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이흥렬 작곡 양주동의 시 '어머니의 마음' 이다. 일제 강점기 이흥렬이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피아노가 없이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귀국하려 했다. 이를 안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산을 헤매며 솔방울을 모아 팔아 큰돈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낸다. 아들은 그 돈에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사서 음악공부를 하여 첫 번째로 작곡한 노래이다.
나도 부모님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내 어릴 때의 아버지는 우리 집의 절대권자로 자리매김 되어 있어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어렵고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 모습이었다. 내 나이 21살에 군 입대를 하고 신병훈련을 마치던 날 뜻밖에도 면회장 바깥에서 하얀 모시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멋진 모습의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신병들 사이에 끼여서 떠밀려 나가는 나를 보시자마자 내 기억으로는 단 한번뿐이었던 아버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었다. 밤새 어머니가 아들 생각하며 눈물 섞어 만드셨을 삼베 보자기에 둘둘 말아 오신 마구설기 떡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목이 메었지만 아버지는 연방 애꿎은 담배만 태우시던 그때의 모습을 평생 못 잊는다. 아버지의 그 눈물이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가정은 결혼으로 출발하는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되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로 지금은 핵가족화와 함께 가족은 있으면서 가정이 사라지고 있다. 한집안에 3~4대가 함께 살던 과거의 가정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졌다. 이제는 부모 자식이 따로 살면서 가족관계가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 혼족 문화가 새롭게 자리 잡고 애완동식물이 가족을 대신하는 모습으로 가족 의식도 변하고 있다. 떨어져서 살게 되다보니 가족 간의 유대와 결속력이 약화되면서 가정의 기본 틀이 바뀌어 지고 있다. 그래도 명절 때면 참기름, 고춧가루를 자식들 수대로 보따리 싸놓고 아침부터 이집 저집 들락거리는 낯선 승용차를 보면서 내 자식은 언제 나타날까 마음 조이는 것이 우리세대의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로서의 노년의 삶이 너무 힘든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힘들고,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고, 자식에게 소외당하는 외로움으로 힘든다. 오래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편한 마음으로 삶을 마감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져서 대부분은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식이 책임지던 부모봉양도 국가가 책임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부모자식 간에도 떨어져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오죽하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가족 간의 의사소통과 대화가 단절되고 있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모두가 가슴 설레며 설, 추석 명절 때의 만남을 기다린다. 너무나 소중한 가족 간의 만남이지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효 개념을 현 시대에 맞추는 새로운 인식 변화가 필요한 지금이다. 이제야말로 자식들은 진정 부모세대를 알려고 애써야하고 부모세대는 사회변화를 직시하면서 손자녀들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이다.