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4)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7.0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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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거가 칠점사(까치 살모사) 혓바닥으로 날름거려 적나라하니 발목을 잡는다
축생을 흉내로 제 놈 욕심만 채워 저만치로 나뒹굴어 거칠게 숨을 쉰다
모진 말만 가슴 아프게 쏟아붓는다면 떠나기가 한결 홀가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송충이가 갈잎(활엽수의 마른 잎)을 먹으면 죽는다고 늙은 이모의 달콤한 청을 거절로 어느 정도 주변 정리가 끝나 주섬주섬 이삿짐을 챙기는 복녀 앞으로 느닷없이 덕배란 놈이 나타났다. 다짜고짜 손을 끌어서는 거두절미 같이 살잔다. 나이도 일곱이나 위인지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망설였다. 게다가 지난 과거가 칠점사(까치 살모사) 혓바닥으로 날름거려 적나라하니 발목을 잡는다. 앞에서는 아니라지만 과거를 뒤집어 볼 때 아니라는 데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결같은 덕배의 진실을 믿어 작수성례로 부부 연을 맺은 복녀다. 이후 복녀는 덕배와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중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소작농으로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틀었다.

멋모른 처음 일 년여 간의 신혼생활에 복녀도 행복했다. 소꿉놀이 같은 신혼생활에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웠다. 겨울이면 눈꽃이, 이른 봄이면 노란 어름새꽃(복수초)이, 여름이면 해바라기꽃이, 가을이면 샛노란 국화가 진한 향기를 품은 것으로 어릴 적 꿈꾸던 이데아의 세계가 여긴가 싶었다. 아침저녁을 맞아 굴뚝에서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에는 이곳이 진정 유토피아인가 싶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이듬해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그간 잠잠하던 덕배의 술주정이 그 시작이다. 술만 한 잔 걸쳤다 하면 거친 입으로 올리는 육두문자는 예사다. 본인이 최고로 아래위를 몰라본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어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멱살잡이에 드잡이질이 다반사다. 처음 밖에서 하든 버릇이 점차로 집안으로 스며들기 시작이다. 길 위에서 오가다 만난 인연이라 복녀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라 매질을 그저 그만하여 견딜 만했다. 바람처럼 떠돌던 사람이 한곳에 정착으로 그 심정이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마음을 십분 이해해서 참을 만했다. 게다가 농사의 농(農)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농사란 것이 애당초부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농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쉽게 말해서 노는 땅뙈기에 농사나 지어 먹고 살지, 땅이나 파먹고 살지 뭐니 하며 얕잡아 보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가며 큰다고들 한다.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으로 몸이 쉴 틈이 없어야 한다. 새벽잠을 반납으로 밭이랑이 말끔하도록 지심도 잡고, 봄이면 땅 기운을 북 북돋우어 퇴비를 넣고, 때에 맞게 농약을 쳐가며 아기를 어르고 달래가며 키우는 듯 정성으로 돌보아야 가을이 황금색으로 옹골차게 영글어 푸짐하다. 그에 비해 덕배는 진정한 농사꾼에서 한참이나 모자랐다. 서툰 농부를 흉내로 당연히 소출이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최 이해가 안 가는 덕배는 자신에게 화풀이 중인 모양이다. 한데 그 정도가 나날이 지나쳐서 도를 넘고 있었다.

시달림도 시달림 나름으로 복녀도 어느 시기가 지나자 삶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무작정 현실을 외면한 도피처를 찾아 보따리를 싸고 싶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덕배의 거친 욕설을 겸한 매질도 매질이지만 과거를 들먹여 복녀의 정신을 황폐화로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늘어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무력화시키는 것에는 죽는 것만 못하다 여겼다.

