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 인문학 아카데미' 영천으로 문학기행
'라온 인문학 아카데미' 영천으로 문학기행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4.05.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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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릉, 노계서원, 시총, ‘봉황산방’에서 삶과 문학의 의미 새겨
노계문학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윗줄 맨 좌측 장호병 교수).  <유무근 기자>

전공 장르를 달리하는 40여 명의 문학인들이 '피어라, 활짝!'을 주제로 영천지역 문학기행에 나섰다.

먼저 노계문학관에서 노계 박인로 선생의 문학과 삶을 새겨보았다.

32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붓을 던지고 호수 정세아 선생이 주도하는 의병에 참전하여 영천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다. 1599년 무과에 등과, 수문장·선전관을 제수받았다.

인생 후반은 독서 수행과 성현의 경전 주석 연구와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꿈에서 성·경·충·효(誠敬忠孝)의 네 글자를 얻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으며 한음 이덕형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처음 대면하여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早紅柿歌)」다.

광주이씨 시조묘'광릉'에서 5개  문학반이 기념 찰영했다.(좌측 아래 장호병 교수) 유무근 기자.

 

도산서원에 참례하여 이황(李滉)의 유풍을 흠모하였고, 조지산(曺芝山) 장여헌(張旅軒) 정한강(鄭寒岡) 정임하(鄭林下) 정연길(鄭延吉) 등 많은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82세로 생을 마감한 뒤 향리의 선비들이 생장지 도천리에 도계서원(道溪書院)을 세워 춘추제향하고 있다. 노계 박인로 선생은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함께 가사 문학 3걸로 일컬어진다.

광주(廣州) 이씨 시조 이당 선생의 묘소 광릉을 찾았다. 군주의 무덤이 아니면서 능으로 일컬어진다. 신돈의 난 때 병중의 아버지를 업고 밤길을 걸어 과거 동기인 천곡 최원도의 집에서 피신하였던 둔촌 이집과 그의 아버지 이당,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천곡은 자신의 수의와 자신이 묻힐 땅에 내주었다. 천곡과 둔촌의 문경지우(刎頸之友)의 우정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두 집안의 멸문지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노비 제비의 무덤에서 일행은 숙연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영천댐의 아름다운 풍광과 신록을 눈에 담으면서 기룡산 자락 영일 정씨 문중 묘역 하절을 찾았다. 도래솔 숲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문정과 밥정을 나누었다.

영천 선원리 권역별 사업 정희웅 추진위원장이 '시총'까지 마중나와 인삿말을 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

영일 정씨 문중에서 선원마을 정희웅 어르신 일행이 도복 차림으로 문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좌장혈 묘역 하절의 특징과 시총의 내력을 설명했다.

의병장 호수 정세아 선생의 아들 백암 정의번은 의병으로 참전 중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들어갔다. 후일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한 호수 선생은 화살로 초혼하고, 지인들의 조시 등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시로 만든 무덤, 시총(詩塚)이다. 그 아래는 주인을 섬겼던 충노 억수의 묘가 있다.

사람의 귀천은 신분이나 출신의 반상이 아니라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코스였다고 일행들이 입을 모았다.

인문학 아카데미 힐링처 '봉황산방' 일정과 주변을 설명하는 장호병 교수.  <유무근 기자>

마지막으로 장호병 교수의 ‘봉황 산방’에서 뒤풀이가 펼쳐졌다.

‘음악과 사람들’(단장 류병윤)이 색소폰 연주와 노래로 신명나는 흥 마당을 펼쳤다. 가수 이동열이 진행을 맡았다. 특히 강산 노을님이 열연한 ‘해방 춤’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얽힌 한과 흥을 형상화한 신선한 창작 춤으로 관객들의 큰 호응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뒤이어 회원들이 춤과 노래, 악기 연주로 어울림마당을 벌여 예술 끼를 발휘하였다.

힐링 시 낭송 반 김옥희씨가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시)를 낭송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

이날 행사는 북랜드 문화공간 라온의 시 창작반(지도교수 손진은) 동시창작반(지도교수 정순오) 수필창작반(지도교수 장호병), 좋은시 읽기반(지도교수 신상조), 힐링 시 낭송 반(지도교수 정지홍), 자서전 반, 라온 독서회 회원들이 참여하였으며, 차량 이동 중 손진은 교수의 문학 특강이 매우 유익하였다.

가수 이동열 진행으로 서로의 어깨띠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정을 다졌다.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