 뭉글뭉글 피어오른 담배 연기, 그 연기를 한 입으로 집어삼키려는 듯 잿빛 하늘에서는 끊임없는 빗방울이 내려앉아서 추적거린다. 주모의 충고에 따라 덕배가 한 뼘을 들어앉았건만 빗방울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난분분 어지럽게 휘날리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