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 표지석이 없다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 표지석이 없다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4.05.1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광복회라고도 불리는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비밀결사조직으로, 당시 경북지역에 거점을 뒀던 독립의군부, 풍기광복단, 달성친목회,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등 4개 단체가 합쳐졌다. 총사령에는 울산 출신의 박상진이 추대됐고, 우재룡과 권영만은 지회장을 맡았다.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안영선 기자

총사령 박상진은 1912년 대구경찰서 맞은편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을 세웠다. 이곳이 광복회의 실질적인 본부이고 연락 거점이었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항일단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 팔도에 광복회의 지부가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조직이었고 만주의 독립군 기지를 지원하기도 했다. 김좌진 장군을 만주로 파견한 것도 광복회였다. 광복회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은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이후 더 격렬해진 의열 활동의 초석이 됐다.

1915년 12월 24일 새벽 경주 효현교에서 현금을 가득 싣고 대구로 향하던 우마차가 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마차에는 일제가 경주, 영덕, 영일(지금의 포항) 등 3개 군에서 거둔 세금 8천 700원이 있었다. 이 사건이 광복회의 첫 거사 였다. 당시 우마차가 대구로 이동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광복회 단원 우재룡과 권영만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실행에 옮긴 작전이다.

권영만은 환자로 가장하여 일본인인 우편마차 주인집에서 숙박한 뒤 대구의 병원 치료를 핑계로 마차에 올라탔다. 우재룡은 마차를 멈추기 위해 미리 다리를 파괴하고 기다렸다. 권영만은 효현교에서 마차가 멈춘 사이 돈을 챙겨서 달아났다 이 사건의 진실은 광복 이후에 작성된 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의 일대기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항일사를 자랑하는 광복회가 대구 달성공원이 발원지로,  항일운동사에 자랑거리지만 달성공원에는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없다. 기념비가 없다는 것은 대구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 2018년부터 매년 8월 25일 달성공원의 어린이헌장비 옆 서침나무 아래에서, 광복회 설립 기념식을 열고 있는 독립운동계승사업회도 임시 기념비를 설치해 두고 행사를 치르는 실정이다.

광복회 임시 기념비. 안영선 기자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2020년 10월 1천만원 정도의 자체예산으로 세로 1.8m, 가로 40cm의 돌 재질의 기념비를 설치하려고 대구시에 문의 했으나 문화재청의 난색을 보여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2021년에도 대구시대외협력특보 주재로 문화재청, 중구청 등이 회의를 거쳤으나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 신청이 어려운 것으로 검토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달성공원 내부에 기념비를 세우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기념비를 설치에 대해서 검토 중이지는 않다고 한다. 광복회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관계자는 전북 군산에도 광복회 표지석이 있는데 발원지인 대구에 표지석이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