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3)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6.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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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이 넘치는 남정네들에게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있으나 마나다
이불 위로 처녀성을 상징하는 앵혈(鶯血) 몇 방울이 그저 생뚱맞다
술만 한 잔 걸치면 육두문자는 예사로 본인이 최고로 아래위를 몰라본다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본래 남사당패는 독신남의 집단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양딸을 핑계 삼은 복녀를 시작으로 여자를 받아들이기 시작이다. 그러자 말로만 남사당패로 남녀가 어우러져 전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기예를 팔아가며 먹고 살기에 이른다. 따라서 남녀의 혼숙은 다반사다. 호칭도 일률적으로 삼촌, 형님, 이모, 언니, 동생 등으로 두루뭉수리 통일이다. 실제 혈연과는 무관이지만 다들 그렇게 싸잡아서 호칭이다. 더러는 부부 지연을 맺어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대부분 임자 없는 홀몸이다. 잠자리도 대중없어 허허벌판에 천막을 친다던가 허름한 여인숙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엄격하게 규율을 정했다지만 정력이 넘치는 남정네들에게는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유명무실로 있으나 마나다.

그날은 하루 내내 비구름이 우중충하더니 오시를 기점으로 급기야 궂은비가 추적거렸다. 우중이라 손님이 있을 리가 만무로 달리 할 일이 없는 남자 단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잡담을 친구로 지겨운 시간을 죽인다. 더러는 고누놀이를 즐기거나 푼 돈내기로 골패를 잡는다거나 술로써 객고를 달래는 것으로 전부다. 여자 단원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는 누구 입이 거친가를 따져서 승패 없는 수다에 열성이다. 그마저도 지겹고 지쳤다 싶으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중에 오수에 빠지는 꿈결 행이다.

복녀도 무리에 어울려 한참을 수다로 시간을 죽이다가 홀로 쉴 목적으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머리맡으로 팔베개로 누웠다. 한데 옆방이 문제로 이상하다. 거친 숨소리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만 같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응응’거리는 비음을 겸한 신음이 이팔청춘을 갓 넘는 복녀를 용광로로 밀어 넣는 기분이다. 펄펄 끓는 복녀의 물오른 몸을 구름 위로 붕붕 띄우고 있다. 왜 이럴까? 자신의 의지를 부정하며 양손으로 귓구멍이 미어지게 꼭꼭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다. 이불로 머리를 질근질근 감싸보아도 소용이 없어 몸만 불덩이로 뜨거워질 뿐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분리로 주체할 수가 없는데 문밖에서 추적이는 빗소리조차 방앗간 절구질 소리로 화해 연신 부채질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몸을 막 일으키려는데 빗소리를 뚫어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도 잠시 잠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번득인다. 겁에 질려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오매불망 기다린 임처럼 무지막지 긴 팔로 어깨를 감싸 안는다.

찬바람과 함께 들이닥친 검은 그림자는 다짜고짜 복녀의 입부터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몸이 하늘을 붕붕 떠다닌다는 느낌뿐으로 거의 기억이 없다. 그저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 짜르르하게 전심을 감싼다는 느낌이다. 까닭 없이 아랫도리가 뻐근할 뿐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불 위로 처녀성을 상징하는 앵혈(鶯血) 몇 방울이 빨갛게 스며서 생뚱맞다. 평소 남정네가 막무가내 덮쳐오면 다리를 꼬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가슴팍을 밀치고, 그도 아니면 소리를 친다던가 어깨나 팔을 깨물어 뜯어서 반항하라는 교육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옆방이 분위기를 잡아선지 한껏 몸이 열린 마당에 반항은 물먹은 솜처럼 풀어져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마음은 아니 된다고 항변이지만 몸이 제 알아 스스로 무너지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슴 치는 후회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이런 생활을 영위자면 언젠가는 홀가분하게 버려야 할 처녀성이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로맨스 사랑은 사치라 치더라도 손이라도 다정하게 잡혀 보고, 값싼 국화빵이라도 입에 넣어가며 수줍게 나누어 먹고, 깎지 손에 코스모스 흐드러진 길을 어깨를 나란히 걸어서 가식이라도 좋아 사랑의 속삭임을 소곤소곤 나눈 뒤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싶었다. 통속적이든 새빨간 거짓말이든 예쁘다는 말 한마디가 아쉬웠다. 그런 다음 얼굴을 마주 보며 귀밑머리를 다정히 쓸어서 사랑을 나누지 못한 점이 가슴앓이로 남는다. 그저 가슴 한쪽 구석이 뚫어진 듯 찬바람으로 일어 쓸쓸하다.