“야~ 이년아 너란 인간은 왜 사니~ 근본 없는 개잡년 같은 년이 색은 또 오지게 밝혀 어떤 놈들이랑 잤어? 어느 빌어먹을 놈이야? 헤벌쭉 가랑이를 벌려가며 몇 놈이랑 그 지랄했어! 그리고~ 야~ 이 년아 너의 집구석은 개새끼 집안이냐? 어디 사내가 없어 아비하고 붙어먹냐 그래!” 한참을 씩씩거려 몰아붙여

“그날 수에 아이는 몇이나 뗐어! 이런 이 흉측한 살인자 같은 이년아 그간 생목숨을 몇이나 죽였나 말이다” 악다구니를 쓰다가는 한순간에 썩은 고목을 발로 차듯 복녀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무지막지한 손길로 물건 다루듯 이불속으로 질질 끌어들인다. 축생을 흉내로 제 놈 욕심만 채워 저만치로 나뒹굴어 거칠게 숨을 쉰다. 천장이 떠나가라 코를 드르릉거린다. 그 모습에 복녀는 오만 정이 떨어진다. 할 수만 있다면 부엌칼로, 날을 세운 낫으로 냅다 가슴에 꽂고 싶고 벌렁거리는 울대를 확 따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데는 스스로 두렵다. 그 와중에 덕배는 작년 가을 ‘욱’하는 성질을 못 이기는 탓에 마름인 장 씨와도 심하게 다투었다. 아래위를 몰라 드잡이질로 한바탕 난장을 피운 덕에 그마저도 간당간당하던 소작농의 지위도 졸지에 잃었다. 하지만 기세는 여전하여 숙질 줄 모른다. 미상불 설은 지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데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여름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용케도 견디어낸 복녀는 가을철로 접어들자 보따리를 싸는 날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 빈 쭉정이 손이 허망하여 쌌다가는 풀고, 풀었다가는 다시 싸기를 반복이다. 그때마다 가슴을 치는 복녀는 인생이 허무했다. 물 한 그릇 떠 놓고 한평생을 언약했건만 지금에 이르고 보니 수전증에라도 걸린 걸까? 손은 떨리고 지렁이 같은 눈물이 앞을 가려서 흐리다.

속으로 내가 정말 개 같은 잡년이란 말인가? 뭇사람이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걸레 같은 년인가? 아니면 덕배의 말대로 아무 사내만 보면 침을 질질 흘려 가랑이를 벌리는 걸레보다 못한 여자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덕배란 인간은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그런 여자로 전부를 알았다면 잡지를 말았어야 했었다. 애가 타서 잡을 때는 언제고 지금에 와서 과거를 문제 삼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개를 흔드는 복녀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곱씹어가며 자신을 향해 묻고 또 묻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깨끗한 몸이고자 싶어 죽자고 밀어내는 복녀를 죽자고 덤벼들어 강제로 범한 그들이 아니던가? 한데 다독거려 품지는 못할망정 모든 잘잘못을 책임으로 따져서 과거를 적나라하게 묻고 있다. 답을 알 수 없는 복녀는 덕배를 향해

“세상에 둘도 없어 지질한 놈, 천하에 쳐 죽일 놈!”으로 어금니를 깨물어 일찌감치 저승길을 찾은 부모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지옥 같은 시간이 흘러 어느 늦가을 날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청승맞아 짓궂은 가운데 헌 옷가지를 차곡차곡 개어가며 보따리를 싸던 복녀가 세상과 자신을 한탄으로 처연하게 방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차마 매듭을 짓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근자에 들어 전날과 달리 덕배의 기운 빠진 모습이 생시로 눈에 밟힌다. 차라리 한창때처럼 매질에 악다구니를 부려서 모진 말만 가슴 아프게 쏟아붓는다면 떠나기가 한결 홀가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데 어쩐 일인지 보는 족족 죽은 문어발처럼 어깨가 늘어졌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무람없이 황금 들판을 보는데 벌어진 입으론 절로 긴 한숨이다. 입맛조차 떨어졌는지 밥상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용감무쌍하던 덕배가 근자에 이르러서는 밥 반 그릇도 버거워 보인다. 마파람에 게눈을 감춘다는 말이 옛말인 듯 젓가락 끝에서 시간이 한정이 없다.

무정도 정이요! 비정도 정이고 나아가 미운 정도 정이라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처연하게 싸다만 보따리를 내려다보던 복녀가 양팔을 가지런하게 포개서는 귀밑으로 고아 방바닥에 모잽이로 눕는다. 그렇게 누워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눈을 껌벅이던 복녀가 깜짝 놀란다. 당황한 듯 화들짝 몸을 일으켜 앉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둘을 꼽아가더니 낭패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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