그렇다고 영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억울하고 허무한 마음에 옹송그려 앉았는데 물음표만 머릿속에 가득하여 둥둥 떠다닌다. 여자란 예리한 느낌으로 짐작이 가는 어느 한 놈이 있긴 있었지만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통에 확정할 수가 없다. 기왕에 벌어진 일,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벌어지고 가슴으로 작은 망울이 부풀어져 아릴 때 이모나 언니들이 조언 겸 말을 했다. 한정 없이 미적거리다가 어느 놈에게 당하는지도 모르게 당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으며 꽉 잡으라는 말이 현실로 후회스럽다. 하여간 아버지를 자청하는 단장인가? 늘 음침한 눈빛으로 아래위를 훑어보며 군침을 흘리던 그 빌어먹을 삼촌인가? 하여간 단단한 어깨 근육으로 봐서 늙은 놈은 아니다. 그럼 어떤 빌어먹을 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자문자답이건만 상대가 오리무중이라 더 억울하다. 한데 어떻게 알았을까? 다음 날부터 복녀를 두고 아다라씽(あたらしい:아타라시이, 일본어로 새롭다 싱싱하다)이 어쩌니저쩌니 처녀성을 들어서 소문이 자자하다. 그 와중에 바람처럼, 귀신처럼 누가 갔다가 놓았을까? 아이를 지우는 데는 특효약이라는 약봉지 하나가 문지방 아래로 다소곳하게 놓였다.

“함부로 먹지는 말어! 몸이 절단이여! 영영 아기를 못 가질 수도, 석녀가 될 수가 있어!” 연필심에 침을 묻혀 또박또박 쓴 글귀,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경고의 문구가 가슴에서 섬뜩하다.

그러고도 1년여 후다. 그동안 어렵게 지탱하던 남사당패가 경영난을 못 이겨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단원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간단한 수인사를 끝으로 홀가분하게 떠나갔다. 그런 마당에 복녀라고 어쩔 수 없어 살 방도를 찾아 이곳저곳의 술집을 수소문 중이었다. 명목상 아비라는 단장이 마지막 책임을 다한다며 복녀 몫으로 몇 푼을 남기는 통에 당분간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평소 무관심이던 어느 늙은 이모가 복녀를 찾아와 이참에 팔자를 고쳐보라며 충고 아닌 충고로 꼬드겨서 부추긴다.

“복녀 너의 미모라면 한눈에 반하여 어느 사내가 마다할까?” 곱게 차려입고는 어느 부잣집의 골 빈 자제를 홀려보라고 은근하게 청하여 귓속말로 속살거린다. 생각이 있으면 매파를 자청, 주선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치맛자락에 손을 비벼가며 비굴한 웃음이다.

“그렇잖아 복녀야 네 과거를 속속들이 안다면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멀쩡한 사내라면 어디 여자 취급이나 하겠니?” 한껏 낮추어 얕잡더니 원한다면 몸을 파는 창녀의 신분을 세탁으로 인생의 앞길을 환하게 열어주겠단다. 하지만 복녀는 차마 그럴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늙은 이모의 말마따나 이미 몸뚱이를 들어 이 사내 저 사내 등 몇 사내가 거쳐 갔다. 그런 마당에 복녀는 양심상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어영부영 속일 수가 있다 치더라도 향후는 불행하다는데 온몸으로 거부다. 이는 몇몇 사례가 눈앞으로 생생하여 끔찍했기 때문이다. 뜬구름을 잡듯 늙은 이모의 감언이설에 속은 그녀들의 종말은 한결같이 비참해서 반병신으로 내쳐지거나, 얼마나 억울했으면 온전치 못한 정신에 세상을 떠돈다던가, 씨받이로 전락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복녀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나를 못 믿어?” 늙은 이모가 나만은, 이번만은 믿어도 된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어깨를 다독였건만 기연가미연가 여전히 미심쩍다. 그 와중에 요행으로 자리를 잡는다 치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 늙은 이모가 온갖 협박을 일삼아 진드기처럼 달라붙을 것으로 명징하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반금련과 서문경을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하던 왕노파 역시 그랬다. 늙은 이모의 비굴한 웃음이 꼭 왕노파를 닮아 보인다. 그렇게 미래를 짐작하는 복녀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 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처지에 맞는 삶이 진실한 삶이라며 늙은 이모의 청을 어물쩍으로 거절이다. 그렇다고 산목숨에 굶을 수는 없어 재차 적당한 술집을 수소문하여 알아보는 것으로 최선을 다한다. 늙은 이모의 아쉬워하는 말을 뒤로 지금껏 배우고 익힌 것이 그뿐이라 그냥저냥 밥벌이에는 술집이 안성맞춤이라 여기는 복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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